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고샅·고래·재강은 어디로 갔을까
좁다란 골목 '고샅' 아궁이 불길 '고래' 막걸리 찌끼 '재강' 입에 어릿, 눈에 삼삼 '할머니 약손' 같은 옛 기억 향한 여행
이젠 없는 것들 1·2
김열규 지음|문학과지성사
각권 209쪽|각권 1만2000원
박완서는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서 고향(개성)에 대한 그리움을 맛에 빗댔다. 싱아는 봉숭아만 한 야생초다. 4~5월에 줄기의 속살을 먹었다. 박완서는 또 "나를 키운 것은 할머니 이야기들"이라고 했다. "어릴 적 할머니가 들려준 이야기가 '가시 속에 든 오돌오돌한 밤알'이자 '게딱지 안에 있는 맛있는 살'이었다"는 것이다.
기억은 새겨진다. 입에 어릿대고 눈에 삼삼하고 귀에 자욱하다. 한국의 대표적 민속학자가 쓴 '이젠 없는 것들'은 발갛게 화로 안을 들여다보셨던 할머니 할아버지와 재회하는 기분이다. 잠든 추억을 깨우는데 아득하고 헛헛하다. 책장을 넘기며 "없다"라고 몇 번 중얼거리게 된다. 고샅이 없고 아궁이가 없고 화로가 없다. 세월이 더 흐르면 남은 기억마저 문드러질 것이다. 그래서 반가운 책이다.
◇고향에도 옛날 정경은 없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사람에게 '고샅'이라고 하면 모양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고샅은 농촌 마을 안의 좁다란 골목길이다. "작달막한 담들을 끼고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이웃해 있는 골목, 굽이져 돌아가는 그 창자 같은 길을 고샅이라 부르면서 정 들여왔다"고 저자는 썼다. 토담 너머로 음식 사발이 오갔고, 꼬맹이들에게 고샅은 놀이터였다. 하지만 이젠 기울고 없다.
구멍가게는 또 어떤가. 들고 날 때 구멍 드나들 듯 등을 굽힌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일까. 상품이라곤 보잘것없는 가게지만 아이들에겐 백화점과 같았다. 옛사람은 사립문을 늘 비스듬히 열어 두었지만 우리는 디지털 도어록으로 꼭꼭 걸어 잠근다. 두레박으로 이야기를 길어올리던 우물도 메워졌고, 돌아오지 않을 나그네처럼 주막도 사라졌다.
이 땅의 사시사철은 구들장을 따라서 들고 나고 했다. 군불을 지피는 아궁이에 이어진 방바닥 아래 불길은 '고래'라고 불렀다. 고래를 덮은 납작하고 작은 돌판은 구들장, 거기에 흙을 덮어 평평하게 바른 방바닥은 구들바닥이라 일러왔다. 식솔들은 뜨끈한 아랫목에 모여 피붙이 정을 다졌지만 아파트에 살면서 아랫목도 잃어버렸다.
◇사라져서 더 사무친다
지난날 막걸리는 집에서 담갔다. 우선 쪄낸 쌀을 독에 담는다. 누룩을 끼얹어서는 고루 저어 섞는다. 그리고 알맞게 물을 부으면 일단 술이 앉혀진다. 익기 시작하면 보글보글 거품을 내며 끓는다. 술 익는 향내가 방 안에 번진다. 아이들은 막걸리를 거르고 남은 재강(술찌끼)에 설탕을 타 야금야금 먹었다. 달달하고 얼큰했다.
식사 뒤에는 커피나 차 따위가 아니라 숭늉을 마셨다. 옛날 숭늉은 누룽지 숭늉이었다. '눌은밥'이라고도 하는 누룽지는 솥 바닥에 붙은 밥이다. 누르스름해서 보기부터 구수했다. 이제 전기밥솥에는 누룽지가 눌어붙지 않는다.
가마솥에서 김이 무럭무럭 올라온다. 삶은 콩을 뜸 들이는 중이다. 메주를 띄우는 풍경도 사라지고 있다. /유창우 기자어머니는 아이의 앞니를 지붕에 던지며 "까치야, 까치야, 헌 이 줄게, 새 이 다오!"라고 소원을 빌었다. 쓸모없는 헌 이를 받아가는 보답으로 까치가 새 이를 물어다 준다고 믿었다. 음력으로 12월 마지막 날인 섣달 그믐은 어른에게는 '묵은세배' 하는 날이고 아이에겐 '까치까치 설날'이었다. 요즘엔 아무도 챙기지 않는 명절이다. 까치에게 빌 것도 없어진 것이다.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조름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 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시 '향수')라고 정지용은 노래했다. 고향에 부치는 그리움이 어려 있다. 화로에 둘러앉아 언 몸을 녹이고 떡이나 밤을 구워먹고 나누던 이야기도 그립다.
◇"뿌리 잘린 나무처럼 살고 있다"
다듬이 소리가 들리고 물레방아가 돌고 콩 볶는 냄새가 코를 찌르는 책이다. 장가는 '들고' 시집은 '간다'고 해야 타당하다는 이야기도 구수하다. 장가는 '장인·장모의 집'을 뜻하는 장가(丈家)로 쓸 수 있다는 추측, 신랑이 처가에 들어가 혼례를 올리고 신부를 데려오는 절차 때문이다.
저자 김열규(81)는 국문학과 민속학을 기둥 삼아 한국학을 세운 학자다. 퇴직하고 1991년 경남 고성의 바닷가 마을로 내려갔다. 앞에는 남해가 보이고 뒤로는 산이 품어주는 작은 양옥집에 산다. 정원에는 매화와 풍년화, 동백꽃이 한창이다.
낙향하고 나서 그는 60권의 책을 냈다. 은퇴란 말이 무색하다. 저자는 전화 통화에서 "산업화 근대화 도시화로 오늘날 우리 대부분은 뿌리 잘린 나무처럼 살고 있다"고 말했다. "한번 돌아보게 하자는 생각으로 이번 책을 썼다"는 것이다.
정경과 이야기가 끈끈하게 과거와 나를 이어준다. 욕심과 속도로 체한 배를 '할머니 약손'처럼 문질러주는 것 같다. 섬세하고 넉넉한 표정을 지닌 글에 비해 사진이 밋밋하고 무뚝뚝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그리움으로 걷는 옛길'처럼 기억 속으로 침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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