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사 이후 제1인자’ 서예가 소전
소전 손재형
전남 진도에서 부유한 집안의 유복자로 태어난 소전은 조부에게 한학과 글씨의 기본을 익혔다. 21세 때 ‘선전’ 입선 이후 연속 수상으로 두각을 나타낸 그는 훗날 독창적인 소전체로 ‘추사 이후 제일인자’란 명성을 얻으면서 20세기 한국 서예의 위엄을 증명했다. 김보라 관장은 “소전은 추사 김정희를 잇는 글씨의 대가이자 그림에서도 최고 경지에 이른 몇 안 되는 예술가 중 한 분”이라고 말했다.
전시장에는 그림의 뜻이 불교의 선과 통한다는 ‘화의통선(畵意通禪)’을 비롯해 넉넉한 필획과 절도 있는 운필을 특징으로 하는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서예가 손병철 씨는 “전서 예서풍의 필획과 현대적 조형언어로 국한문을 막론하고 하나의 법에서 나와 천변만화의 조화를 창출했다”며 “특히 한글 서예의 신기원 창출은 획기적 업적”이라고 평했다. 대중과 친숙한 잡지 ‘샘터’ ‘바둑’의 제호가 바로 소전의 글씨다.
○ ‘세한도’ 되찾은 수집가 소전
‘20세기 서예의 거장’으로 평가되는 소전 손재형을 기리는 전시에 선보인 ‘승설암도’.
소전은 당대의 예술가들이 교유하던 공간의 격조와 아취를 담백한 문인화로 표현했다.
성북구립미술관 제공
소전은 서예와 문인화에서 일가를 이룬 데 멈추지 않고 컬렉터, 예술행정가, 제8대 국회의원으로 활약했다. 고건축과 정원에 대해서도 높은 안목과 조예를 갖춘 다재다능한 예술가였다. 무엇보다 국보 180호 ‘세한도’를 언급할 때 그의 이름은 빠질 수 없다. 소전은 제2차 세계대전 말기 공습으로 아수라장이던 1944년 일본 도쿄에 건너갔다. 그림을 소장한 동양철학자 후지즈카 지카시를 찾아 한 달여간 온 마음으로 설득한 끝에 ‘세한도’는 극적으로 귀환했다. 이후 후지즈카의 집이 폭격에 불타버렸기에 재가 될 뻔한 걸작을 아슬아슬하게 구해낸 소전의 용기와 혜안은 한층 빛을 발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서예가로서, 소중한 문화유산을 지켜낸 수집가로서 소전의 혁혁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관심은 미미하고 연구는 척박하다. 한국화단의 원로 산정 서세옥 명예관장은 “선조들이 힘들게 한국의 멋, 격조 높은 문화를 지켜왔으나 이걸 제대로 알고 감탄할 사람이 많지 않다는 아쉬움에서 마련한 전시”라고 말했다. 이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세계 속의 한국만 찾다 보니 등잔 밑이 어둡게 돼버렸어.”
고미석 문화전문기자·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