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높은 곳에 올라간 허수아비 [ 2
]
독일을 대표하여 항복한 인물
1945년 5월 7일, 독일과 가까운 프랑스의 국경 도시 랑스(Rheims)에서 타전 된 소식은 세계를 즐겁게 하였지만 스탈린을 분노하게
만들었습니다. 독일이 무조건 항복 하였다는 뉴스는 지긋지긋한 전쟁이 종결되었음을 뜻하는 커다란 사건임에 틀림없었으나, 독일이 소련을 배제하고
미국, 영국이 주축이 된 연합국 사령부에 찾아가 항복하였다는 사실은 베를린을 점령한 소련의 존재를 무시하는
것과 다름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 독일의 항복 소식에 세계는 환호하였습니다 ]
히틀러가 자살한 후 대통령에 오른 되니츠(Karl Donitz)는 OKW(독일 국방군 최고사령부-Oberkommando der
Wehrmacht) 작전부장인 상급대장 요들(Alfred Jodl)을 그의 대리인으로 지명하여 연합국 측에 무조건 항복하였는데,
최대한 많은 독일군을 미국 측에 항복시켜 안위를 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독일은 그들이 소련 땅에서 벌였던 죄과를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복수심에 눈이 뒤집힌 소련군의 자비를 바랄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습니다.
[ 미군에게 항복한 독일군. 이들은 행운아였습니다 ]
명령을 받들어 요들은 랑스에 있는 SHAEF(연합군최고사령부-Supreme Headquarters Allied Expeditionary
Force)에 직접 찾아가 항복하였습니다. 이곳에 소련군 연락관 수슬로파로프(Ivan Susloparov)가 파견 나와 있었지만
옵서버수준이었고 실제 독일의 항복을 받는 주체는 아이젠하워(Dwight Eisenhower)와 몽고메리(Bernard
Montgomery)였습니다. 이런 눈에 보이는 독일의 꼼수를 뻔히 읽은 소련의 분노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 랑스에서 벌어진 항복 조인식에서 서명하는 요들 ]
물질적으로 연합국 측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지만 소련은 전쟁 내내 독일군의 80퍼센트를 상대하였고, 그 대가로 무려 2,000만 명으로
추산되는 인민들의 목숨과 폐허로 변한 국토를 포연에 날려버렸습니다. 더구나 마지막으로 30만 명의 희생과 2,000여대의 탱크 1,000여기의
전투기를 가져다 바치면서 지난 5월 2일 제3제국의 심장인 베를린에 적기를 꽂아 전쟁의 대미를 장식한 것도 소련의 붉은 군대였습니다.
[ 유럽에서의 마지막 격전이었던 베를린 전투 ]
소련은 연합국 일방이 독일과 단독강화하지 않겠다는 얄타 회담을 근거로 연합국 측에 별도로 독일의 항복을
받겠다는 의사를 표시하였습니다. 그 결과 다음날인 5월 8일, 베를린에서 또 다른 항복조인식이 열렸습니다. 이번 행사의 주인공은
스탈린의 대리인으로 참석한 독일 점령군 총사령관인 주코프(Georgy Zhukov) 원수였고 반면 연합국 참석자들은 참관자에 불과한 오로지 소련만을 위한 행사였습니다.
[ 단독강화를 금지한 얄타 회담에 의거 소련은 랑스의 항복식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
소련은 그들의 권위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독일에게 요들보다 상급자가 항복 서명을 하도록
요구하였습니다. 그리고 소련 점령군 사령부로 쓰인 베를린 칼스호르스트(Karlshorst)의 공병학교에서 열린 조인식에 일단의
독일 대표단이 나타났습니다. 해군의 프리데부르크(Hans-Georg von Friedeburg) 제독과 공군의 스튬프(Hans-Jurgen
Stumpff) 상급대장을 이끌고 등장한 최고 책임자는 카이텔 원수였습니다.
[ 소련이 주관한 항복식에 참석한 독일 대표단 ]
카이텔의 직위는 국방군 총사령관이었는데 이는 육, 해, 공군을 모두 망라하는 OKW의
수장이라는 의미고, 전날 서명한 요들도 그의 참모장이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는 지난 1933년,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전쟁성의 무력국 국장에
오른 후 지금까지 계속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인물이었습니다. 한마디로 히틀러 다음으로 독일 군부의 최고 권력자라는 의미여서, 이런
인물로부터 항복 사인을 받아낸 소련은 득의양양하였습니다.
[ 독일을 대표하여 문서에 서명하는 독일 국방군 총사령관 카이텔 원수 ]
소련은 전날 있었던 문서를 임시적인 것으로 취급하였고, 카이텔의 서명을 받은 항복 문서만을 공식으로 채택하였습니다. 이처럼 국방군
총사령관의 서명으로 전쟁이 정식으로 끝나게 되었고 소련은 여기에 만족해하였지만, 정작 패망한 독일에서
카이텔을 군부의 최고 수장으로 생각하였던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카이텔조차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 계속 ) [ august 의 軍史世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