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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停戰직전… 이승만·아이젠하워, 서로를 극도로 불신[오늘의 세상]

淸山에 2013. 5. 28. 05:01

 

 

 

 

 

 

[오늘의 세상]

6·25 停戰직전… 이승만·아이젠하워, 서로를 극도로 불신
 원선우 기자

 

 

 

[韓美 극비 서한 비밀 해제]

국제 지도자 停戰협정 찬성에 이승만 "나약함을 자백하나"
"한국의 反共포로 석방은 유엔司 권위에 대한 폭력" 아이젠하워, 이승만 맹비난

  
6·25전쟁 정전(停戰) 직전 이승만 대통령과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 사이에 오간 극비(極�) 서한들이 공개됐다.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에 보관돼 오던 이 서한들은 서울대 국제대학원 박태균 교수에 의해 존재가 확인됐고, 작년 연말 정부 심의를 거쳐 비밀이 해제됐다. 편지 28통에는 반공 포로 석방과 한·미 상호조약 체결 등을 놓고 한·미 정상이 팽팽한 줄다리기를 벌였던 내용이 생생히 담겨 있다.

편지에서 이 대통령은 아이젠하워에게 북진 통일을 위한 한국군 단독 작전 가능성을 시사하는가 하면, 정전협정에 찬성하는 국제 지도자들에게 '나약함을 공개적으로 자백한다(open confession of weakness)'고 비난했다. 정전 전후 아이젠하워 대통령 및 참전국 지도자들과 겪은 갈등이 실감 나게 드러나는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이 1952년 12월 3일 당선인 자격으로 한국을 방문한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을 맞아 악수하는 모습.

이승만 대통령이 1952년 12월 3일 당선인 자격으로 한국을 방문한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을 맞아 악수하는 모습.   

 서울대 박태균 교수는 6·25전쟁이 정전(停戰)되기 전 양국 대통령 사이에 오간 극비(極쨶) 서한들을 공개했다. /조선일보DB 


이 대통령은 1953년 4월 9일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북진 통일에 협조해줄 것을 강력히 제안하면서 "(우리에게 동의하지 않는다면) 미국이 철군해도 상관없다"고까지 했다. 아이젠하워는 같은 달 25일"귀국의 방위를 돕는 우리나라 또는 타국 정부가 지지할 수 없는 행동을 한다면 (중략) 귀국에 재앙이 될 수밖에 없다"면서 "우리(미국) 국민의 엄청난 희생으로 얻은 모든 것을 말살하게 된다는 점을 알리라 믿는다"는 내용의 경고성 답신을 보냈다.

 

 

북진 통일을 주장하며 정전협정 체결에 한사코 반대하던 이 대통령은 1953년 6월 18일 반공 포로 2만7000여명을 대통령 직권으로 석방했다. 아이젠하워는 다음 날 보낸 서한에서 "귀하의 명령은 유엔사령부의 권위에 대한 남한 분자들(South Korean elements)의 공개적 폭력을 통해 이행됐다"며 이 대통령을 맹비난했다. 그는 이 대통령의 행동을 '분명한 위반(clear violation)'으로 규정하고 반공 포로 석방이 유엔사령부를 '통제 불가능한 상황(impossible situation)'으로 몰아넣었다고 비난했다.

 

양국이 반공 포로 석방 이전부터 한·미 상호방위조약 체결을 추진하고 있었다는 정황도 드러났다. 이 대통령은 반공포로 석방 전인 5월 30일 아이젠하워에게 보낸 편지에서 "상호방위조약에 다음 조항을 포함하기 바란다"며 유사시 미국의 무조건적 전쟁 개입, 한국에 대한 무조건적 전쟁 물자 지원, 미국의 해·공군 잔류 등을 요구했고, 아이젠하워는 6월 6일 답신에서 "정전협정이 체결되면 상호방위조약을 협상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1953년 6월 6일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이 이승만 대통령에게 보낸 극비 서신.

 1953년 6월 6일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이 이승만 대통령에게 보낸 극비 서신. 아이젠하워 대통령은“필리핀·호주·뉴질랜드와 유사한 수준의 상호방위조약을 한국과 협상할 준비가 돼 있다”고 썼다. /대통령기록관 제공 


당시 덜레스 미 국무장관과 이 대통령이 주고받은 서신 16통도 함께 공개됐다. 덜레스가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고위급 극비 회담'을 제안했다는 것이나, 이 대통령이 미 국무부에 자신의 비방이 진심이 아니었음을 알아달라고 부탁하는 내용 등 양국 외교 관계의 내막을 알려주는 단서가 담긴 편지들이다.

 

 

박 교수는 "이승만은 '38선 수복' '북진 통일' '중공군 침략 방어' '종전(終戰)' 등 전쟁 목표를 자꾸 바꾸는 미국에 불만을 품을 수밖에 없었고, 아이젠하워는 현실적으로 무리인 북진 통일을 주장하는 이승만과 대화하는 것을 난감해했다"며 "2차대전 이후 최대 전쟁이었던 6·25전쟁 말기 국운(國運)을 걸고 교섭에 임한 두 정상의 고뇌가 짙게 녹아 있는 이 편지들은 한·미 동맹 60주년을 맞아 더욱 뜻깊은 자료"라고 평가했다. 박 교수는 오는 30일 서울대 규장각에서 열리는 '60년 전 그들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 학술회의에서 관련 내용을 발표한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