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13일 : 다른 대안(代案)에의 미련 <11월13일(목), 외환보유고 2백64.7억 달러. 종합주가지수 5백19.5 김인호 수석은 7일의 외환관리 비밀회의 후 일주일도 안돼 끝없이 빠져나가는 외환보유고와 폭락만 하고 있는 증시(證市)상황을 점검하면서 결론을 내려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무너지는 것은 비단 외환보유고뿐만이 아니었다. IMF로 가지 않고 이 상황을 막을 수 있는 마지막 대안으로 기대를 걸고 있던 것들도 하나씩 나가떨어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즈음 기대했던 일본으로부터도 사실상 「안되겠다」는 통보였다. 강만수(姜萬洙) 재경원 차관의 증언. 『홍콩주가의 대 폭락 사태로 일본은행이 자금을 회수해가기 시작한 것이 큰 일이었다. 일본도 사정이 매우 어려웠기 때문이다. 9월 말 일본계 은행들이 상반기 결산을 위해서 회수해간 자금들은 결산이 끝났는데도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한국은행에서 IMF 자금을 끌어쓰자는 이야기가 나올 때만 해도 우리가 언제가 끌어쓸 수 있는 55억 달러의 SDR(Speical Drawing Rights : IMF의 특별인출권)을 쓰자는 이야기였다. 이 이야기가 나온 것도 11월7일이었다. 정부는 당시 일본 중앙은행으로부터 1백억 달러 규모의 국가간 보조금융, 즉 백업 퍼실리티(BackUp Facility)와 국제금융기관으로부터의 협조융자 등 1백∼2백억 달러를 끌어들이려고 했다. 이 두 가지만 되면 IMF에 안갈 수 있다고 판단했다. 처음에는 될 것 같았으나 일본과의 협조는 될 듯 말 듯하다 안됐다. 일본도 내부사정이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다른 관계자의 증언. 『정부는 10월 말 가용보유고 2백4억 달러에, 일본 중앙은행과의 스왑(Swap : 백업 퍼실리티와 비슷한 개념으로 나라간의 보조 금융) 1백억 달러, 컨소시엄 론(Consortium Loan) 1백억 달러, IMF에서 빌려오는 돈 55억 달러가 성사되면 모두 4백60억 달러의 외환을 보유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외환보유고 확충에 총력을 기울였다. 반면 윤진식 비서관 등 일부에서는 「컨소시엄 론은 안전하지 못하다 확실하게 하려면 IMF에 가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당시엔 IMF에서 빌려오는 돈은 우리가 빌리려고 하는 돈 중에서 일부여야 한다고 생각하여 IMF에 완전히 묶이지 않는 방법을 먼저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13일 시점에서 외환보유고를 계속 방어할 수 있는 힘은 우리 정부 손에 남아 있지 않았다. 정책팀에서는 「IMF로 가서 많은 외환은 확보해 놓으면, 국제신인도가 회복되어 외환이 빠져나가는 일은 없겠지」하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이 시점에서 왜 경제팀이 국민들과 정치권에 실상을 제대로 알려 협조를 구하지 않았나 하는 의문에 제기된다. 그들은 IMF로 갈 수밖에 없다는 상황이 밖으로 알려지면 외환시장의 혼란과 주식시장의 폭락은 불을 보듯 뻔한 상태이므로 비밀리에 IMF와의 협의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그러면 왜 이 중대한 문제를 경제팀의 수준에서 붙들고 있었던가. 자력(自力)으로는 풀기 어려운 수학문제가 있는데 왜 선배와 선생님을 동원하지 않았나. 즉, 대통령에게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알리고 정치권에 협조를 당부하여 경제팀만이 아니라 정부와 국가의 힘을 총동원하는 방법을 없었을까. 이런 질문에 대한 당시 경제팀의 곤혹스러운 반응을 우리가 해석한다면 이러하다. 『대통령은 외환위기를 비롯하여 경제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근본적으로 취약한 분이고 정치권은 대통령 선거에 빠져들어 국익 차원의 판단이 마비된 상태였다』
13일 점심 : 이총재-김수석 협의 13일 오전 김인호 경제수석은 비서를 통해서 금융통화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던 이경식 한은 총재와 점심을 하자고 연락했다. 중요한 일이니 웬만한 다른 약속은 취소하고 식사를 하면서 논의하자는 것이 김수석의 제안이었다. 김수석은 저녁에 부총리와 대책회의를 하기로 약속을 해 놓았으니 사전에 한은 측과 조율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점심식사 자리의 대화는 무거웠다.
김수석 : 『상황을 어떻게 봅니까』
이총재 : 『아주 힘든 상황입니다. 일주일 전(7일)보다 더욱 어렵습니다』
김수석 : 『IMF로 가는 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총재 : 『가야 할 것 같습니다』
김수석 : 『다른 대안은 없습니까. 재경원의 대안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이총재 : 『재경원 쪽에서는 자꾸 외환사정을 모르고 그러는데 백업 퍼실리티나 각국 신디케이트 론을 추진하려면 몇 달씩 걸리는데 시기적으로 너무 늦었으며, 다른 안들도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외환보유고와 외환출입을 매일 체크하는 우리(한은) 입장에서는, 외환보유고의 이상(異常)적인 감소가 너무 가파르니까 더 긴박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이때 김수석은 홍재형 전 부총리가 자신에게 비슷한 이야기를 하더라는 대통령의 말을 떠올렸다. 김수석은 이총재에게 넌지시 물었다.
김수석 : 『대통령께서 IMF에 대해 홍재형 부총리의 건의 이야기를 하시던데, 혹시 이총재께서는 무슨 말씀을 드린 것이 있습니까』
이총재 : 『아, 대통령께서 전화로 물어오셨기에 IMF로 가는 것이 불가피한 것 같다는 말씀은 드렸습니다』
김수석은 『언제였느냐』고 묻지는 않았다. 김수석은 이 자리에서는 주로 듣는 입장이었다. 이총재와 점심을 하고 돌아온 김수석은 이날 오후 대통령에게 다시 보고를 하러 들어갔다. 『오늘 밤 부총리, 한은 총재와 다같이 논의를 하고 아예 결론을 내고 돌아오겠습니다. 그리고 내일 아침에는 부총리께서 들어와 보고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심야회의의 결론 김수석은 대통령이 뭔가 부총리에게 대해서 불만스러운 점을 가진 것 같다고 느끼고 있던 터라, 『내일 보고에는 한은 이(李)총재도 같이 와서 보고토록 하겠습니다』고 덧붙였다. 이날 밤 6시30분 르네상스 호텔. 강경식 부총리, 김인호 경제수석과 한은 이경식 총재가 재경원과 한은의 관련참모들을 데리고 모였다. 이들은 저녁을 먹고 재경원의 유재한(柳在韓)과장(산업금융담당관)의 브리핑을 들었다. 재경원 쪽에서 검토해오던 정부가 보증하는 해외채권, 즉 ABS실행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자연스럽게 내려졌다. 사실상 마지막 대안이 물 건너간 것이었다. 『ABS가 안되면 다른 대안들은 백업 퍼실리티로 다른 나라들로부터 빌어오는 수밖에 없는데 지금의 외환상황으로는 그것만으로도 부족할 것이 확실시된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재경원 실무진들도 동의했다. 실무진을 우선 보내고 난 뒤, 부총리 한은총재 김수석 윤실장만 남아 다음날 대통령에게 들고 갈 보고내용을 협의했다. 결론은 「IMF로 갈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금융개혁법안과 종합안정 대책 등 그 동안 추진해온 것들은 추진하되 동시에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기로 결론을 내린 것이었다. 다른 부분들에 대해서는 이견을 보이거나 해석을 달리하고 있는 이들도, 이날의 회의 결과에 대해서는 모두가 「IMF 구제금융으로 가기로 합의했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논의가 마무리된 후 김수석은 『내일 아침의 보고 때는 두 분이 같이 들어오시는 게 좋겠습니다』고 말했다. 김수석은 강부총리가 어떻게 생각할 지 몰라, 대통령에게 이미 「두 사람」을 같이 들어오도록 하겠다고 보고한 사실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이날 언론은 전경련이 경제난 타개를 위해 금융실명제 유보를 촉구했다는 내용과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이 급상승하고 있다는 여론조사를 중점적으로 보도했다. 한국 금융위기에의 대응방안으로 환율의 변동폭을 넓혀야 한다는 미국 하버드대학 제프리 삭스 교수의 글도 눈에 띄었다.
11월 14일 : 『문민경제를 끝났습니다』 <11월14일(금), 외환보유고 2백64.4억 달러. 종합주가지수 5백20회복> 11월14일 아침 8시10분, 청와대 본관 대통령 집무실, 강경식 부총리, 이경식 한은 총재, 김용태(金瑢泰) 비서실장, 김인호 경제수석은 대통령에게 보고를 하기 위해 모였다. 원래 이 시간은 비서실장의 시간대이다. 사안이 중대하여 대통령이 출근하자마자 바로 비서실장을 따라 들어가 보고할 수 있도록 양해를 얻어두었다.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대부분 출근하기 전이라 보안에도 용이하다는 점도 고려되었다. 강부총리가 간단한 메모만을 놓고서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보고 내용은 크게 세 가지였다. 금융개혁법안의 처리와 종합안정대책의 수립 및 발표, 일본 미국 유럽에서 2백억 달러 정도를 빌려오는 과제, 그리고 이것들이 안되면 「IMF로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대통령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김대통령은 평소에도 경제관련 보고에 대해서는 별다른 질문이나 이견을 보인적이 없었다. 이날도 대통령의 반응은 『그대로 해』하는 식이었다. 강부총리는 틈틈이 그날 그날의 메모를 컴퓨터에 입력을 해 놓은 습관이 있는데, 이날의 메모는 「대통령의 결심이 확고했다」였다. 이경식 한은 총재도 대통령의 다른 반응은 기억에 없고 대통령이 『IMF로 가라』고 강하게 말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김수석의 기억도 유사하다. 이총재는 이날부터 IMF 협상이 타결되던 시점까지 열흘정도 대통령이 이틀에 한 번 꼴로 자신의 집 아니면 사무실로 전화를 해 상황을 물었다고 했다. 평소 직설적인 표현을 즐겨 쓰는 강부총리는 이날 자신의 의견을 사족처럼 덧붙였다고 한다.
『IMF로 가는 문제로까지 발전할 줄은 몰랐습니다. 이것을 하면 아마도 언론은 「문민경제의 IMF에 의한 마감」으로 보도할 것입니다. 지금 대통령 선거를 한달 앞두고 있는데 특히 정치권은 그렇게 평가할 것입니다. 그 동안 각하가 아무리 잘한 것이 있더라도 문민경제는 IMF 구제금융으로 끝났다고 평가할 것입니다』 이 같은 강부총리의 이야기에 대통령의 반응은 『IMF로 가라』는 것이 전부였다고 참석자들은 기억하고 있다. 따라서 김영삼 대통령이 『IMF로 가야 합니다』라는 아래로부터의 건의에 대해서 『꼭 내 임기 중에 가야 하느냐』고 제동을 걸었다는 항간(巷間)의 설은 부정된다.
대통령인가, 구경꾼인가 김영삼 대통령은 IMF에 간다는 의미와 그 후유증에 대해서 예상하고 있는 상태에서 그런 결심을 했을까. 경제팀은 대통령에게 그런 정보를 충분히 전달하여 판단에 도움이 되도록 했을까. 경제부총리 중심제가 아닌 대통령중심제 아래에서 이런 큰 문제에 대해서 대통령이 아무런 질문이나 이견을 제시하지 않고 한 마디로 간단하게 재가를 하는 것을 상식적으로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을까. IMF로 가는 문제에 대해서 대통령과 참모, 그리고 장관들 사이에서 아무런 토론이 없었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 것인가. 대통령과 경제팀의 대화는 보고와 접수로 끝나고 있다. 아무런 지적(知的)인 충돌과 토론이 없다. 대통령의 고뇌도 절실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는 나라의 경제가 내려앉고 있는 바로 그 상황의 중심에 있어야 할 대통령이 구경꾼 역할밖에 못하고 있었다는 그 적나라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이 이번 사태의 핵심적인 진실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그 영향이 한 세대나 갈지도 모르는 한국현대사의 결정적인 순간에 대통령은 실종상태였다는 얘기이다.
이날 보고자들은 한편으로는 혹시 마지막 순간에 김대통령이 정치적으로 접근해서 반대하면 큰일인데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한다. 대통령이 『IMF로 가라』고 말해 그만큼 부담을 던 기분이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보고를 마치고 나온 다음에도 IMF 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 대통령께서 정말 알고 있는 건가라는 의문이 남을 정도였지만. 이날 대통령의 대한보고 후 바로 강부총리는 방콕에 와 있던 캉드쉬와 접촉할 것을 김기환(金基桓) 대사에게 지시했다. 김기환 대사도 방콕에 머물고 있었다. 김대사는 비밀리에 캉드쉬를 만난 자리에서 금융시장 안정책과 금융개혁법의 추진상황을 상세히 설명한 뒤 유동성 부족의 해소를 위한 도움을 요청했다. 김대사는 동시에 IMF와 구제금융 협의를 시작하겠다는 정부의 뜻을 전달했다. 귀국 길에 비밀리에 서울에 들려줄 것도 부탁했다.
이날 언론은 여전히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사정과 다소 동떨어진 편집을 하고 있었다. 대학 특차 선발 등 98학년도 대학 모집요강 확정 기사, 금융개혁법안을 둘러싸고 재경위에서 여당 측 의원의 자격 시비가 일어나 표결을 하지 못했다는 내용, 대통령 후보자들의 TV토론, 종금업계의 부실관련 기사 등등. 이날 한국은행, 증권-보험감독원 직원들은 금융개혁법안의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서 국회에서 농성을 벌였다. 세 명의 전직 한은 총재들도 이들 편을 드는 기자회견을 했다. 주요 쟁점은 금융감독원을 재경원 장관 아래에 두는 데 대한 찬반이었다. 강경식 의원은 요사이 『이 금융개혁안은 재경원의 기득권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었고 내부의 반발을 누르고 입안한 것이었는데도 이를 언론이 한은과 재경원 사이의 밥그릇싸움으로 몰고 감으로써 한은 노조와 정부 기관을 동격으로 대접했다. 이런 것이 정부의 사태해결능력을 빼는 일이었다』로 말하고 있다.
11월15일 : 3백억 달러를 빌리자 <11월15일(토), 외환보유고 2백64.3억 달러로 3일째 안정, 종합주가 5백19.4선 유지> 외환 위기상황에 대한 경제팀의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된 지 1주일이 지난 15일 외환시장과 증권시장은 오랜만에 안정세를 보였다. 물론 크고 작은 공방이 겹친 그런 불안 속의 답보상태였다. 이날 밤 9시 인터컨티넨탈호텔. 강(姜)부총리와 김(金)경제수석, 이실장, 엄낙용 제2차관보 등 참모를 대동하고 비밀전략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김기환 대사가 처음으로 배석했다. 보안 유지를 위해 참석 인원을 최소한으로 제한한 회의였다. 윤진식 비서관은 이날 회의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중요 회의들이 새벽 아니면 토요일, 일요일 오후에 많이 이루어진 것은 참석자들이 맡은 일들을 하고 나서 비밀리에 모여 회의를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날 회의에서는 먼저 「IMF 캉드쉬 총재 서울 비밀 입국 작전」이 논의되었다.
공항과 호텔에서의 보안 유지를 위해 캉드쉬 총재에게 평상복을 입게 하고 공항에선 귀빈실이나 의전실 대신 통상 출입구를 이용할 것, 김우석(金宇錫) 국제금융증권 심의관이 혼자 공항에 나가 그를 모셔오는 방안이 구체적으로 논의됐다. 그가 한국을 방문했다는 사실 자체가 국제적인 파장을 일으킬 수 있었기 때문에 보안은 필수적이었다. 이날 회의의 초점은 IMF에 요구할 구제금융의 규모. 며칠 전까지만 해도 외국에서 2백억 달러 정도를 빌려온다는 안을 추진하고 있었기 때문에 IMF로부터 빌려오는 돈은 50억 달러 수준이면 된다는 안이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날은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1주일 사이에 외환보유고는 20억 달러 이상 빠져나갔고 가용 외환보유고도 7일 수준보다 40억 달러 정도 줄어든 상태였다. 이 속도면 3∼4주도 넘기지 못하고 국가부도 사태를 맞아야 할 것이다.
IMF 협상에 3개월 정도가 소요되는 점을 감안하면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었다. 김인호 수석은 2백억 달러 정도를 생각하고 있었다. 이경식 총재가 『3백억 달러로 하자』고 제안했다. 참석자들은 좀 많지 않느냐는 반응이었다. 이총재는 『이왕 하는 김에 넉넉하게 해놓자. 일종의 크레디트 라인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IMF로 가면 바로 상환만기연장 등 상업베이스의 금융이 재개될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따라서 외화를 많이 빌려놓을수록 시장은 빨리 안정될 것이라고 보았다. 이 IMF 구제금융액이나 은행의 크레이트 라인(대출한도)은 「마이너스 통장」과 비슷한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하면 설사 과다한 카드 사용대금으로 월급이 들어오는 날보다 앞서 통장이 마이너스 부도처리하지 않고 대신 카드회사에 지급해준다. 3백억 달러를 빌려준다는 것은 IMF가 이 정도를 마이너스 통장처럼 관리해 주겠다는 이야기가 된다. 많은 이들이 오해하고 있듯이 한꺼번에 3백억 달러의 돈이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캉드쉬 IMF 총재, 나이스 아태 담당관, 그리고 보좌관이 들어오기로 했기 때문에 한국 측 참석범위도 부총리, 한은 총재, 엄낙용 차관보와 담당국장으로 했다. IMF 구제금융신청 계획이 구체적으로 진행 중이던 이날 신문은 재경원과 한은이 금융개혁법 처리를 둘러싸고 「경제불황을 유발시킨 주범끼리」영토분쟁을 벌이고 있다고 크게 보도했다.
11월16일 : 손가락 세 개 일요일인 16일은 기자들의 추적을 걱정하지 않고 움직이기 좋은 시간이었다. 이날 저녁 6시30분 인터컨티넨탈호텔. 캉드쉬는 비밀리에 서울 잠입에 성공했다. 캉드쉬 일행 3명과 강(姜)부총리, 이(李)한은 총재 등 우리측 관계자와의 협상이 시작됐다. 김인호 수석은 나중에 결과를 통고 받기로 하고 서울시내 자택에서 대기 중이었다. 캉드쉬의 첫 질문은 외환보유고의 실태였다. 이경식 한은 총재가 설명했다. 이때는 이미 단기외채의 만기연장률(롤 오버)이 급격히 떨어져 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외환보유고는 2백60억 달러를 약간 상회하는 수준. 그나마 국내은행이 외국지점에 맡겨놓은 돈을 제외한 가용 외환보유고는 1백70억 달러 남짓했다. 「선물환대금」까지 이 외환보유고에서 제외한다면 더 내려가게 되었다.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IMF 측과 한국 측은 바로 IMF건의 추진 일정과 절차에 대한 논의에 들어갔다.
이 자리에 있었던 이경식 총재의 증언. 『당시 외환보유고에 대한 외신들의 의심 등 여러 가지 억측이 있었으므로 우리는 자료를 공개했습니다. IMF측도 우리의 「억울하면서도 다급한」형편이 어떤지 바로 이해했습니다. 나는 회의를 시작하자마자 다짜고짜로 「IMF 측에서 돈을 내놓아야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뭐 앞 뒤 생각할 틈도 없이 떠오르는 단어대로 「당신 호주머니에서 돈 좀 빌려야겠다(I need the money from your pocket)」이라는 엉터리 영어가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습니다. 상황이 그만큼 급했습니다』 설명을 듣고난 캉드쉬는 『그럼 대체 얼마나 필요하느냐』고 물어왔다. 이총재는 대답대신 급한 김에 손가락 3개를 펴서 『이만큼 필요하다』고 답했다. 다시 캉드쉬가 물었다. 『30억 달러요?』 이경식 총재가 답했다. 『아니오. 3백억 달러요』 그렇게 해서 지원금액은 15일 한국 측 대책 회의에서 결정한 대로 3백억 달러로 확정했다. 한국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캉드쉬가 먼저 물어왔다. 『그럼 대통령 선거 전(前)에라도 할 겁니까』 이경식 총재는 어떤 영어 단어를 사용했는지는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여유 있게 할 형편은 아니다』라고 다급함을 설명했다.
대통령 후보들의 전원동의 문제 「대통령 선거」라는 단어가 나오면서 잘 풀리는 것 같던 논의가 조금씩 엇갈리기 시작했다. 캉드쉬는 돌연 『그렇다면 「대통령 당선자」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내걸었다. 대선 전(大選 前)이라면 대통령 당선자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유력 대통령 후보 전원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뜻이 된다. IMF 논의 자체를 비밀에 부쳐온 한국 측으로서는 정치적으로 대단히 민감한 사안이었기 때문에 강부총리는 『이 문제는 우리에게 맡겨달라』고 말했다. 한국 측은 금융개혁법의 국회 통과와 동시에 강도 높은 금융시장 안정대책을 발표하는 것은 물론이고 소신 있게 개혁을 주도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IMF측은 이 같은 한국 정부의 개혁을 지지하고 지원하는 모양으로 일을 추진해 나간다는 데 동의했다. 이날 회의는 9시가 넘어 끝났다. 밤 10시 가까이, 시내 집에서 대기 중이던 김인호 수석은 강경식 부총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내가 지금 국회로 가는 길인데 이동 중이라서 자세한 이야기는 못하겠다. 그러나 회담은 우호적으로 끝났다. 자세한 이야기는 엄차관보에게 전화해서 들어달라』는 요지였다. 김인호 수석은 바로 엄차관보에게 전화를 해서 『오늘 회담 결과를 새벽까지 정리해서 아침에 들고 와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일요일이었지만 재경위(財經委)와 예결위(豫決委)가 동시에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어 부총리는 국회에 매달려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 사안은 다음날 아침 김인호 수석이 대통령에게 보고하기로 한 것이었다. 이날에도 언론은 대통령 선거를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특히 이회창(李會昌)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2위로 올라선 것이 머릿기사였다. 「부실 종금사 외환 업무 정지 등 금융 대책 주내 발표」도 크게 보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