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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지리산 닷컴에서 회원들에게 메일로 보내 주는 지리산 편지 ‘봄, 어느 날. 하나’ 라는 4월 10일자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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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사람들은 왕시루봉을 ‘미눌기’라고 부른다.
이름이 왜 그리 되었는지 물었지만 아무도 설명하지 않거나 모른다.
4월 8일 일요일. 지난밤의 비가 미눌기에는 눈으로 남았다.
벚꽃 지면 운조루 앞 박태기 꽃이 만개한다.
항상 저 어이없는 色 앞에서 나는 난감하다.
수용하기 힘든 비 호감 색이지만 초록 들판을 배경을 했을 때
극단적 보색대비는 간혹 디자인 하고픈 도발적 아이템이다.
한 시간 정도 흐른 후 탁한 구름이 사라졌다.
미눌기는 시원한 머리를 보여주었다.
나는 저곳을 오르지 않았거나 못했거나 어쩌면 오르지 않을 것이다.
그냥 그렇게 개인적 미답으로 남겨 두고 싶은 가까운 산이 있다.
가깝기 때문에 익숙하고 가깝기 때문에 소홀하다.
미눌기가 보이는 각도에서 이리저리 가늠을 한다.
어찌 볼 것인가. 사진이란 결국 대상을 어찌 볼 것인가라는 해석의 문제다.
대평댁도, 덕암댁도, 홍수 형도 모두 나에게 같은 말을 했다.
“미눌기 눈 온거 봤남?”
포토샵에서 전깃줄을 제거했다.
일요일은 출근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꽃 시즌 동안 많은 손님들이 방문했었고 나는 많은 말을 했다.
좌중에 세 사람이 한 시간 동안 대화를 한다면 이십 분씩 말하는 것이 좋다.
내가 말을 많이 했다.
이곳에 살면서 간혹 느끼는 점은,
그 모든 산과 강과 들판과 나무와 골짜기들이 저마다의 ‘때’가 있고
그때 비로소 말을 한다는 사실이다.
오늘은 미눌기가 말을 하는 날이다.
미눌기가 말을 하자 돌배나무 꽃이 빛났다.
흰머리 미눌기의 이야기는 하얀 돌배 꽃을 같이 빛나게 했다.
초록 들판을,
붉은 박태기를
빛나게 만드는 미눌기의 대화법.
돌배 꽃을 걸고 미눌기를 담고 싶었기에
사무실 앞의 장작더미 위로 위태위태 올라갔다.
아!
내 사는 곳이, 공간이
시점을 달리하자 전혀 새로운 풍경으로 다가왔다.
단지 2m 더 올라섰을 뿐인데.
개천이 가고 난 후,
박태기 꽃과 초록 들판과 먼 산 사이에 노인이 한 분 서 있으면 좋겠다는
연출을 포기하지 못하고 헬로키티 영감님의 손을 끌고 박태기나무 앞으로 갔다.
생각했던 구도가 나오지 않았다.
넓게 잡고 싶었는데 전깃줄과 나무들이 가로 막았다. 시야를 좁혔다.
그래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전신이 보여야 하는구나.
이것이 최선이다.
허리를 최대한 펴기 위해 노인은 나뭇가지를 꼬옥 붙잡았다.
미눌기는 박태기를 빛나게 했고
박태기는 노인의 버팀목이 되더라.
사무실을 옮겼다.
만 6년을 함께 해 준 이나영과 김태희와 강동원과 담배꽁초가 남았다.
이제 나는 ‘컨테이너 삼촌’이 아니다.
출처 : 지리산 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