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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체스카 여사, 오스트리아 유력 정치인 집안과 친척

淸山에 2013. 9. 15. 13:07

 

 

 

 

 

“프란체스카 여사, 오스트리아 유력 정치인 집안과 친척”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2013.09.15 04:21 / 수정 2013.09.15 09:15

 

 

윤곽 드러난 대한민국 첫 퍼스트레이디 족보
 

 

 


프란체스카 여사는 한국에 살면서 ‘호주댁’으로 불렸다. 그의 고향 오스트리아와 호주, 즉 오스트레일리아를 혼동한 탓이었다. 당시 한국인들이 프란체스카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화다.

 

 실제로 그의 배경에 대해선 알려진 게 별반 없다. 아버지 루돌프 도너가 철물무역을 하며 청량음료 업체를 경영했었다는 정도다.

 그러나 한 오스트리아 족보학 전문가의 추적 결과, 프란체스카는 이 나라의 대표적인 유명 정치인 집안과 친척인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프란체스카와 혈연관계인 유명 정치가는 에르빈 프뢸 북오스트리아주(州) 주지사와 그의 조카이자 부총리를 역임한 요제프 프뢸이다.

 

 오스트리아 4대 일간지 중 하나인 쿠리어지는 2008년 8월 프란체스카의 집안 내력을 전면에 걸쳐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이 신문은 ‘한국 커넥션(Die Korea-Connection)’이란 제목 아래 “라트부른에서 서울로; 족보 연구가가 에르빈 프뢸과 한국의 첫 퍼스트레이디 간의 관계를 밝혔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두 사람의 가계도를 이들의 사진과 함께 게재했다.

 

 현지인들 사이에서 67세인 프뢸 주지사는 오스트리아 정계 내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실력자로 통한다. 1992년 주지사로 선출된 뒤 6개 주 중 가장 큰 북오스트리아주를 21년째 이끌고 있다. 오스트리아 사상 최장수 주지사다.

 

1968년생인 조카 요제프 프뢸은 2003년 35세 때 농수산부 장관에 임명될 정도로 일찍이 정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러다 2008년에는 여당인 국민당 당 의장을 맡는 동시에 부총리 겸 재정부 장관으로 발탁됐다. 그러나 불운하게도 폐색전(肺塞栓)에 걸리는 바람에 2011년 공직에서 물러나 지금은 쉬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오스트리아의 유명 계보학자 펠릭스 군다커가 한국의 독립 60주년을 계기로 프란체스카 여사의 족보를 추적한 끝에 알려졌다.
 
“할머니가 사생아로 출생… 부모 정식 결혼”
군다커는 프란체스카의 고향인 인체르스도르프프에 가서 오래된 출생기록을 뒤지던 과정에서 문득 이 지역 유명 정치인인 프뢸 주지사와 혈연관계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두 사람의 계보를 거슬러 올라간 끝에 이들의 공동 조상을 찾을 수 있었다.

 

 군다커의 조사에 따르면 이들의 공동 조상은 1753년 태어난 벤델린 도너라는 재단사인데, 프란체스카의 고조(高祖)이자 프뢸 주지사의 5대조 할아버지로 판명 났다는 것이다. 따라서 프란체스카와 프뢸 주지사는 9촌 간인 셈이다. 벤델린 도너는 10명의 자녀를 낳았으며 이들의 후손이 오스트리아 전역으로 퍼져 나갔을 것으로 추정됐다.

 

 군다커가 찾아낸 출생 기록에 따르면 1900년 6월 15일 인체르스도르프에서 태어난 프란체스카는 보름 뒤인 7월 1일 유아세례를 받았다.

 

 또 1869년 태어난 그의 어머니 프란체스카 게르하르틀은 사생아로 태어났다. 그러나 그 후 부모가 정식으로 결혼해 두 사람 간의 적법한 자식이 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함께 일부 조상들의 직업도 밝혀졌다. 증조부 요제프 도너 역시 그의 아버지처럼 재단사였으며 목동, 목수, 포도주 제조업자, 방직업자 등 다른 조상들은 다양한 직업을 갖고 있었다.

 

 프뢸 주지사의 경우 조상이 독일에서 건너온 것으로 추정됐다. 프뢸이란 성 자체가 독일 바이에른 지방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 라트부룬에서 일하는 ‘에드문트 탄처’라는 목사가 프뢸 주지사의 족보를 추적한 적이 있었다. 그리하여 프뢸 주지사가 60세 되는 해, 이 목사는 프뢸에게 그의 족보를 알려줬다고 한다. 하나 그때에는 프뢸 주지사와 프란체스카의 관계까지 규명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프뢸 주지사는 쿠리어지와의 인터뷰에서 “전혀 알지 못했던 조상이 세계 정치에 참여했었다는 건 정말로 대단한 일”이라며 “이번 일을 계기로 한국과 오스트리아 간 경제 관계가 발전했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20세에 카레이서와 중매 결혼, 곧바로 이혼
프란체스카의 개인 이야기는 기존에 발간된 이승만 대통령과 관련된 책들에서도 일부 소개됐었다. 『이승만 대통령의 건강』에 따르면 1900년 태어난 프란체스카는 유복한 집안의 세 자매 중 막내로 아버지 루돌프 도너가 아들처럼 길렀다고 한다. 프란체스카는 수학에 뛰어난 재질을 보여 학교에선 ‘산수의 진주’로 불릴 정도였다는 것.

 

그리하여 청량음료 업체 사장이었던 아버지는 자신의 사업을 막내딸에게 물려주기 위해 프란체스카를 빈 상업전문학교로 진학시킨다. 도너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1918년 전문학교를 나온 딸을 영국 스코틀랜드로 보내 영어를 배우도록 한다. 프란체스카도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해 영어 통역사 및 타자·속기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러곤 아버지의 사업체를 계승해 경영했다.

 

 그의 나이 20세 되던 1920년, 프란체스카는 중매를 통해 당시 젊은 여성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자동차경주 선수 헬무트 뵈링거와 결혼한다. 그러나 결혼식 직후 뵈링거는 홀연히 사라졌다. 그동안 사귀어왔던 동거녀가 있었던 것이다. 자초지종을 알게 된 프란체스카는 즉각 결혼을 취소하고 지참금까지 돌려받는다. 그러고 나선 가업에 몰두하게 된다. 이때의 충격으로 아버지 루돌프 도너는 곧 세상을 떴다.

 

 그러나 운명의 신은 그를 영원히 독신으로 놔두지 않았다. 33세가 됐던 1933년 프란체스카는 어머니와 함께 파리를 경유해 스위스 여행을 했었다. 그러던 중 제네바의 레만호(湖)에 있던 ‘호텔 드뤼시’의 식당에서 동양에서 온 독립투사인 이승만 전 대통령과 우연히 만난다.

 

 

빈=남정호 국제선임기자

 

 

 

 

 

 

 

“한국 독립 60돌 특집기사 읽고 호기심 … 가계 추적 결심”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2013.09.15 04:24 / 수정 2013.09.15 09:15

 

 

오스트리아 족보 전문가 펠릭스 군다커
 
 

 

“한국의 첫 퍼스트레이디라는 프란체스카 여사의 아버지가 루돌프인지, 요제프인지도 불분명해 그의 가계를 정확하게 추적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오스트리아의 유명한 족보학 전문가인 펠릭스 군다커(53ㆍ사진)는 프란체스카의 가계를 파헤치게 된 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한국의 독립 60주년을 맞아 현지 언론에선 이 나라의 첫 영부인이 오스트리아인이라는 사실을 보도했고 이를 군다커가 우연히 읽었다는 것이다.

 

군다커는 족보학 분야에선 오스트리아 최고의 전문가로 꼽힌다. 2004년엔 미국 대통령 후보였던 존 케리 당시 상원의원이 오스트리아 뿌리를 둔 사실을 발견해 이 게 현지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이밖에 세계적 유명 인사들과 오스트리아 간의 혈연관계를 규명해낸 공로가 인정돼 2009년 7월 금장 훈장을 받기도 했다.

 

군다커는 기사를 읽어본 뒤 인터넷으로 그의 가족관계를 훑어봤다. 그러나 “검색되는 자료들은 아버지 이름이 루돌프 또는 요제프로 뒤섞여 나올 정도로 전체적으로 부실했다”는 게 군다커의 회상이다. 그래서 그는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직접 나서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그가 제일 먼저 찾은 곳은 빈 남쪽에 자리 잡은 프란체스카의 탄생지인 인체르스도르프 마을이었다. 1938년 빈에 편입된 이곳 교구 사무실에 프란체스카의 출생 기록이 있을 걸로 믿은 까닭이다.

 

군다커는 “1939년 전까지 오스트리아에서는 주민등록제도가 존재하지 않아 교구 사무실에서 출생·결혼·사망 사실에 대한 기록을 보관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예상대로 이 마을 교구 사무실에서 프란체스카의 출생 기록을 찾아냈다.

군다커는 “프란체스카는 1900년 6월 15일 인체르스도르프의 오르츠슈트라스 68번지에서 태어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기록으로 볼 때 프란체스카에겐 독일인의 피도 섞여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덧붙였다.


“몇몇 외가 쪽 조상들이 독일 바바리아 지방에서 태어난 것으로 기록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여러 기록에 따르면 프란체스카에겐 두 명의 언니가 있는 걸로 돼 있으나 이 중 마리아 테레지아와 관련된 자료만 찾았을 뿐 다른 자매의 기록은 못 찾았다”고 토로했다.

 

한편 할머니 프란체스카 게르하르틀이 사생아로 태어난 사실에 대해서는 “1840년의 경우 빈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의 58%가 혼외 자식이었다”며 “따라서 그 무렵엔 사생아라는 게 특별한 일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빈=남정호 국제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