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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윈 늑대에게 뜯어먹히는 살찐 돼지 새삼 확인된 한국인의 비참한 노예근성

淸山에 2013. 2. 14. 03:49

 

 

 

 

 


야윈 늑대에게 뜯어먹히는 살찐 돼지 새삼 확인된 한국인의 비참한 노예근성

趙甲濟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성공하고, 폭발력이 향상된 제3차 핵실험에 성공해도 정부, 언론, 정치권에서 '自衛的 차원의 핵무장론'이 나오지 않는다. 核미사일 實戰 배치가 임박해도 국가 생존 문제를 강 건너 불 보듯 한다.
 
  그렇다고 핵우산을 강화하기 위한 自衛조치를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연합사 해체 무기연기를 주장하지도 않고, 미국이 주도하는 미사일 방어망에 가입하자는 이야기를 하는 정치인도, 언론도 없다. 敵軍의 핵개발을 도운 좌파정권의 반역자들을 색출, 단죄하자는 이야기도 약하다.
 
  국방부는 실현성이 극히 희박한 핵공격 징후 포착시의 선제공격론을, 국정원은 제3차 핵실험의 의미를 축소하는 평가만 내어놓는다. 대통령이나 당선자나 공허한 원칙론만 되풀이하여 국민들을 피곤하게 만든다. 논평과 분석만 요란하고 행동이 없다.
 
  식자층도 핵문제 해결의 유일한 방도는 북한정권을 무너뜨리는 것이란 뻔한 진실을 지적 않는다. 언론은 핵폭탄이 서울에서 터지면 20만 명이 죽는다는 기사를 무슨 공상소설처럼 전한다.
 
  중국과 북한을 자극해선 안 된다는 이야기는 무성하다. 나쁜 짓을 하는 쪽을 자극하는 게 왜 나쁜지 생각도 않는다. 오로지 '자극' 이란 말은 나쁘니 그 누구도 자극을 해선 안 된다는 식의 단세포적, 노예근성이 발로된다. 전쟁을 나쁜 말이니 김일성이 남침하였을 때도 국군은 전쟁이 아니라 평화를 선택하였어야 했다고 생각하는 정신이상자들을 진보라고 불러주는 게 한국의 언론이다.
 
  자진해서 야윈 늑대에게 뜯어먹히려 드는, 살찐 돼지 같은 한국의 비참한 모습이다. 아무리 잘 살아도 영혼이 썩으면 육체도 존재의 의미를 상실한다. 자신의 생존문제를 남에게 맡겨놓고 사소한 데 목숨을 거는 싸움박질이나 하는 인간이나 나라는 죽거나 망하는 게 正義이다.
 
  성경 舊約 세계의 가장 위대한 인물은 모세라고 생각된다. 모세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노예의식에서 깨어나게 한 인물이다. 그는 이집트에서 종살이를 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데리고 나와 젖과 꿀이 흐른다는 가나안 땅으로 가는 길을 인도하였다. 그 과정에서 40년간 이스라엘 사람들은 광야를 방황해야 하였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세를 따르다가도 모세를 반대하고 미워하기도 하였다. "왜 우리를 데리고 나와 이 고생을 시키느냐"고 모세를 원망한 그들은 하나님을 배신하고 우상을 만들어 섬겼다가 모세로부터 혼이 나기도 하였다. 모세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律法을 주어 法治 생활을 하도록 하였다.
  
   모세처럼 한민족을 노예근성과 사대주의에서 깨어나도록 한 분이 李承晩 대통령이었다. 그는 자존과 자기확신의 化身이었다. 조선조의 압제와 日帝의 질곡에 찌든 韓民族에게 자유정신과 主人의식을 심어준 이가 李 박사이다. 그는 "주께서 너희에게 자유를 주었으니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는 갈라디아서 5장1절을 자주 인용하였다. 6.25 전쟁중에도 언론검열을 하지 않고, 국회를 해산하지 않고, 사상최대 규모의 선거를 하도록 하였던 것도 한국인에게 자유와 民主의 가치를 가르쳐주기 위함이었다.
  
   그가 미국과 일본을 상대로 보여준 당당한 태도는 韓民族에게 자부심을 심어주었다. 한민족은 무의식중에 李承晩을 따라배웠고, 그 과정에서 사대주의와 노예근성을 상당히 씻어내게 되었다. 李承晩 덕분에 한국은 國格이 높아졌고, 한국인은 의타성을 버리고 민족적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는 물질적 토대를 만들었다.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었다. 李承晩 대통령도 젖과 꿀이 흐르는 좋은 시기를 보지 못하고 죽었다. 역사는 새 술을 담을 새 부대가 필요하였다. 역사가 선택한 새 부대는 박정희였다. 李承晩이 선물한 自由라는 토양 위에 박정희는 國力을 조직하고 능률을 극대화하여 自助-自立-自主의 나무들을 심어갔다.
  
   한민족은 李承晩 대통령을 제대로 평가하게 될 때 노예근성을 진정으로 청산하게 될 것이다. 李 박사의 위대성을 알아주는 이가 드물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인들의 노예근성이 뿌리깊다는 뜻이다. 
   
     
   
   
  

 

 

 

 

 

이승만 박사의 장례식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弔辭(조사)를 丁一權(정일권) 총리가 대신 읽었는데 이런 대목이 있다.

<어쨌든 박사께서는 개인적으로나 민족적으로나 세기적 비극의 주인공이었던 것을 헤아리면 衷心(충심)으로 뜨거운 눈물을 같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만 그보다는 조국헌정사상에 최후의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어린 羊(양)」의 존재가 되심으로써 개인적으로는 「한국의 위인」이란 거룩한 명예를 되살리시고 민족적으로는 다시 이 땅에 4·19나 5·16과 같은 역사적 고민이 나타나지 않도록 보살피시어 자주독립의 정신과 반공투쟁을 위한 선구자로서 길이 길잡이가 되어주시기 바라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말미암아 박사로 하여금 그토록 寤寐不忘(오매불망)하시던 고국 땅에서 임종하실 수 있는 최선의 기회를 드리지 못하고 異域(이역)의 쓸쓸한 海濱(해빈)에서 고독하게 최후를 마치게 한 것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바입니다. (중략).

생전에 손수 創軍(창군)하시고 또 그들로써 공산침략을 격파하여 세계에 이름을 날렸던 그 국군장병들의 英靈(영령)과 함께 길이 이 나라의 護國神(호국신)이 되셔서 민족의 多難(다난)한 앞길을 열어주시는 힘이 되실 것을 믿고 삼가 두손을 모아 명복을 비는 동시에 유가족 위에도 신의 가호가 같이 하시기를 바라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