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정치.사회/정치-외교-국방

차기 전투기 3파전 본격화

淸山에 2012. 6. 3. 17:07

 

 

 

 

 

차기 전투기 3파전 본격화

 

가격·기술이전이 승부 가른다

홍진수 기자 soo43@kyunghyang.com

 


 

ㆍ방위사업청, 이달 제안서 접수 … 10월 중 기종 최종 결정
 
지난 2월, 세계 최대 군수업체인 미국 록히드 마틴사는 일찍이 한국에서 겪어보지 못한 굴욕을 당했다. 한국의 방위사업청(방사청)으로부터 혼쭐이 났다. 미국의 한 지방신문에 난 기사 한 줄 때문이었다. “록히드 마틴사의 스테핀 오브라이언 부사장이 ‘한국이 F-35 전투기 구매에 동의했다’고 말했다”는 내용이었다. 한마디로 한국의 차기 전투기 사업자가 이미 결정됐다는 것이다. 이 기사가 나오자마자 록히드 마틴 측은 급히 한국 방위사업청을 방문해 “기사는 오보”라고 해명했다. 국방부 출입기자들에게도 e메일을 보내 기사가 난 배경에 대해 구구히 설명했다. 세계 최대 군수업체가 자존심을 팽개칠 만큼 차기 전투기사업은 민감한 사업이다.

 

방사청이 선정 작업을 벌이고 있는 차기 전투기 사업은 2016년부터 신형 전투기 60대를 들여오는 것이다. 60대의 가격은 유지·보수 비용을 제외하고도 무려 8조3000억원, 창군 이래 단일 무기 구매로는 최고액이다. 그 사업이 바야흐로 본격적인 게임에 들어갔다. 오는 6월18일 제안서 접수를 시작으로 전투기 제조사간 경쟁이 본격화된다. 세계적인 전투기 제조업체들간 ‘공중전’의 서막은 지난 1월에 이미 올랐다.

 

당시 사업설명회에는 록히드 마틴 외에도 보잉(미국), 영국,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컨소시엄인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EADS), 스웨덴 사브 등이 참여했다. 최종 입찰에 불참할 것이 확실해 보이는 사브를 제외하면 사실상 3파전이다. 러시아의 수호이는 사업설명회에 참가하지 않았다. 방사청은 오는 6월18일 제안서를 접수하고 9월까지 시험평가 및 협상을 진행한 뒤 10월에 구매 기종을 최종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최신형 전투기, 왜?

 

한국 공군은 현재 460여대의 전투기를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전투기의 수명은 30년이다. 아무리 열심히 ‘닦고 조이고 기름을 쳐도’ 한계가 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전투기 수명만이 아니다. 북한, 중국, 일본 등 주변국이 최신형 전투기를 배치하면 한국도 그에 상응하는 전투기를 구입해 ‘전력 균형’을 맞춰야 한다. 공중전이 특히 전투기의 성능 싸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신예 전투기로 무장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으냐는 게 공군의 설명이다. 결국 차기 전투기 사업은 북한만을 겨냥한 게 아니라 주변국의 잠재적 위협에 대응하는 성격이 짙은 셈이다.

 

차기 전투기 사업(F-X)은 1990년대부터 시작됐다. F-16 도입 등 전투기 현대화 사업을 지속적으로 해오던 국방부는 1993년 차기 전투기를 120대 도입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외환위기 등이 터지면서 사업은 지연됐고 도입 규모도 축소됐다.

 

 2002년 4월이 되어서야 미국 보잉사의 F-15K로 기종이 결정됐고, 2008년까지 1차로 총 40대가 들어왔다. 지난 4월 2차분(21대) 마지막 기체 인수가 마무리되면서 F-15K 도입 사업은 공식적으로 완료됐다. 2006년 6월 야간훈련 도중 F-15K 1기가 추락했기 때문에 한국공군의 F-15K 보유대수는 총 60대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여전히 한국 전투기의 40% 이상은 F-4, F-5 등 30년 이상된 노후기종들이 차지하고 있다. 국방부는 “6~7년 뒤인 2018~2019년까지 F-4, F-5 전투기들이 대거 퇴역해 공군이 목표로 하는 전투기 규모 420여대보다 100대 가까이 전투기가 부족해지는 상황이 생긴다”고 주장한다. F-X 3차사업이 다시 추진되고 있는 이유다.
 
■ 경쟁 중인 기종은
 
현재 치열하게 경쟁 중인 기종은 록히드 마틴사의 F-35(라이트닝Ⅱ), 보잉사의 F-15SE(사일런트 이글),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의 ‘유로파이터 타이푼’ 등 3개다. 스텔스기인 F-35가 가장 유력해보이지만 아직 경쟁은 끝나지 않았다.

 

보잉사와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은 저렴한 가격과 기술이전 등을 내세워 현 판도를 뒤집을 계획이다. 한국 정부 역시 3개사의 경쟁을 유도해 더 좋은 조건을 끌어내려 하고 있다.

 

F-35는 스텔스기다. 미국 의회의 반대로 국외 수출이 금지된 ‘현존 최강의 전투기’ F-22(랩터)를 제외하면 스텔스 성능이 가장 뛰어나다. 가격도 F-22에 비하면 저렴하다. 이 때문에 ‘보급형 F-22’라는 별명도 듣는다. 최근 한국에서도 개봉해 흥행에 성공한 미국 블록버스터 영화 <어벤저스>에 등장해 헐크와 대결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F-35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아직 개발이 끝나지 않은 기종이다. 제안서 접수가 임박했지만 F-35는 여전히 시험비행을 하고 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2010년에 개발이 완료됐어야 하지만 여러가지 문제로 2016년까지 연기됐다. 이 기한 역시 확실하지 않다. 개발기간이 늘어나면서 대당 가격도 1400억원 수준까지 뛰어 올랐다. F-22(약 4000억원)보다는 싸지만 F-15SE나 유로파이터에 비하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

 

지난 5월4일에는 미국 국방안보협력국이 일본에 F-35를 대당 2억3800만달러(약 2790억원)에 판매한다고 보고하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일본 판매가격은 한국이 책정한 가격보다 2배가량 비싸다. 록히드 마틴은 이에 대해 “가격은 프로그램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며 “한국에 제안할 가격은 가장 합리적이고 경쟁력이 높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F-15SE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F-15기의 최신판이다. 1972년 탄생한 F-15는 그간 F-15E, F-15K 등으로 진화를 거듭했다. 이번 F-15SE에는 스텔스 기능이 추가됐다. 스텔스 도료를 바르고 전자장비를 보완했을 뿐만 아니라 적 레이더에 잘 걸리지 않도록 기체 내부에 무장창을 설치했다.

 

스텔스 기능은 F-35보다 약하지만 F-15SE는 한국 공군의 주력기종인 F-15K 개량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부품 호환성이 높아 정비가 한결 수월하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이번에 가미된 스텔스 기능이 얼마나 제 기능을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유로파이터 타이푼은 자칭 ‘유럽판 랩터’다. 현존 세계 최강 전투기인 F-22에 버금가는 전투능력을 갖고 있다. 일부 스텔스 기능도 보유하고 있으며 공대공뿐만 아니라 공대지 작전을 번갈아 수행할 수 있는 ‘스윙롤’ 전투기다. 지속적으로 초음속 비행을 할 수 있는 ‘슈퍼 크루즈’ 기능도 자랑이다. 다만 내부무장창 없이 미사일 등을 겉에 주렁주렁 매달고 다녀야 하기 때문에 적진 침투에는 상대적으로 불리하다는 평가다.

 

■ 한국 공군에는 어떤 기종이 적합한가
 
보통 최신형 전투기라면 스텔스기를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스텔스 기능은 매력적이긴 하지만 단점도 많다. 스텔스기는 레이더에 잘 잡히지 않도록 외관을 매끈하게 만들어야 한다. 적진에 몰래 침투하는 것이 주임무일 때는 폭탄과 미사일을 내부무장창 안에만 넣고 움직여야 한다. 당연히 화력이 떨어지고 작전 능력에도 제한을 받는다. 게다가 가격도 비싸고 유지·보수에도 신경을 더 써야 한다. F-35는 대당 가격이 1400억원가량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비스텔스 기종은 1000억원 전후에 불과하다.

 

실전에서 스텔스기가 얼마나 효율적인지도 의문이다. 전투기는 적진 침투임무만 수행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공중통제기와 지상전력 등을 투입해 적의 레이더망을 무력화시킨 뒤 중무장한 비스텔스기를 보내는 것이 가격 대비로는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스텔스기에만 집착할 경우 한국은 이번 차기 전투기 도입 사업에서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없다. 차기 전투기 사업은 단순하게 비행기만 사는 것이 아니다. 기술이전, 국내생산, 추가적인 지원 등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계약조건으로 받아내야 한다.

 

이 때문에 방사청은 올해 초 사업설명회를 앞두고 공군에 차기 전투기 작전요구성능(ROC)에 포함되어 있던 레이더반사면적(RCS), 내부무장창 등 항목을 빼거나 수정하라고 요구했다. F-35의 독주 구도를 깨고 F-15SE와 유로파이터 타이푼도 경쟁에 뛰어들도록 만들기 위해서였다. 이미 보잉사는 한국 측에 기술 이전을 해줄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고,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은 기술이전은 물론 한국에서 60대 중 50대를 생산토록 하는 방안까지 카드로 내밀었다.

 

■ 승부의 관건은

 

이번 차기 전투기 결정에서는 가격과 함께 기술이전 항목이 승부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방사청이 공개한 ‘차기 전투기 선정 항목별 가중치’에 따르면 △수명주기비용 30% △임무수행능력 33.61% △군 운용적합성 17.98% △경제적·기술적 편익이 18.41%를 차지한다.

 

전투기 획득비와 30년 운영 유지비로 구성되는 수명주기비용은 가장 중요한 변수다. 가장 유력한 후보인 F-35는 개발 지연에 따른 비용상승을 최소화해야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성능 항목은 임무수행능력과 군 운용적합성으로 나눠 평가하는데 임무수행능력은 제안서 평가단계에서는 군 요구성능을 충족하면 모두 합격 처리한 뒤, 대상 전투기의 공대공 공대지 능력을 시험평가할 예정이다. 군 운용적합성은 기존 공군 전투기와의 상호 호환성을 보는 항목으로, 운용효율성과 종합군수지원이 중요하게 다뤄진다.

 

경제적·기술적 편익은 한국형 전투기를 개발하는 보라매사업 등과 관련한 기술이전을 포함한 절충교역을 평가하는 항목이다. 인도 시기 등의 계약조건과 핵심기술 획득, 방산수출, 산업협력 등을 다루게 된다. 기술지원에 가장 적극적인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이 자신감을 내보이고 있는 항목이다.
 
지난 1월 사업설명회 이후 3개 기종은 물밑에서 경쟁을 펼쳐왔다. 그러나 6월18일 제안서 접수가 마감되면 공식적으로 ‘전쟁’이 시작된다. 한국 정부가 1~2차 사업 때처럼 다시 미국산 전투기를 우리 상공의 핵심 전력으로 삼을지, 아니면 그동안의 틀을 깨고 다른 길을 선택할지는 오는 10월에 결정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