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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졸업하던 날, 나도 학사모… 가슴 찡했죠6년차 베테랑 안내견 미담이의 '알콩달콩 이야기'

淸山에 2012. 7. 14. 06:03

 

 

 

 

 

언니 졸업하던 날, 나도 학사모…

가슴 찡했죠6년차 베테랑 안내견 미담이의 '알콩달콩 이야기'
고은경기자 scoopkoh@hk.co.kr입력

 

 

안내견 경력 6년차인 미담이가 파트너인 김경민씨와 호흡을 맞추며 길을 안내하고 있다. ●삼성에버랜드 제공제

 

이름은 '미담'입니다. 시각장애인들의 길잡이 노릇을 하는 안내견이지요. 래브라도 리트리버 암컷인데, 안내견의 90%는 저와 같은 래브라도 리트리버나 골든 리트리버 종(種)입니다. 개 중에선 가장 침착하고 인내심이 강한 종이지요.

 

저는 원래 안내견 집안 출신입니다. 아빠 엄마 모두 안내견의 혈통을 잇게 해주는 종모견(種母犬)이었지요. 종견(수컷)이나 모견(암컷)이 되려면 잘 생기고 신체 건강한 것은 기본이고, 성격도 온순하고 머리도 좋아 상황 판단이 빨라야 하거든요. 엄마는 뉴질랜드 안내견 학교에서 아빠를 만나 저를 임신한 채 한국에 왔다고 합니다. 한국에는 이런 종모견이 많지 않다고 해요.

 

2004년7월29일 저는 다른 아홉마리의 형제들과 함께 삼성화재 안내견학교에서 태어났습니다. 종모견들의 아들 딸들이라, 모두 태어날 때부터 안내견 후보들이었지요. 저는 생후 7주 만에 서울 잠실에 있는 한 가정에 맡겨졌는데요. 원래 안내견들은 사람과 친해지며 사회성을 기르기 위해 1년간 일반가정에서 지내게 됩니다. 이를 '퍼피워킹(puppy walking)'이라고 부르지요.

 

그 곳에서 저는 사람들과 살아가는 법을 배웠습니다. 마트도 가보고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도 타봤지요. 사람이 걷는 속도를 확인하며 걷는 법, 일정장소에서 배변하는 법도 배웠구요. 모두 나중에 안내견이 됐을 때 필요한 것들이지요.

 

2006년1월 다시 안내견 학교로 돌아왔습니다. 퍼피워킹 기간 동안 마노, 무비는 건강상 이유로 탈락했고, 학교엔 8마리가 모였지요. 1개월간의 집중 훈련을 받고 집중력 보행 등에 대한 시험을 봤는데, 여기서 무구와 무한이가 탈락했어요. 겁이 많은 것, 짖는 버릇도 문제가 되거든요.

 

저는 환경에 민감하고 성격도 좀 급한 편이에요. 하지만 머리가 좋아 장애물 피하기, 지하철 타기 등 어려운 과제를 잘 수행해 냈지요. 6개월에 걸친 평가를 거쳐 마침내 자랑스런 안내견 자격증을 따냈습니다. 하지만 최종평가 때 불안감과 공격성을 보인 명랑이와 모아는 안타깝게 탈락했지요. 이렇게 탈락하면 일반 가정으로 입양돼 애완견으로서 '평범함 삶'을 살게 됩니다.

 

결국 10마리 후보 중에 최종 안내견으로 합격한 형제들은 저와 미래, 마리, 미나 4마리 뿐 입니다. 보통 한 부모 아래 태어난 자견(子犬)들 중에 안내견이 되는 확률이 30%라고 하니, 우리 형제들은 우수 사례로 꼽힌다고 해요.

 

2007년 2월12일 전 경민 언니와 '운명적인'만남을 했습니다. 언니는 서울맹학교를 졸업하고 숙명여대 교육학과에 합격한 상황이었어요. 고등학교 때까지는 부모님들한테 의존했었지만 대학생이 되어선 스스로 등ㆍ하교하기로 결심했고, 결국 나를 동반자로 택한 것이지요.

 

저는 언니와 함께 캠퍼스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비가오나 눈이오나, 수업을 들을 때나, 식당에 갈 때나, 친구들과 수다를 떨 때도 저는 항상 언니 곁에 있었습니다. 제가 워낙 쾌활한 성격이어서 언니 성격도 한층 밝아졌다고 하더군요. 언니가 7학기 만에 문과대 수석으로 조기졸업을 하는 날, 대학측에선 제 공로를 인정해 특별 제작한 학사복을 입혀줬습니다. 정말 가슴 찡한 순간이었죠.

 

언니는 중등교사 임용시험에 합격해, 현재 서울 홍제동 인왕중학교 영어교사로 재직 중입니다. 물론 저도 함께 출퇴근을 하죠. 특히 저는 어린 중학생들 사이에서 인기 최고랍니다.

 

6년차의 베테랑 안내견이지만 돌이켜보면 실수도 있었습니다. 승강장 사이가 넓은 충무로 역에서 언니와 호흡이 안 맞아 언니가 넘어질뻔한 아찔한 순간도 있었고, 저 때문에 언니가 남자 화장실, 남자 탈의실에 갈 뻔한 적도 있었죠. 여전히 저는 남자선생님, 택배아저씨가 좋긴 하지만 실수는 전보다 훨씬 덜한답니다.

 

사실 안내견은 힘든 일이에요. 먹고 싶은 것도 많고, 급하면 아무데서나 '실례'하고 싶을 때도 많지만 참아야 하거든요. 무엇보다 일부 식당이나 택시에서 저를 아예 들어오지도 못하게 할 때는 정말로 속이 상합니다. 더구나 도로나 건물, 공공시설 같은 곳에는 아직도 경민 언니 같은 시각장애인들에게 불편한 요소들이 많지요. 시각장애인들을 보는 세상의 시선이 많이 변하기는 했지만, 아직도 배려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저도 빠르면 2년, 늦어도 4년 후엔 이 일에서 은퇴하게 됩니다. 나이가 들어 기력이 떨어지면, 경민 언니를 도와줄 수 없거든요. 그 때가 되면 하네스(시각장애인과 안내견이 서로의 움직임을 전달하고 안전하게 보행하도록 설계된 가죽장비)와 노란 형광색 안내견 조끼도 벗게 되겠지요. 그리고 새 가족을 만나 은퇴견으로 여생을 보내게 될 겁니다. 그 때까지는 혼신의 힘을 다해 경민 언니의 눈이 되고 벗이 되어 줄 겁니다.


우리나라 시각장애인 수는 25만명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안내견을 키우고 분양하는 곳은 삼성화재 안내견학교와 한국장애인도우미견협회 단 2곳뿐이다. 지난 달말 삼성화재 안내견학교에서 150번째 안내견 분양이 있었다. 현재 활동중인 안내견은 안내견학교 출신 57마리, 협회 출신(청각장애인, 지체장애인 도우미견 포함)은 70마리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