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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正熙는 듣는 사람이었다

淸山에 2013. 6. 3.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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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正熙는 듣는 사람이었다

 

 

그는 역사의 原理와 인간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깊었다. 여기서 우러나오는 전략과 실천은 단순명쾌하게 정리된 것이었다. 말장난이나 현학적 관념론이 낄 틈이 없는 실용성과 합리성이 거기에 있었다.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지도력의 일관성과 입체성
      
       석유파동과 中東진출, 그리고 중화학공업 건설. 1970년대 한국경제의 3大 주제를 관리하였던 네 인물이 있다. 비서실장으로서 경제정책의 총사령탑 역할을 했던 金正濂, 재무장관과 경제기획원 장관 겸 부총리였던 南悳祐, 경제제1수석비서관과 재무부 장관을 지냈던 金龍煥, 중화학공업과 방위산업 담당이었단 경제제2수석비서관 吳源哲.
       당시 金실장과 南장관은 50대, 吳 金씨는 40대였다. 이 네 사람은 최근까지도 왕성한 저술과 강연활동을 통해서 朴대통령의 업적과 지도력을 전파하였다. 1970년대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이 네 사람의 증언과 기록은 안심하고 인용할 수 있다. 대통령을 지근 거리에서 모시면서 國政의 핵심을 다루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증언에서 드러나는 朴대통령의 국가경영술은 철학, 전략, 전술, 정책, 실천이 일관되게 흐르고, 입체적으로 짜인 아름다운 건축물 같다. 朴대통령의 국가 운영에서 발견되는 일관성과 입체성의 비결은 무엇인가.
       그는 골똘한 사색과 독서를 통해서 밑그림을 그리고 거기에다가 치밀한 설계와 신속한 실천, 그리고 철저한 확인으로써 속을 채워갔다. 겉으로는 엄정하고 경직되어 보이는 그의 국가경영술은 안으로 들어가보면 의외로 부드러웠다.
       그는 역사의 原理와 인간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깊었다. 여기서 우러나오는 전략과 실천은 단순명쾌하게 정리된 것이었다. 말장난이나 현학적 관념론이 낄 틈이 없는 실용성과 합리성이 거기에 있었다.
      
       박정희는 대구사범 5년, 만주군관학교 2년, 일본 陸士 2년, 한국 陸士 6개월, 미국 유학 1년, 陸大 1년 등 군대에서만 10여년의 교육을 받은 사람이다. 한국, 미국, 일본식 군사 교육을 다양하고 입체적으로 받았다. 그는 강한 주체성으로 외래 문물을 흡수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그는 독서를 좋아한 교양인이었다. 주체성이 확립된 교양인만이 가질 수 있는 균형감각과 입체적 시각이 리더십의 바탕이었다.
      
       * 朴正熙 리더십 12계명
      
       1. 화합형 정책 결정: 朴대통령은 무엇보다도 듣는 사람이었다. 엉터리 보고라도 끝까지 들어주었다. 좀처럼 즉석에서 반대하지 않았다. 일단 본인의 의견을 제시한 뒤 主務장관이 다시 한번 심사숙고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대통령의 지시가 아니라 주무장관이 發案한 정책이 채택되는 방식을 취하도록 했다. 그렇게 해야 정책에 대한 주인의식이 생기고 일을 할 때 신바람이 나는 것이다. 朴대통령은 자신이 하고싶은 일을 남을 통해서 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2. 민주적 정책 결정: 朴 대통령은 어떤 회의에서도 먼저 발언하지 않았다. 토론을 시켜 문제가 제기되고 贊反의견의 방향이 잡혀가면 그때 결론을 도출하고 필요한 보충지시를 내렸다. 당시의 정치체제와는 다르게 경제정책의 결정과정은 민주적이었다.
      
       3. 생산적 회의: 朴 대통령은 월간경제동향보고, 수출진흥확대회의(무역진흥회의), 청와대 국무회의, 국가기본운영계획 심사분석회의, 방위산업진흥확대회의를 定例化하였다. 이들 회의는 대통령이 國政을 종합적으로 규칙적으로 파악 점검하고 살아 있는 정보를 얻는 기회였다.
      
       4. 철저한 확인과 일관된 실천: 朴 대통령은 계획수립에 20%, 실천과정의 확인에 80%의 시간을 썼다고 한다. 중앙부처 및 지방 순시 등 현장 시찰을 자주 한 것도 집행의 확인과 사람들의 士氣 진작을 위한 것이었다. 그는 원칙을 견지하면서도 계획의 수정이 필요할 때는 토론절차를 거쳐 신속하게 했다.
      
       5. 국민의 각성과 참여: 朴 대통령은 국민들이 自助정신을 발휘하여 자발적으로 건설에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데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는 인간과 조직의 정신력에 주목한 사람이다. 그는 한국인의 민족성처럼 되었던 패배의식과의 싸움에 이긴 사람이다. 그는 京釜고속도로 건설 같은 눈에 뜨이는 구체적 업적을 통해서 국민들의 체념과 自虐을 자신감으로 교체해갔다. 의욕을 불어넣기 위해 '새마을 노래', '나의 조국' 도 작사 작곡했다.
      
       6. 정부는 맏형, 기업은 戰士: 朴 대통령은 경제관료와 기업인이 異見을 보이면 많은 경우 기업인 편을 들어주었다. 그는 정부 주도형 경제개발정책을 채택했으나 기업이 엔진이고, 경제전선의 戰士는 기업인이라고 생각했다. 대통령은 기업 엘리트를 존중해주었고, 기업인들은 '대통령은 우리 편'이라고 생각했다.
      
       7. 내각에 권한과 책임 위임: 청와대 비서실이 장관 위에 군림하는 것을 금지시켰고 장관의 인사권을 존중했다.
      
       8. 관료엘리트 중시, 학자들은 자문역: 실천력을 중시하던 朴대통령은 집행기관장으로서는 학자를 거의 쓰지 않았다. 학자들은 자문역으로만 부렸다. 거의 유일한 예외는 서강대학교 교수 출신인 南悳祐 부총리였다. 南부총리도 실무능력의 검증을 거친 다음에 重用되었다.
      
       9. 정치와 군대의 압력 차단: 그는 관료들이 國益과 효율성의 원칙하에서 소신대로 일할 수 있도록 군인들과 정치인들의 경제에 대한 개입을 차단하고 견제했다. 군대의 힘으로써 집권한 사람이 군대의 영향력을 약화시킨 예는 매우 드물 것이다.
      
       10. 경제발전 우선주의: 朴대통령은 경제발전이 결국은 안보와 민주주의 발전으로 연결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先 경제발전, 後 민주화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에 따른 비난에 대해서는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로 대응했다.
      
       11. 市場의 한 멤버로서의 정부: 朴 대통령은 정부가 시장의 규제자가 아니라 한 참여자라고 생각했다. 朴대통령 시절의 정부는 시장 지배자라기보다는 시장의 일원으로서 시장 기능을 촉진시키는 역할을 했다. 정부는 기업가, 은행가, 개혁가로서의 역할도 했다. 電力, 철강 등 민간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은 정부가 公기업을 만들어서 맡아서 하되 경영은 민간기업 방식으로 운영되도록 했다. '官治경제가 아니라 대통령이 CEO로 뛴 주식회사 대한민국이었다(김용환)'
      
       12. 주요 전략 선택의 적중: 朴 대통령이 채택한 수출주도형 공업화정책, 중점 투자전략, 先성장-後분배 전략, 과감한 외자유치 전략은 모두 성공했다. 朴 대통령은 정책과 전술은 수시로 변경했지만 철학과 전략은 18년 동안 그래도 밀고나갔다.
      
       *박정희의 정확한 언어감각
      
       1964년 8월3일에 있었던 국방대학원 졸업식 諭示(유시)에서 朴正熙 대통령은 “무엇보다도 국가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社會的 安全’이 先行되어야 하겠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으리라고 확신해 마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원래 아래에서 올린 연설문 草稿(초고)엔 ‘社會的 安全’이 ‘國內的 安全’으로 되어 있었다. 朴 대통령은 ‘國內的 安全’이란 말이 앞의 ‘국가의 안전’과 중복된다고 판단하여 ‘社會的 安全’으로 바꿈으로써 문장의 의미를 명료하게 한 것이다.
      
       초안: <국방과 施政전반에 걸쳐 일선에 나선 여러분들은 좀더 새로운 決意와 노력으로써 국민의 각성과 분발을 촉구하며...>
       박정희의 교정: <국방과 施政전반에 결쳐 일선에 나선 여러분들은 좀더 새로운 視覺과 노력으로써 국민의 각성과 분발을 촉구하며...>
       '결의와 노력'에서 '결의'를 '視覺'으로 바꾸니 의미가 확실해지고 중복이 없어진다. '새로운 결의와 노력'은 상투적이지만 '새로운 시각과 노력'은 연설자가 무엇을 주문하는지가 명확하다.
      
       朴 대통령의 정확한 언어감각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 정도의 언어감각은 편집기자 정도의 직업적 수준이다. 언어감각이 뛰어나다는 것은 知的 수준이 높다는 의미이고 이런 자세로 일을 하면 사고가 생기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