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5000만, 내수엔 축복이지만 ‘늙은 나라’ 접어드는 경고등 [중앙일보]
뉴스 속으로 - 대한민국 5000만 시대
‘출산율 떨어져 5000만 못 넘는다’ 전망 뒤집어 쌍춘년·황금돼지해 영향에 다문화 가정도 한몫
서울 올림픽 유치가 확정된 1981년 9월 30일 독일 바덴바덴.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박영수 당시 서울시장은 “5000만 국민을 대신해 국제올림픽위원회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당시 한국 인구는 3872만 명이었지만, 박 시장은 “민족 전체의 영광이기 때문에 5000만”이라고 설명했다. 80년대 초까지 남북 인구를 합친 ‘5000만 민족’은 관용어처럼 쓰였다. 그러나 이제 대한민국 인구만으로 5000만 명 시대가 열렸다. 통계청은 6월 23일 오후 6시36분 대한민국 인구가 5000만 명이 된다고 22일 밝혔다. 관념 속 상징이던 ‘5000만’이 현실 속 숫자가 된 것이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변화는 성장과 함께 찾아왔다. 근대적 의미의 인구 총조사는 1925년 처음 실시됐다. 당시 인구는 1952만 명이었다. 3000만 명을 넘어선 것은 67년이었다. 한국전쟁 이후 태어난 베이비부머(55~63년생)가 인구 성장을 이끌었다. 70년대 들어 보릿고개가 사라지고,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등으로 먹고살 만해지면서 인구는 급증했다. 3000만 명(67년)에서 4000만 명(83년)이 되는 데 16년이 걸렸을 뿐이다. 급격한 인구 증가는 산아제한 정책을 낳았다.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며 면박 주는 표어까지 등장했다.
그러나 인구 5000만 명 시대는 영영 못 올 뻔하기도 했다. 출산율이 급격히 하락했기 때문이다. 가임기 여성이 평균 2.1명의 자녀를 낳아야 장기적으로 인구가 유지된다. 그러나 출산율은 1.08명(2005년)까지 하락했다. 이 바람에 2006년 통계청은 인구가 아무리 늘어도 5000만 명을 넘을 수 없다는 추계를 내놓기도 했다.
![](http://pds.joinsmsn.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206/23/htm_201206231155930103011.gif)
정부 정책도 완전히 바뀌었다. 저출산이 국가적 문제로 떠올랐고, 보육이 복지제도의 첫째 화두가 됐다. ‘둘만 낳자’가 ‘둘도 많다’로, 다시 ‘둘은 낳자’로 변했다. 어렵게 5000만 명 고지에 오른 데는 민간 속설의 영향도 있었다. 쌍춘년(2006년), 황금돼지해(2007년)를 거치며 출산율이 1.23명(2010년)으로 올라섰다. 의학기술의 발달로 80년 65.7세였던 기대수명은 2010년 80.8세로 높아졌다.
숨은 요인은 또 있다. 다문화가정이다. 92년 6만여 명이었던 국내 거주 외국인 수는 지난해 98만여 명으로 불어났다. 농촌에선 다문화가정이 없으면 마을 일이 돌아가지 않는다. 교과서도 바뀌었다. ‘5000년을 이어온 단일 민족’이란 표현은 2007년부터 초·중·고 교과서에서 사라졌다.
인구 5000만 명은 한국 경제의 밑거름이자 훈장이다. 세계에서 아홉 번째로 무역 1조 달러 국가가 된 데는 섬유 등 노동집약적 산업의 공이 컸다. 인구 증가는 내수시장도 확대했다. 정보기술 분야에선 ‘한국 시장에서 통하면 다 된다’는 인식이 퍼진 지 오래다. 매년 70~80개의 외국 차 모델이 한국 시장에 소개된다. 70년 255달러에 불과했던 1인당 국민소득은 지난해 2만2489달러로 88배 불어났다.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이상, 인구 5000만 명 이상인 나라는 전 세계에 일곱 나라뿐이다. 김정식(경제학) 연세대 교수는 “세계 경제 불안으로 내수시장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커졌다”며 “인구 5000만 명 돌파는 내수시장 확대와 장기 성장동력의 기초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애란 기자
5000만 되고 나면
2030년 정점으로 다시 감소 … 일할 사람도 줄어 2060년엔 10명이 노인 8명 어린이 2명 부양해야
지난 2월 6일 서울 삼성역 인근 잠실아이파크 모델하우스는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극심한 부동산 시장 불황에도 평일 4000명 이상의 사람이 몰렸다. 주거용 오피스텔인 잠실아이파크는 전용면적 24㎡(7.3평)의 소형으로만 구성됐다. 앞으로 큰 집은 몰라도 작은 집은 수익성이 있다는 계산을 한 사람이 많았다는 뜻이다. 국민은행 전망에 따르면 2030년이면 네 가구 중 한 가구가 1인 가구다. 혼자 사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것은 아이가 적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국인구학회장을 지낸 전광희(사회학) 충남대 교수는 “인구가 5000만 명을 넘어섰지만 저출산·고령화, 성장 잠재력 하락 등 도전 과제가 만만치 않다”며 “5000만은 성취이자 동시에 도전인 패러독스(역설)”라고 말했다.
우선 인구 5000만 명 시대는 33년간 지속할 뿐이다. 2030년(5216만 명)을 정점으로 인구는 감소세로 돌아선다. 출산율이 다소 높아졌으나 아직도 세계 최저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유엔에 따르면 2010~2015년 한국의 출산율은 1.23명으로, 대표적 저출산 국가인 일본(1.42명), 강력한 산아제한 정책을 쓰는 중국(1.56명)보다 낮다.
단순히 사람 수가 줄어서 문제인 것은 아니다. 일할 사람이 줄고 있다. 통계청은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2016년 정점을 찍고 2017년부터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2050년이면 일할 사람이 지금보다 1000만 명 이상 줄어든다. 2060년이면 생산가능인구 10명이 노인 8명과 어린이 2명을 부양하는 ‘1대1 부양 사회’가 된다. “이제 인구의 크기가 아니라 인구 구조를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방하남 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그래서 나온다. 정부가 보육 정책과 여성·노인 인력 활용에 공을 들여야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일하는 계층만 힘들어지는 게 아니다. 고령화에 따른 노인 삶의 질도 5000만 명 인구 시대의 숙제다. 이른바 ‘장수(長壽) 리스크’다. 한국은 급속히 ‘늙은 나라’가 돼가고 있다. 전체 인구를 나이별로 한 줄로 세웠을 때 가운데 있는 연령대를 의미하는 중위연령은 1980년 21.8세였다. 이게 2040년에는 52.6세가 된다. ‘농촌에선 50대가 청년’이란 말이 남의 얘기가 아닌 셈이다. 이수영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100세 시대’를 앞두고 노인 삶의 질을 높일 ‘장수 3.0’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장수 1.0은 개인 차에 따른 장수를, 장수 2.0은 의료 발전으로 전반적으로 수명이 느는 것을 말한다. 장수 3.0의 테마는 ‘더 길고 더 나은 삶’이다.
인구 5000만 명은 인구 이동의 방향성도 바꿀 전망이다. 이농(離農)에서 귀촌(歸村)으로다. 농림수산식품부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귀농·귀촌은 1만503가구, 2만3415명에 이른다. 1년 만에 두 배로 늘어났다. 올해는 다시 두 배가 늘어 2만 가구가 될 전망이다. 베이비부머의 은퇴가 본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광희 교수는 “인구 추계는 여건이 변하면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전망치”라며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내는 것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김영훈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