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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가 되느냐, 위작이 되느냐… 진짜와 가짜, 그 얄궂은 운명

淸山에 2013. 7. 6. 10:00

 

 

 

 

 

 

국보가 되느냐, 위작이 되느냐… 진짜와 가짜, 그 얄궂은 운명

도재기 선임기자 jaekee@kyunghyang.com

 


 
ㆍ미술품 감정의 세계…위원들 경험·지식 바탕 ‘안목감정’으로 평가, 판정 어렵거나 소송 땐 X레이·연대측정 등 과학감정도

지난 1월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5부는 위작 논란으로 법정까지 온 이중섭의 ‘물고기와 아이’에 대해 “이중섭이 아닌 제3자가 그린 위작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1심에 이어 위작이라고 판결했다. 미술계를 넘어 사회적 이슈로까지 번진 2005년의 ‘이중섭 위작 사건’이 마무리된 것이다.

 

이 사건은 2005년 3월 한 미술품 경매사가 ‘물고기와 아이’를 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평가원)에 감정의뢰했고, 감정위원들이 만장일치로 위작 판정을 내리면서 시작됐다. 경매사는 “유족 소장품이 어떻게 위작이냐”며 강력 반발했고, 일본에 거주하던 유족도 경매사 편을 들었다. 위작 논란이 일파만파로 커지면서 감정의 신뢰도 문제까지 제기됐다. 그러나 감정위원들은 이중섭 특유의 표현과 속도감이 작품에 나타나지 않고, 이중섭이 쓴 적이 없는 물감이 사용된 점 등을 들어 위작임을 강조했다. 경매사는 유족이 소장한 다른 작품들과 함께 이 작품의 재감정을 의뢰했고, 다른 작품들까지 위작 판정이 났다. 사회적 파장이 커지면서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고, 양측은 법정소송을 벌였다.

 

2007년 말에서 2008년 초에는 박수근의 ‘빨래터’가 논란이 됐다. 경매에서 45억여원에 낙찰된 이 작품을 한 미술잡지가 위작이라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경매사가 감정을 의뢰하자 평가원은 진작 판정을 내렸다. 하지만 워낙 고가인 데다 작가가 한국 근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이다 보니 논란은 계속됐다. 결국 외국인 소장자가 방한, 작가와의 교류관계 등을 밝히고, 유족도 진작임을 확인하면서 진작으로 결론이 났다.

 

이중섭과 박수근의 사례는 1991년 천경자의 ‘미인도’ 사건과 함께 대표적인 미술품 위작 논란 사건으로 꼽힌다. 진위감정은 미술시장의 유통질서는 물론 소장자의 경제적 가치 보존에 핵심 역할을 한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국보급 작품이 한순간에 위작으로 폐기처분될 수도 있다. 대표적 민간 감정평가기구인 한국미술품평가원의 감정 과정 등을 통해 미술작품 감정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이중섭의 ‘물고기와 아이’ (위작·부분)

 

 


 이중섭의 ‘물고기와 아이’ (진작·부분)

 

 

■ 의뢰 작품에 따라 작가나 유족 등 위원 구성 달라져

국내 그림 감정은 1981년 한국화랑협회가 자체 감정위원회를 운영하면서 시작됐다. 하지만 미술품을 거래하는 화랑이 감정까지 하면서 신뢰도에 대한 논란이 일자 여러 과정을 거쳐 전문가들이 2003년 (사)한국미술품감정협회를 등록하고 본격적인 감정에 나섰다. 2007년에는 감정협회와 화랑협회가 업무협약을 맺으면서 현재의 평가원에 이르고 있다.

 

작품의 진위 여부를 가려달라는 감정의뢰가 들어오면 평가원에서는 감정위원회가 열린다. 감정위원회는 미술사가, 평론가, 화랑 대표, 큐레이터 등 전문가 10~12명으로 구성된다. 하지만 사안에 따라서는 경험이 많은 수복 전문가 등 다양한 분야의 외부 전문가가 특별 감정위원으로 초빙되기도 한다. 해당 작가나 유족이 참여할 때도 있다. 의뢰작품에 따라 위원 구성이 달라지는 것이다.

 

감정은 우선 위원들의 경험과 지식, 노하우를 바탕으로 한 ‘안목감정’이 진행된다. 해당 작가와 작품의 화법, 재료, 채색, 색감, 구도, 서명 등을 분석하며 의견을 교환하는 것이다. 특히 화법과 물감 등 재료는 작가마다 독특하기 때문에 핵심 감정 기준이다. 작품의 소장 경위, 출처도 중요하게 여겨진다. 서양화의 경우 작품 틀의 재질도 점검된다. 작품에 대한 분석을 기초로 작가, 작품과 관련된 다양한 전시회 자료나 평소 작가의 작품일지 등과의 대조도 이뤄진다. 송향선 평가원 감정위원회 위원장은 “작가마다 사용하는 물감이 다르고, 같은 물감이라 하더라도 어떤 제품을 쓰느냐가 판단의 근거”라며 “감정위원들은 워낙 많은 작품을 다루거나 연구한 경험, 노하우가 있다”고 밝혔다.

 

감정위원인 박우홍 동산방갤러리 대표는 “감정위원 각자가 작품의 색감이나 채색, 붓의 운필 등 중점적으로 보는 부분이 다르다”며 “나는 재료를 많이 본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감정위원들이 각기 다른 분야를 점검하다 보니 서로 공부도 되고, 교차 검증으로 검증 수준을 높이는 효과도 있다”고 덧붙였다.

 

감정 결과는 일반적으로 감정위원들의 만장일치로 확정된다. 하지만 위원들 간에 의견이 크게 엇갈리면 재감정이 이뤄지기도 하고, 감정위원 숫자를 늘리거나 특별감정위원을 초빙하기도 한다. ‘안목감정’으로 판정이 나지 않거나 판정결과에 대한 법적소송 등이 진행될 때는 X레이, 연대측정 등 ‘과학감정’도 추가된다. 하지만 과학감정에도 한계가 있다. 한 작가의 작품이라 하더라도 화학적·물리학적 구성이 모두 같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감정 결과는 ‘감정서’에 진품은 ‘진’, 위품은 ‘위’, 판단이 불가능할 경우 ‘불능’으로 표시된다. 감정서에는 접수번호, 작가명과 작품명, 제작기법, 제작연도 등이 작품 사진과 함께 기록된다.

 


이중섭의 ‘아이들’ (위작·부분)  이중섭의 ‘아이들’ (진작·부분)

 


 

이중섭의 ‘아이들’ (위작·부분)  이중섭의 ‘아이들’ (진작·부분)

 

 

■ 같은 작가 작품이라도 시기·수준따라 수천만원 차이

그림값 산정은 진위감정과 별도로 시가감정 또는 가격감정으로 불린다. 시가감정은 의뢰가 들어오면 먼저 진위감정을 거쳐 진작으로 판정난 경우에 진행된다. 미술품 시가감정은 일반 소비재와 달리 간단하지 않다. 규격화된 기준이 없고, 가격산정에 미치는 요소가 숱하게 많다는 의미다. 미술품은 원천적으로 작품마다 작가마다 독자성이 있어 그 가치가 다르다. 같은 작가의 작품이어도 시기와 수준에 따라 수천만원의 차이가 난다.

 

그림값은 우선 작가가 전시회 등을 열면서 화랑 측과의 협의를 통해 내놓는 판매가격이 있다.

가장 기본적 가격이지만 시장상황 등의 요인에 따라 변한다. 경매에서 시장논리에 따라 작품가가 결정되기도 한다.

평가원이 시가감정을 위해 마련한 기준을 보면 그림값 산정의 기초적 요인을 알 수 있다. 평가원은 작품을 A-B-C-D 4개 등급으로 분류하고, 여기에 미술시장의 가격 등을 고려한다. A등급은 미술사적 가치가 높은 작품이거나 대표작가·원로작가의 우수작이다. B등급은 중견·청년 작가의 우수작이거나 대표작가·원로작가의 태작이다. C등급은 지역화단 작가 작품이나 중견·청년 작가의 태작, D등급은 무명 또는 아마추어작가의 작품, 장식적 가치가 있는 작품을 말한다. 이 기본틀에 작품성, 희소성이나 보존상태, 크기, 제작연대나 재료 등 여러 요소가 반영된다. 평가원은 시가감정에서 가격을 특정하지 않고, 최저가와 최고가를 평가한다. 평가원은 현재 객관적이고 적정한 가격산정을 위해 작가별, 작품별 미술품가격지수를 개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시가감정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2006년 30건이던 시가감정 의뢰가 2010년 1556건, 지난해에는 1685건으로 증가했다. 소장 미술품의 자산가치 평가, 상속세를 내기 위한 평가, 보험료 책정을 위한 평가, 담보설정을 위한 평가 등 다양한 이유 때문이다. 송 위원장은 “요즘은 진위·시가 감정이 거의 반반일 정도로 시가감정이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 이중섭 작품, 절반 이상이 위작으로 가장 많아

평가원이 최근 출범 10주년을 맞아 내놓은 감정 통계백서에는 흥미로운 내용이 있다. 평가원이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 동안 감정한 작품 수는 모두 5130점, 작가는 562명이다. 감정작품의 수와 위작의 수를 비교한 위작 비율은 평균 26%로, 감정이 의뢰된 100개 작품 중 26개가 위작으로 나타났다.

 

감정의뢰가 가장 많은 작품의 작가는 천경자로 모두 327건이었으며 감정 결과는 진작이 226건, 위작 99건, 감정 불능 2건이었다. 이어 김환기(262건), 박수근(247건), 이중섭(187건), 이대원(186건), 이우환(171건), 김종학(160건), 이응노(154건), 김기창(152건), 장욱진(143건) 순으로 감정의뢰 수가 많았다.

 

이 중 위작이 가장 많은 작가는 이중섭으로 나타났다. 187건의 감정 중 무려 108건이 위작이고 진작은 77건, 감정 불능 2건이었다. 의뢰된 작품의 58%가 가짜였던 셈이다. 평가원 측은 “구상계열의 작품이라 쉽게 위작의 대상이 됐을 것”이라며 “엽서그림 등 제작 방법이 비교적 쉬운 작품에 위작이 많았다”고 말했다. 같은 구상계열인 박수근의 경우 247건 중 위작은 94점이었다. 구상이긴 하지만 위작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는 의미다.

 

생존 작가와 작고 작가의 진작 비율을 보면 작고 작가는 60%, 생존 작가는 84%였다. 생존 작가의 경우 작가가 작품을 직접 확인할 수 있어 아무래도 위작이 적은 것으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