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이용당하다 죽은 장쭤린(張作霖) [역사 속의 인물] 국민당 장줴스(蔣介石)과 천하를 다투던 만주 군벌 장쭤린(張作霖)은 친일파였다. 그는 중국인의 자존심을 지키다 최후를 맞았다. 마적단 출신으로 러`일 전쟁 때 일본군 별동대로 활약했다. 1912년 청(淸) 패망과 중화민국 건국 뒤 동북 3성을 호령했다.
80만 대군을 가진 그는 일본을 배경으로 베이징까지 진출, 위세를 떨쳤다. 마적에서 군벌이 되기까지 일본 힘이 컸다. 하지만 그는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일본의 음흉함을 잘 몰랐다.
1873년 태어난 그는 국민당 장줴스의 북벌군에 밀려 베이징에서 철수하다 1928년 오늘 새벽 5시 23분, 봉천역과 심양역 중간쯤 철도 교차 지점에서 일본군이 설치한 폭탄이 터져 타고 가던 열차 폭발로 죽었다.
일본군이 공생하던 그를 죽인 이유는 간단했다. 그가 지배하는 만주의 철도(부설)권 요구를 거절했기 때문이다. 무기와 병력 수송 등에 쓰일 철도는 일본의 만주지배에 필수였다. 이를 그는 ‘남의 혈관과 신경이 내 몸 속에 들어와 있는’ 것으로 봤다.
중국인으로서 자존심이 허락 않았다. 결국 일본군은 조선에 파병된 상주군(조선군사령부) 소속 공병 군인을 동원, 폭약을 설치해 제거했다. 친일을 했지만 나라를 통째로 판 조선 매국노와는 달랐다.
정인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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