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주시 양남면 읍천리의 읍천항. 신라 문무왕릉인 동해 대왕암에서 남쪽으로 2㎞쯤 떨어진 작고 한가한 항구다.
하지만 휴가철인 요즘 읍천항 주변은 주차할 공간이 모자랄 정도로 차량과 인파가 몰린다. 항구 주차장은 오전에 일찌감치 채워지고 동네 골목까지 차가 늘어선다. 주말이면 하루 방문객이 6000여 명이나 된다.
방문 목적은 한 가지, 바로 이 지역 ‘주상절리(柱狀節理)’를 보기 위해서다. 주상절리는 양남면 하서항에서부터 읍천항까지 해안을 따라 1.7㎞에 걸쳐 있다. 제주도 주상절리가 대부분 수직 기둥형인 데 반해 이곳의 주상절리는 모양이 다채로운 게 특징이다.
하서항에서 출발하면 맨 먼저 바닷가에 비스듬히 기울어진 길이 10m가 넘는 돌기둥 묶음이 눈에 띈다. 이어 10∼20m 길이의 철도 침목을 가지런히 포개 놓은 듯 누워 있는 돌기둥이 나타난다. 이 돌기둥들은 푸른색 동해와 어우러져 그야말로 장관이다.
모서리를 돌면 위로 솟은 수직형이 펼쳐진다. 1㎞쯤 걸으면 이번엔 둥글게 바닥에 펼쳐진 부채꼴 모양의 주상절리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밀물이 들어올 때면 한 송이 해국(海菊)이 바다에 떠 있는 형상을 연출한다고 한다. 그래서 사진을 찍는 사람이 가장 많이 붐비는 장소다.
이곳은 3년 전까지만 해도 일반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해병대가 경계를 서는 군사구역 안에 있어 출입이 통제됐기 때문이다. 그러다 2009년 군이 철수하면서 그 존재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해안을 따라 희한한 바위들이 있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관광객이 몰렸다.
주상절리 현장을 조사해온 경북대 장윤득(지질학) 교수는 “이곳 주상절리는 다양한 모양이 한자리에 모인 주상절리의 박물관”이라며 “특히 부채꼴 주상절리는 전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경주 주상절리가 인기를 끌자 경주시와 문화재청 등 공공기관의 움직임도 바빠졌다. 경주시는 10억여원을 들여 쉼터와 출렁다리, 목교, 나무 데크 산책로 등이 있는 ‘주상절리 파도소리길’을 꾸며 지난달 개방했다. 경주시 공진윤(53) 해양수산과장은 “군이 주둔한 탓에 오랜 기간 외부와 단절됐지만 그 덕분에 잘 보존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지난달 경주 주상절리군을 천연기념물로 지정 예고했다. 경상북도는 연구를 거쳐 이곳을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신청할 예정이다.
◆주상절리=화산폭발 때 용암이 굳는 속도에 따라 4∼6각형 등 다면체 돌기둥으로 나타난 지형. 용암이 급속히 냉각된 현무암에서 잘 나타난다. 제주도 중문관광단지 앞 해안과 경북 포항 앞바다 등지가 대표적이다. 제주도의 정방폭포와 천지연 폭포가 이런 지형에 형성된 폭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