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정치.사회/파헤친 歷史

寶物 巡禮 (보물 순례1~2편)

淸山에 2013. 7. 19. 15:09

**

 

 

 


 

寶物 巡禮 (1)~(2)

 

 

 

寶物1호 서울 興仁之 門 (東大門)

 

 


동대문이라고도 부르는데,

조선 태조 7년(1398)에 완성하였다가

단종 원년(1453)에 고쳐 지었고,

지금 있는 문은 고종 6년(1869)에 새로 지은 것이다.


 

 

寶物 402호 水原 八達門

 

 


수원성은 조선 정조 18년(1794)에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양주에서 수원으로 옮기면서 짓기 시작하여

정조 20년(1796)에 완성한 성곽이다.

중국성의 모습을 본뜨기는 했지만 과학적인 방법으로

성을 쌓아 훨씬 발달한 모습을 하며

한국 성곽을 대표하는 뛰어난 유적이다.

 

 


寶物 308호 全州 豊南門

 

 

   

   

 

 

옛 전주읍성의 남쪽문으로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 때 파괴된 것을

영조 10년(1734) 성곽과 성문을

다시 지으면서 명견루라 불렀다.

‘풍남문(豊南門)’이라는 이름은

영조 43년(1767) 화재로 불탄 것을 관찰사 홍낙인이

영조 44년(1768) 다시 지으면서 붙인 것이다.

 

 

 

寶物 322호 濟州市 觀德亭 

 

 

 



관덕(觀德)이란 문무의 올바른 정신을 본받기 위해

‘사자소이관성덕야(射者所以觀盛德也)’에서 따온 말로,

평소에 마음을 바르게 하고 훌륭한 덕을 쌓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누정 건물은 『탐라지』에 의하면

조선 세종 30년(1448) 병사들의 훈련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세웠다.

성종 11년(1480) 목사 양찬이 고친 뒤 여러 차례 수리를 거쳤다.


 

 

寶物147호 密陽 嶺南樓

 

 

   

 

   

 


이 건물은 조선시대 밀양도호부 객사에 속했던 곳으로

손님을 맞거나 휴식을 취하던 곳이다.

고려 공민왕 14년(1365)에 밀양군수 김주(金湊)가

통일신라 때 있었던 영남사라는 절터에 지은 누로,

절 이름을 빌어 영남루라 불렀다.

그 뒤 여러 차례 고치고 전쟁으로 불탄 것을 다시 세웠는데,

지금 건물은 조선 헌종 10년(1844)

밀양부사 이인재가 새로 지은 것이다.

 

 

 

寶物 165호 江陵 烏竹軒

 


신사임당(1504∼1551)과 율곡 이이(1536∼1584)가 태어난

유서 깊은 집이다.

사임당 신씨는 뛰어난 여류 예술가였고

현모양처의 본보기가 되는 인물이며,

신씨의 아들 율곡 이이는

조선시대 퇴계 이황과 쌍벽을 이루는 훌륭한 학자였다.

오죽헌은 조선시대 문신이었던 최치운(1390∼1440)이 지었다.

 

 

 

寶物209호 懷德 同春堂 (대전 대덕구)

 

 
조선 효종 때 대사헌, 이조판서, 병조판서를 지낸

동춘당(同春堂) 송준길(1606∼1672)선생의 별당(別堂)이다.

늘 봄과 같다는 뜻의 동춘당(同春堂)은 그의 호를 따서 지은 것으로

이곳에 걸린 현판은 송준길 선생이 돌아가신 6년 후

숙종 4년(1678)에 우암 송시열이 쓴 것이다.

 

 

 

寶物210호 陶山書院 典敎堂 (安東市)

 

 

 

도산서원은 퇴계 이황(1501∼1570)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처음 세웠다.

그 중 전교당은 유생들의 자기수양과

자제들의 교육을 하는 강당으로서,

전교당의 앞 마당 좌우에는 유생들이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가 자리하고 있다

 

 

 

寶物 211호 陶山書院 尙德祠 附正門 및 四周土병

 


도산서원은 퇴계 이황(1501∼1570)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처음 세웠다.

이황 선생은 조선 중기의 유명한 문신으로 여러 벼슬을 두루 거치고

평생을 학문 연구와 제자 양성에 힘쓴 분이다.

도산서원 제일 뒤쪽에 있는 상덕사는 이황 선생의 신주를 모신 사당이다.

조선 선조 7년(1574)에 지었고 지금 있는 건물은 1969년 수리한 것이다.

 

 

 

寶物213호 三陟 竹西樓

 

 

 

 

 

이 건물은 고려 충렬왕 1년(1275)에

대학자 이승휴 선생이 세웠다.

그 뒤 조선 태종 3년(1403)에 삼척부의 수령인 김효손이

고쳐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름은 누의 동쪽으로 죽장사라는 절과

이름난 기생 죽죽선녀의 집이 있어 ‘죽서루’라 하였다고 한다.


 

 

寶物 835호 雲門寺 大雄寶殿

 

 

신라시대에 세운 운문사는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쳤는데

지금의 절은 조선 숙종 44년(1718)에 있었던

네 번째 보수 때의 것이다.

대웅보전도 이때 세운 것으로 추정한다


 

 

寶物 400호 仙岩寺 昇仙橋

 


선암사의 부도(浮屠)를 지나 경내에 이르면

시냇물을 건너야 되는데

그 건널목에 놓인 다리가 승선교이다.

시냇물의 너비가 넓은 편이라서 다리의 규모도 큰 편인데,

커다란 무지개 모양으로 아름답게 놓여있다.

 

 

 

寶物214호 江陵 文廟大成殿

 

 


강릉향교는 옛 성현께 제사를 드리고 학문을 갈고 닦는 곳으로,

성균관을 제외한 지방 향교로는 규모가 가장크다.

고려 충선왕 5년(1313) 강릉 존무사(存撫使)였던 김승인이 세웠다

 

 

 

寶物 281호 廣寒樓 (전북 南原市)

 

 

 

 


이 건물은 조선시대 이름난 황희정승이

남원에 유배되었을 때 지은 것으로

처음엔 광통루(廣通樓)라 불렀다고 한다.

광한루(廣寒樓)라는 이름은

세종 16년(1434) 정인지가 고쳐 세운 뒤 바꾼 이름이다.

지금 있는 건물은 정유재란 때 불에 탄 것을

인조 16년(1638) 다시 지은 것으로 부속건물은 정조 때 세운 것이다.

춘향전의 무대로도 널리 알려진 곳으로

넓은 인공 정원이 주변 경치를 한층 돋구고 있어

한국 누정의 대표가 되는 문화재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寶物 414호 安東市 忠孝堂

 


조선 중기 이름난 문신이었던

서애 유성룡(1542∼1607) 선생의 집이다.

유성룡 선생은 여러 벼슬을 두루 거치고 임진왜란 때에는

영의정으로 전쟁의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는데

많은 공헌을 한 분이다.

선생이 쓴『징비록』과『서애집』은 임진왜란사 연구에

빼놓을 수 없는 귀중한 자료로도 평가 받고 있다

 


 

寶物   巡禮 (2)

 

 

 

 寶物 2호  서울 普信閣 鐘

     

 

 

조선시대 만들어진 종으로, 1985년까지 서울 종로 보신각에서

제야(除夜)의 종을 칠 때 사용되었다.

조선 세조 14년(1468) 만들어

신덕왕후정릉 안에 있는 정릉사에 있었으나,

그 절이 없어지면서 원각사로 옮겨졌고

임진왜란 이후 종루에 보관했다.

고종 32년(1895) 종루에 보신각이라는 현판을 걸게 되면서

보신각종이라고 불렀다.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 경내에서 보관 중이다

총 높이 3.18m, 입 지름 2.28m, 무게 19.66톤의 큰 종이며,

전형적인 조선 초기의 종 형태를 하고 있다.

 

 

 

  寶物 11호   思印比丘鑄成銅鍾  (충북 淸州市)

 

 

조선 숙종 때 경기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활동한 승려인

사인비구에 의해서 만들어진 조선시대 종이다.

사인비구는 18세기 뛰어난 승려이자 장인으로

전통적인 신라 종의 제조기법에 독창성을 합친 종을 만들었다.

현재 그의 작품 8구가 서로 다른 특징을 보이며 전해지고 있다

 

 

 

寶物 88호  塔山寺 銅鍾   (전남 海南)

 

 

고려 시대 만들어진 높이 79㎝, 입지름 43㎝의 종으로

신라 형식을 계승하면서

고려시대에 새로 나타난 특징들을 잘 보여준다.

 

 

 

寶物 326호  李忠武公 遺物 (牙山市 顯忠祠)

(요대.장검.옥로)

 

 

   

   

 

충청남도 아산시 현충사에 보관하고 있는

충무공 이순신의 유물들이다.

 

 

 

寶物 334호  通度寺 銀入絲銅製香爐 (경남梁山市)

 

 

 높이 33㎝, 입지름 30㎝, 받침대 지름 24.7㎝인

이 향로의 전체는 굵고 가는 은·금실을 이용하여

연꽃무늬, 덩굴무늬, 봉황, 구름무늬로 가득차게 새겼다

   

 

 

寶物 338호   金鈴塚 金冠

     

 

       지금까지 발견된 금관 중에서는 가장 작고 간단한 형식으로,

높이 27㎝, 지름 15㎝의 금관이다

 

 

 

     寶物 339호  瑞鳳塚 金冠 (경북 慶州市)

 

 

 경주 노서동 신라 무덤인 서봉총에서 출토된

높이 30.7㎝, 지름 18.4㎝, 드리개(수식) 길이 24.7㎝인 금관이다.


 

 

 寶物 568호   尹奉吉義士 遺品

 

 

 

 

 

 

 
 

1932년 4월 29일 상해 홍구공원에서 폭탄을 투척하는 의거를 일으킨

독립운동가 윤봉길(1908∼1932)의사가 남긴 유품들이다.


윤봉길은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사량리에서 태어나,

덕산보통학교와 오치서숙에서 공부하였고 19세 때

고향에 야학을 세워 농촌계몽운동을 시작했다.

1931년 김구선생의 한인애국단에 가입하였다.

그 뒤 항일투쟁을 계속하다가 1932년 4월 29일 혼자 일본의 상해사변

전승축하회가 열리던 상해의 홍구공원에 폭탄을 던져

일본군총사령관 시라가와 등 일본의 군수뇌부를 제거하는데 성공하였다.

그 자리에서 체포된 윤봉길 의사는 군법재판 단심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11월 일본으로 이송되어 1932년 12월 19일 일본 대판 위수형무소에서

24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寶物 569호  安重根義士 遺墨

 

 

 

 

 이것은 안중근(1879∼1910)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여순감옥에서 목숨을 다할 때까지 옥중에서

휘호(揮毫: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이르는 말)한

유묵(遺墨:살아있을 때에 써 둔 글씨나 그린 그림)들을

일괄해서 지정한 것이다.

 

 

 

 寶物 743호  正祖大王 筆芭蕉圖

 

 

 조선시대 정조(재위 1776∼1800)가 그린 그림으로,

바위 옆에 서 있는 한 그루의 파초를 그렸다.

정조는 시와 글에 능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림에도 뛰어났다고 한다

 


 

寶物1189호 朴文秀 影幀

 

 

 

조선 영조 때 문신인 박문수를 그린 초상화 이다.

박문수(1691∼1756)는 조선 영조 때의 문신으로

1723년 병과에 급제한 후 암행어사로 활약하면서

부정한 관리들을 적발하여 가난한 백성을 구제하는데 힘썼다

 

 

 

 寶物1430호  華城 行幸圖八疊屛 

   

 

 

 

 

정조가 부친인 사도세자의 회갑을 맞이하여,

정조 19년(1795) 윤 2월 9일부터 8일간에 걸쳐

모친인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사도세자의 묘소가 있는 화성의 현륭원(顯隆園)을 행행했을 때

거행한 주요 행사를 그린 8첩 병풍이다.

 


 

寶物 1442호 日月蟠桃圖八疊屛

 

 

 

 

 각 4폭으로 구성된 2점의 대형 궁중 장식화 병풍으로

해와 달, 산, 물, 바위, 복숭아 나무 등을 소재로 하여

십장생도와 같은 의미를 나타낸 것으로

여겨지며 특히 복숭아에 대한 길상 관념이 강하게 내재되어 있다.

 

 

 

寶物 1085호   東醫寶鑑

 

 

 
 

『동의보감』은 선조 30년(1597) 임금의 병과 건강을 돌보는

어의 허준(1546∼1615) 선생이 선조의 명을 받아

중국과 우리나라의 의학서적을 하나로 모아 편집에 착수하여

광해군 3년(1611)에 완성하고 광해군 5년(1613)에 간행한 의학서적이다.

이는 총 25권 25책으로 금속활자로 발행하였다.

 2009년7월31일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寶物 844호  昌德宮 測雨臺

 

 

 

 

 寶物 1444호 銀入絲鬼面文鐵鎚

 

 

이 철퇴는 19세기경 의장용으로 제작된 것으로

쇠로 만들어졌으며 외면을 쪼이질하여

상하로 화문을 은으로 입사하였다.

퇴부는 연봉(蓮峯) 상태인데 좌우에 도깨비 문양을 은으로 입사하였다.

그 퇴 위에는 뇌문(雷文)과 연봉 하단에는

화판문(花瓣文)이 시문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