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명맥 끊겨 고문헌서 단초 찾아
ㆍ수십번 실험 거쳐 복원 성공
‘백미 한 되로 가루를 내어 구멍떡 3개를 만들어 물 한 사발을 넣고 삶아서 즉시 식힌다. 누룩가루 한 되를 삶은 떡과 고루 섞고 떡 삶은 물과 함께 항아리에 담아 주둥이를 봉한다. 나흘 후 찹쌀 한 말을 쪄서 식힌 뒤 항아리에 함께 담아 익으면 거른다. 이때 날물과 철로 만든 그릇은 피한다(白米一升作末 造孔三介以 水一鉢烹之待冷以 麴末一升拌勻同烹 水盛缸堅封口 四日後 粘米一斗烝熟放冷 合前釀盛瓮 待熟上槽均 忌客水及鐵器)’.
조선후기 문신 서유구(1764~1845)가 집필한 농촌 경제 정책지 <임원십육지>에 적힌 이 한자 구절이 국순당이 옛술 ‘동정춘’(洞庭春)을 찾아가는 유일한 단서였다. 중국 시인 소동파가 “지난해 마신 동정춘 향내가 아직 손에서 난다”고 읊은 명주였으나 만들기가 어려워 명맥이 끊긴 술이다.
사라진 옛술은 문헌 속 한 구절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문제는 과거 사람들의 불친절이다. 수백년 전의 ‘해 뜰 무렵’ ‘배꽃 필 무렵’이 지금의 시각과 같지가 않다. ‘물 한 바가지’란 표현도 정확한 계량이 어렵다.
국순당 연구소에서 연구원들이 빚어놓은 발효수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 국순당 제공
이 때문에 선조들의 전통주 ‘레시피’에서 분량이나 온도는 수십번 반복하는 실험을 통해서 밝힐 수밖에 없다. 먼저 문헌이 기록되던 당시로 돌아가 상상을 펼친다. 술 빚는 용기는 어떤 형태이며 무엇으로 만들었을까. 술로 만들 만큼 흔했던 곡식은 무엇일까. 계절별 기온과 절기의 특성 등 과거에 대한 이해가 완벽해야 문헌 속 구절 또한 완벽하게 해독될 수 있다.
특히 발효주는 완성되는데 적게는 40일에서 최장 100일까지 걸린다. ‘정월 상해일에 빚어 늦봄이나 여름에 마시는 술’이라 내려져 온 ‘약산춘’은 발효 과정만 백일을 보낸다. 한 번 실패는 서너달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것이다.
술을 빚은 뒤에도 고민은 계속된다. 색상은 같은지, 제대로 된 맛이 나는지에 대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세월에 따라 입맛이 변하고 맛에 대한 표현도 과거와는 다르니 그럴 수밖에 없다.
옛술 동정춘도 그렇다. 흰쌀로 구멍떡을 만들고 찹쌀 고두밥을 덧술로 넣은 뒤 물은 거의 없이 40여일 발효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만든다. 주 원료가 물인 다른 술과는 시작부터가 다른 셈이다.
류수진 국순당 연구원은 “문헌에 따라 술을 빚어보니 항아리에 뻑뻑한 고두밥만 가득차 실패한 것으로 판단했다”며 “포기하고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항아리 속 고두밥이 촉촉해지더니 차츰 향긋한 향이 올라오면서 진하고 달콤한 술이 돼 있었다”고 했다.
올 추석에 맞춰 국순당이 새로 내놓을 ‘신도주’도 마찬가지다. 신도주는 새(新) 쌀(稻), 즉 처음 수확한 햅쌀로 빚은 술이라는 뜻이다. 조선 후기부터 추석 차례상에 올리던 제주(祭酒)다.
이 술은 옛 문헌인 <양주방>과 <이씨 음식법>,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 “수확에 맞춰 미리 거둬둔 나락 중 가장 실하고 잘 여문 것을 따로 보관해 정성껏 빚는다”고 소개됐다.
국순당은 이 술의 참맛을 내기 위해 <양주방>에서 “술이 다 되면 맵고 달다”는 맛을 찾아갔다.
복원한 신도주의 레시피는 이러했다. 햅쌀 한 말을 깨끗이 씻고 빻아 흰 무리떡(백설기)을 쪄낸다. 끓인 물 두 말을 술독에 담아 놓고 백설기가 더워질 때, 술독에 넣어 덩어리 없게 풀어 하룻밤을 지내며 식힌다. 누룩가루 세 되와 밀가루 세 홉을 섞어 넣고 사흘 후에 덧술을 하고, 햅쌀 두 말은 깨끗이 씻어 하룻밤 담가둔 뒤 고두밥을 쪄 차게 식힌다. 또 끓인 물 한 말을 차게 식혀 밥과 함께 밑술에 버무려 넣는다. 열흘 후에 맑거든 마신다.
완성된 신도주는 약간 매운 맛과 입맛을 당기는 신맛, 은근한 단맛이 조화를 이루면서 은은한 향을 풍긴다고 한다.
배중호 국순당 대표는 “오랜 역사를 지닌 나라는 오래된 술 문화도 함께 이어진다”며 “우리 문화의 한 부분을 살려낸다는 점에서 복원 비용으로 산출할 수 없는 무형의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