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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대한 애정과 연민… 카파, 전쟁터에 휴머니즘을 꽃피우다

淸山에 2013. 7. 6. 09:43

 

 

 

 

 

 

인간에 대한 애정과 연민… 카파, 전쟁터에 휴머니즘을 꽃피우다

 

 

 

전쟁의 20세기’, 전장의 참상과 인간애를 카메라에 담다 끝내 전장에서 스러져간 종군기자의 생생한 증언을 듣는다

“카파의 사진은 인간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주체할 수 없는 연민을 담고 있다.” -존 스타인벡

“카파는 휘몰아치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과 타인을 위해 몸부림쳤다. 그리고 영광의 정점에서 세상을 떠난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로버트 카파, 그는 낡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이국의 전쟁터에서 지뢰를 밟고 세상을 떠났다. 아마 그것이 그가 사진가로서 제일 원하던 죽음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인류사의 가장 끔찍했던 기간을 관통하면서 한 손에 카메라를 들고 전쟁터를 누비며 수많은 명장면들을 인류사에 던져 놓고 가버린 사진가. 평생을 전장에서 보냈지만 그 누구보다도 전쟁을 증오하고 전쟁기념탑과 기념비를 수치로 여길 만큼 놀라운 인류애를 보여주었던 위대하지만, 소박한 삶을 살았던 사진가가 로버트 카파다.

로버트 카파의 첫사랑 타로가 찍은 카파.


로버트 카파는 인류사의 가장 격동기인 1930년대부터 20년간 5개 대륙을 넘나들며 인간의 고통과 행복을 이미지가 가지고 있는 힘을 통해 보여주었고, 이를 통해 세계의 역사를 다시 써내려갔다. 스페인내전, 중일전쟁, 2차 세계대전, 아랍과 이스라엘 전쟁 그리고 인도차이나 전쟁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역사를 가름하는 수많은 장소에서 자신의 안녕이나 영화를 뒤로 미룬 채 타인의 눈을 대신하여 현장을 지키다 끝내 자신도 전쟁의 희생물이 되어버렸다. 전쟁터에서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극한 상황을 맞이하면서도 사랑으로 심장이 뜨거워지는 행복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던 사진가, 새로운 시도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그는 세계 사진사에서 가장 빛나는 별 중의 하나로 우리에게 기억되고 있다.

진실의 힘을 철칙으로 여긴 사진가 로버트 카파는 사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언론사의 정식 기자로 특정한 언론 매체를 위해 일했던 것은 아니다. 미국의 라이프 매거진이나 프랑스의 뷰 매거진 등 여러 시사 잡지에서 의뢰를 받아 현장을 취재하기도 했지만, 때로 그는 아무런 소속도 없이 오직 진실을 담아내기 위해 전장에서 홀로 고군분투했던 다소 무모한 사진가였다. 그 무모함은 그를 더욱 절실하게 만들었고, 지면을 차지하기 위해 다른 사진가들보다 더 좋은 사진을 촬영해야 한다는 벼랑으로 스스로를 내몰았다. 더욱 진실에 매달려야 했고, 전장의 또 다른 국면인 휴머니즘을 찾아내야 했다.

역설적으로 전쟁사진은 전쟁을 말하지 않는다고 한다. 전장에서 촬영된 사진은 거의 모두 반전쟁사진이며 그 사진을 통하여 그러한 일이 다시 반복되지 않기를 갈망하는 사진가들의 주장이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로 우리에게 익숙한 노르망디 상륙작전 D-데이에 촬영한 로버트 카파의 흐릿한 사진은 거의 9000명에 이르는 사망자를 냈던 이 작전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한, 최고의 사진으로 일컬어진다. 뿌연 새벽안개 속에서 죽음의 길목으로 떠나는 이름 모를 장병들을 촬영한 이 사진은 승리의 영광보다는 상황의 절박함을 보여주고, 프레임 가득히 죽음의 무거움을 담아낸다.

‘노르망디 오마하 비치에 상륙하는 미군부대’, 프랑스 노르망디, 1944년 6월6일


해방의 날’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프랑스 남서부 도시 샤르트르에서 촬영한 독일군 부역 여인의 모습은 시민에게 둘러싸여 굴욕을 당하는 장면이지만, 역설적으로 광기어린 시민들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하는 한 인간의 내적인 사연에 더욱 주목하게 만든다. (실제 이 사진 한 장을 추적하여 독일 TV에서 다큐멘터리를 방영한 적이 있다.) 그의 이런 접근은 사진은 단지 기록의 모습으로만 읽어 낼 수 없는 다양한 국면을 가지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기록은 인간이 처한 상황에서 나온다. 상황의 표피만을 보여주면서 우리는 이를 사진적 기록물이라고 한다. 하지만 진실은 기록이라는 표면 뒤에 숨어 있다. 사진가는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이를 표현한다. 상황의 뒤에 숨어있는 또 다른 진실은 수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모티브를 제공하며 이것이 사진이 가진 가장 큰 힘일 것이다.

단순히 전쟁사진가로 부르기에는 부족할 만큼 카파는 현대사진사에 큰 족적을 남겼고, 후대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사진가로서 그는 전쟁이라는 새로운 영역으로 사진적 표현의 장을 넓혔다. 그는 사진을 통해 인간의 이념이 충돌하고 끝없이 변화하는 전쟁터에서 사진가가 어떻게 대상을 읽고 표현하고, 이를 통해 역사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이는 20세기 들어와 ‘카파이즘’이라고 불리며 사진사에 새로운 전형을 만들었다. 하지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신’으로만 카파이즘을 가두어놓기보다는 불운한 20세기를 관통해 나간 낭만적 정신의 소유자로서 카파를 보고 싶다. 20세기 전반, 죽음과 악의 세계를 온몸으로 체험한 현장의 사진가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거대한 영감과 믿음의 세계를 소유했으리라 추측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죽음의 세계에서도 언제나 잃지 않았던 그의 쾌활과 행복의 감정은 개인적으로는 극단의 상황에서 그를 지탱해준 원동력이었고, 더 크게는 우리가 인류사를 올바르게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흔히 사진가는 카메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는 순간 눈앞의 피사체와 격리되면서 제3자가 되어 대상을 촬영해 나가기 시작한다고 한다. 하지만 카메라 뒤에서 참지 못하고 흘린 눈물은 인류사의 공포를 직접 체험한 사진가의 가슴에서 우러나온 것임이 분명하다. 흔히 21세기에 들어서면서 휴머니즘의 시대는 지나간 것으로 여겨진다. 감성보다는 이성으로 세상이 움직이며 그 이성은 또 다른 창조의 원동력이라고 한다. 하지만 카파가 가지고 있던 인간의 뜨거운 감성은 이성적 판단이 아니라 감성으로 세상을 표현했고, 그 사진가의 뜨거움을 통해 우리는 세상을 뒤흔든 중요하지만 아름다웠던 순간을 사진으로 목도하게 된다.

‘강제수용소로 이동 중인 스페인 난민들’, 프랑스 바르카레, 1939년 3월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사진의 전통적인 기술이 변화하고 새로운 소통구조가 형성되는 현 시대에도 카파의 상상력과 생각은 여전히 유효한 진행형이다. 휴대폰 카메라와 SNS로 누구나 다수와 소통이 가능한 시대에 진실을 추구하는 카파의 정신은 더욱 중요한 인간 삶의 중심축이 될 수 있다. 국민 대다수가 기자가 될 수 있는 시점에 가짜와 진짜를 찾아내 구별하는 지칠 줄 모르는 정신과 타인과의 소통을 향한 개개인의 욕구는 우리 시대를 지탱하게 해주는 원동력일 것이다.

바로 그 정신이 로버트 카파 사후 60년이 된 지금의 ‘카파이즘’이다.

이번 로버트 카파 탄생 100주년 전시는 우리 사회에서 사진의 가치를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개인의 욕망보다는 다수를 위해 살다간 사진가의 삶을 그가 인화지에 남기고 간 역사적 순간들을 통해 재조명해 보았으면 한다. 이번 전시를 통해 관람객들은 사진의 사실적인 힘으로 완성된 세계의 역사와 짧은 생애를 영화처럼 역동적으로 살아간 사진가의 진정한 삶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