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 예술/흘러간 사진

1970년대 반포, 압구정, 삼성동

淸山에 2013. 1. 29. 16:42

 

 

 

 

 

1970년대 반포, 압구정, 삼성동

 

 

영동지구 개발(1971)

허허벌판에 말뚝을 박았다.

기공식장 한가운데 TV 카메라가 을씨년스럽다.

개발 당시에는 강남이라는 지명은 없었고 영동지구라 했다.

당시 강남은 영등포구와 성동구에 속해 있던 것을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영동출장소로 출범했다.

영등포에서 '영'자와 성동구에서 '동'자를 따온 작명이었다.

정부는 1970년 11월.

제3한강교(한남대교) 준공에 맞추어 837만평에 달하는 영동지구 개발계획을 발표했다.

이 때가지만 해도 동부이촌동과 여의도에서 재미를 본 복부인들은 반신반의하면서 움직이지 않았다.

1960년대 초 신사동

개발되기 전 한적한 시골이었다.

1960년대초 논현동

이 때 땅값은 평당 50원~70원이었다.

나루터(1969)

신사동에는 조선시대부터 <사평나루>라는 나루터가 있었다.

과거보러 가는 삼남의 선비들이 신원에서 하룻밤을 묵고 아침 일찍 출발하여

말죽거리에서 말에게 먹이를 먹인 다음 사평리에서 나룻배를 타고 한양에 진입했다.

그 나루터의 정확한 위치는 한남대교 서쪽이다.

나루터(1969)

한적하던 <사평나루>는 제3한강교 건설과 발맞추어 위치를 동쪽으로 옮겼다.

이 때부터 나루는 단순히 나그네의 도강을 돕는 나루가 아니라

다리 건설과 영동지구 개발에 따른 인부와 중장비를 나르는 거룻배 나루터가 되었다.

터박고 살던 사람들은 객이 된 셈이다.

*나룻배-사람이나 사람이 휴대한 작은 짐보따리를 실을 수 있는 배

*거룻배-사람과 소, 말 가축이나 짐수레를 실을 수 있는 배

나루터(1969)

강북쪽 한남동

저 멀리 보이는 것이 관악산 안양쪽 봉우리 삼성산.

나루터(1969.12.25)

1969년 12월 25일 제3한강교가 준공되었으니 개통하기 직전이다.

아마 이 거룻배가 마지막 배일지 모른다.

논현동 공무원아파트 준공(1971)

영동지구 첫 작품이다.

서울시는 간부들에게 이 아파트를 배정했으나

직원들이 교통과 주변환경이 열악하다는 이유로 이주를 회피했다

당시 서울시장 양택식은 이사 가지않은 직원들을 색출하여 문책하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AID 아파트

미국 국제개발처(AID) 자금을 들여와 논현동과 삼성동에 아파트를 지어 일반 분양했다.

이 아파트를 차관 아파트라 불렀다.

멀리 보이는 왼쪽이 대모산 오른쪽이 구룡산이다.

이 때부터 당첨은 곧 돈이라는 복부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땅값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삼성동

12시에서 9시 방향으로 흐르는 것이 한강이고 3시에서 9시 방향이 탄천이다.

1시 방향에서 7시 방향으로 공사중인것이 테헤란로, 8시 방향의 숲이 선릉이다.

잠실과 연결되는 다리는 없었으며 잠실쪽에 체육시설도 없었다.

1970년대 초 삼성동 코엑스 근처

삼성동에서 북쪽 바라보기

오른쪽 건물이 경기고등학교

삼성동에서 동쪽 바라보기

멀리 보이는 둥근 지붕 건물이 잠실학생체육관.

개발초기 영동지구

강남역 사거리

당시 강남의 랜드마크 뉴욕제과 건물이 오뚝하다.

1시 방향이 한남대교. 4시 방향이 역삼역.

지하철 2호선 강남역 공사가 한창이다.

반포아파트와 영동지구(1972.5.25)

반포아파트 근처

압구정 현대 아파트(1978)

주변에 과수원과 밭이 많았다.

청담동 시영주택

시계(視界)가 확트여 멀리 강건너 남산까지 보인다.

청담동 시영주택

청담대교 공사가 한창이다

윗쪽 보이는 산이 용마산과 아차산이다.

도로 공사중

오늘날 양재역 부근이다.

저 미루나무와 초가집 한채가 기억난다.

개발되기 전,

강북에서 이곳에 가려면 <사평나루>를 건너 1시간가량 걷거나

용산 시외버스 터미날에서 흑석동-방배동-서초동-말죽거리-판교를 운행하는 버스를 이용했다.

동작동 현충원을 지나면 길이 좋지 않았다. 비포장도 부드러운 흙길이 아니었다.

현충원 모서리 바위를 깨트려 굵은 돌을 깔아놓았다.

흑석(黑石)답게 검은 돌이었다.

버스가 많이 튀었고 빨리 달리지 못했다.

2km 남짓 이수교까지 15분은 걸렸던 기억이다.

대통령이 다니는 길까지만 포장이 돼있었던 것이다.

이곳을 가기위해 지금 남부터미날 어름을 지날 때

버스 창가에 보이는 서초동 법원자리에는 공동묘지가 있었다.

고픈 귀신이 걸신이 들었나?

귀신도 물욕을 버리지 못했나?

'스폰' '벤츠' '9뇌물' '성뇌물' 유령이 떠돌고 있으니

검객들의 무도청이 편할 날이 없다.

잠실개발(1970)

4시 방향이 학생체육관이고 멀리 보이는 2개의 호수가 석촌호수다.

잠실이 개발 될 당시에는 잠실대교가 없어 강북에서 잠실가려면 광진교를 건너 천호동을 거쳐 갔다.

잠실대교 개통(1972)

남쪽에서 바라본 모습으로 강북 역시 황량하다.

윗쪽 산이 용마산이다.

송파 오륜동 일대

오른쪽 넓은 공간이 올림픽 공원이 들어선 자리다.

왼쪽 오가는 버스는 천호동에서 송파거쳐 판교가는 시외버스다.

강남고속터미날 주변

뒤에 아스라히 보이는 것이 관악산이다.

국회의사당(1973.5)

황량한 여의도에 아직 KBS 건물도 들어서지 않았고 그 왼쪽 덩그맣게 자리잡은 건물은 동아일보다.

코엑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