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 예술/화폭의 예술

이 그림, 남에게 보여주지말라…추사는 왜 애지중지했을까

淸山에 2012. 10. 8. 03:43

 

 

 

 

 

이 그림, 남에게 보여주지말라…추사는 왜 애지중지했을까
[중앙일보]

 

 

 

청나라 장경의 ‘장포산진적첩’ 중 ‘소림모옥(疏林茅屋)’. 25.4×18㎝. 잎 떨어진 고목에 둘러싸인 사각의 초가집이 물가에 외롭다. 제주 유배 기간 중 이 화첩을 끼고 살았다는 추사의 심정도 이랬을까. 최완수 한국민족미술연구소 실장은 “장경은 원나라 말기의 화가 예찬을 이어받아 이 그림을 그렸고, 추사는 장경의 화첩을 들여다보며 자기 식의 화풍을 완성했다”고 설명했다. 조선 후기 양국 지식인의 교류를 보여준다. [사진 간송미술관]


조선 후기의 대학자 추사(秋史) 김정희(1786∼1856)는 54세에 제주도로 유배를 갔다. 그의 귀양살이와 함께한 화집이 하나 있었다. 중국 청나라 중기의 문인화가였던 장경(張庚·1685∼1760)의 ‘장포산진적첩(張浦山眞蹟帖)’이었다.

 추사는 섬의 기후와 풍토에 적응하지 못해 병치레가 잦았다. 위독했을 때 이 화첩부터 예산 고향집에 올려 보냈다. 그만큼 소중하게 여겼다는 말이다. 화첩 앞면에 “함부로 남에게 보여선 안 된다. 천금이라도 전하지 말라. 동해낭경(東海琅<5B1B>·추사의 별호)이 평생 보배로 여기며 사랑했다”고 유언처럼 적었다.

 

김정희, 세한도, 23.3×108.3㎝. (부분)


 최완수 간송미술관 한국민족미술연구소 연구실장은 “편지에 시기가 적혀 있지 않지만 여러 정황상 ‘세한도(歲寒圖)’를 그리던 1844년 전후의 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귀양이 풀려 고향집으로 돌아간 추사는 1849년 또 이렇게 적었다. “돌아와서 만 번의 죽음 끝에 다시 보니 옛날 달빛이 그대로라 나무에 걸린 달덩이도 평생 보던 것과 같다.”

 

 화첩은 스물넷의 추사가 중국에 사신으로 파견된 부친 김노경을 따라 연경을 방문해 인연을 맺었던 청나라 금석학자이자 서예가 옹방강(翁方綱·1733∼1818)으로부터 받은 선물이다.

 

 평생 추사의 서화에 영향을 준 이 화첩은 현재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당대 조선과 중국 지식인의 교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장포산진적첩’을 비롯한 명·청 시대 회화 64점이 올 가을 간송미술관 정기전에 나온다. 1971년 10월 간송미술관의 첫 전시 이래 여섯 번째 중국미술전으로, 명청시대 회화만으로 꾸리기는 처음이다.

 

 일제강점기 간송(澗松) 전형필(1906∼62)이 수집한 미술품에는 중국 것도 포함돼 있었다. 추사파와 관련된 사연을 안은 것들이 많다. 봄·가을마다 수만 명의 관객몰이를 하던 단원(檀園) 김홍도나 혜원(蕙園) 신윤복의 풍속화도 없이 이번엔 오로지 중국 회화로만 전시를 꾸렸다.

 

 최완수 연구실장은 “간송은 일찍부터 명청시대 그림으로 추사와 관련된 흔적이 있는 그림이라면 기회가 닿는 대로 수집해 추사화파 성립을 규명하는 자료로 쓰고자 했다”며 “그 뜻을 기리기 위해 이번 전시를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일반인에게 다소 난해하게 비칠 것으로 보인다. 조선 후기 청과의 문화교류를 보여주는 작품을 엄선했다지만, 당시 중국의 영향을 받은 조선 시대 회화는 없이 중국 작품만 나왔기 때문이다.

 

 도록의 해설 외에는 전시장에서 설명을 접할 수 없어 그 내용을 짐작하기가 더욱 어려울 ‘연구자용 전시’에 가깝다. 별도의 정부 지원 없이 소장품 연구를 본령으로 삼으며 1년에 한 달 외에는 문을 꼭꼭 닫아걸고 있는 이 미등록 사립미술관의 정체성을 보여준다고 할까. 14∼28일. 무료. 02-762-04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