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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 2005년 법무부 반대 묵살하고 간첩출신에 대북사업권

淸山에 2012. 6. 1. 04:44

 

 

 

 

 

통일부, 2005년 법무부 반대 묵살하고 간첩출신에 대북사업권

 


법무부 “비전향장기수, 간첩활동 다시 할 우려” 반대했지만…
 경찰 “GPS교란기술 유출 李씨, 北을 자기조국으로 여겨 충성”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교란장치 등 군사기술 정보를 북한에 넘기려다 적발된 비전향 장기수 출신 대북(對北)사업가 이모 씨(74)에 대해 법무부가 ‘다시 간첩활동을 할 수 있다’는 의견을 냈지만 노무현 정부 시절 통일부가 이를 묵살하고 대북사업권을 내준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간첩죄로 18년간 복역하고 1990년 가석방돼 피보안관찰자 신분이었던 이 씨는 통일부의 승인 아래 최근까지 180여 차례 중국과 북한 등을 자유롭게 드나들며 사업과 간첩활동을 병행하다 지난달 구속됐다.

 

 31일 국회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통일부(당시 장관 정동영)는 2005년 10월 법무부(당시 장관 천정배)를 비롯한 남북경협 관련 부처에 이 씨가 1991년 설립한 남북교역업체 대동무역의 남북경제협력사업자 및 협력사업 승인 신청에 대한 검토의견을 요청했다. 법무부는 “이 씨는 피보안관찰자 신분으로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거나 재차 간첩활동을 할 가능성이 있는 등 재범 우려가 있다”며 “남북 경제협력사업 수행에도 한계가 있을 수 있다”며 반대했다.

 

 이 씨는 1972년 ‘김일성 회갑 선물 간첩단’ 사건 때 검거된 9명의 고정간첩 중 한 명으로 북한 노동당 연락부 소속으로 활동해왔다. 그해 1월 간첩 권영섭과 경제·군사정보를 수집보고하고 국가전복 등을 꾀했으며 통일혁명당 재건에 협조했다가 국가보안법 및 반공법 위반, 재일 북한 공작원 포섭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으며 1990년 3·1절 특별사면으로 가석방된 뒤 보안관찰 대상으로 지정됐다.

 

보안관찰법에 따르면 이 씨처럼 국가보안법상 간첩 혐의 같은 중범죄나 내란음모 외환죄 등으로 기소돼 확정 판결을 받고 형기를 마친 사람은 주거지를 옮기거나 열흘 이상 집을 떠나 여행할 경우 관할 경찰서장에게 신고하는 등 당국의 관리를 받도록 돼 있다. 검사 및 사법경찰관리는 이들의 재범을 막기 위해 필요한 지도와 조치를 할 수 있다고도 규정돼 있다.


하지만 통일부는 법무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 달 뒤인 2005년 11월 대동무역에 대해 강서청산수 생산 및 판매사업 관련 남북 경제협력사업자 및 협력사업 동시 신청을 승인했다. 당시 통일부는 “이 사업은 교역사업에서 경협사업으로 확대 발전된 것으로 그동안의 대북사업 경험을 바탕으로 남북 간 경제교류와 상호이익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1970년대에 국가보안법을 위반해 형을 살았다고 해서 협력사업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승인 사유를 설명했다.

 

 이 씨는 이듬해 8월 평안남도 남포에 강서청산수 생산 공장을 짓고 2008년까지 수시로 남북한을 오갔다. 그는 지난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2008년 정권이 교체되면서 남북 관계가 경색됐고 정부의 민간인 대북접촉 제한 때문에 북한으로부터 계약무효 통고를 받았다”며 “하루빨리 남북교류 제한 조치가 풀려 자유롭게 사업할 수 있게 됐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비전향 장기수 별도 관리규정 없어… “범죄 우려땐 특별관리해야” 목소리▼

 

경찰 관계자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 당시 대북 교류가 활성화되다 보니 정부가 비전향 장기수 등 국보법 위반 전과자에 대해서도 상당히 관대했다”며 “이 씨는 일관되게 북한을 자신의 조국이라고 생각해왔고 GPS 기술정보 유출 시도 건도 경제적 이익보다는 북한에 대한 충성심으로 벌인 것 같다”고 전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이 씨 같은 비전향 장기수를 특별 관리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경찰은 김영삼 정부 이후 인권 침해 논란이 일면서 비전향 장기수의 동향 파악을 모두 중단했다. 현재 남아 있는 비전향 장기수는 모두 피보안관찰자로 포괄돼 있고 이들에 대한 별도 관리 규정도 없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비전향 장기수는 교화된 일반 전과자와 달리 언제든지 유사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며 “인권도 중요하지만 그들로 인해 국가와 사회질서, 그리고 다른 선량한 시민들의 인권 침해가 우려된다면 별도로 관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법무부는 31일 비전향 장기수 현황 및 통계에 대한 자료 요청에 대해 “보안관찰 대상의 규모나 현황은 국가안보와 직결된 문제이고 인권 침해의 우려가 있어 공개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며 국회에서 자료 제공 요청이 와도 공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김준일 기자 jikim@donga.com

 

 

 

 

 

GPS교란기술 유출범, 당초 타깃은 ICBM 안테나 시스템


北장거리로켓 발사 성공에 필수… 궤도 정확성 향상 장비 노렸었다
 美통제로 막히자 빼돌리기 시도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관련 군사기술을 북한에 넘기려다 적발된 비전향 장기수 출신 대북 사업가 이모 씨(74)가 당초 빼돌리려 한 군사기밀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성능을 향상시키는 안테나 성능 테스트 장비인 것으로 31일 알려졌다.

 

 이 사건을 수사한 서울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3월 공범인 뉴질랜드 국적의 김모 씨(56)는 방위산업체 출신의 정모 씨에게 “북한 당국이 꼭 필요로 하는 물건인 것 같다”며 안테나 측정기기, NSI(Near-Field System)4.0을 구해달라고 부탁했다.

 

NSI4.0은 안테나 성능 및 정상작동 여부를 측정하는 장비다. 장거리미사일이 정해진 궤도로 정확히 날아가기 위해선 레이더 및 송수신 안테나의 성능이 중요하다. 안테나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안테나를 통해 정상적으로 데이터가 전송되는지에 대한 실험이 필요한데 NSI4.0은 직접 실험을 하지 않고도 시뮬레이션으로 실험이 가능하게 해 좀 더 안정적이고 정밀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게 해준다. 대부분의 레이더 및 송수신 안테나를 개발하려면 NSI4.0의 안테나 측정기기를 이용한 측정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 개발에 앞서 NSI4.0 기술을 입수해 정교한 안테나 시스템을 구축하려 했지만 미국의 통제로 구할 수 없게 되자 이 씨를 통해 한국에서 기술을 빼오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2009년 북한에 이 기술을 수출하는 것을 금지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북한이 4월 13일 발사한 은하3호 미사일이 발사 135초 만에 공중에서 폭발한 이유 중 하나로 안테나의 낮은 성능에 따른 원격제어 실패를 꼽고 있다.

 

 이 씨 등은 NSI4.0을 입수하려다 실패하자 같은 해 7월 e메일을 통해 정 씨에게 ‘고공관측레이더 전파탐지기 전파교란기 항공기 시뮬레이터’ 등에 대한 자료를 요구했다. 이에 정 씨는 항공시뮬레이터 자료로 한국 해군의 대잠헬기사업 기종 중 하나인 SH-2G와 관련한 자료를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 씨 등이 항공·전파 관련 지식이 깊은 정 씨에게 더 많은 자료를 요구하자 정 씨가 2000년대 초 미국 주력 F-117 스텔스 전투기의 전파흡수도료(RAM·Radar Absorbent Material) 자료도 제공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 씨는 국내 모 항공사 전파연구소에서 1999년까지 24년간 연구원으로 활동한 항공 전파 분야 전문가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는 “4월 28일부터 16일간 수도권에서 계속된 북한의 GPS 교란 공격이 이 씨가 빼돌리려 한 전파교란기 기술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지적하며 “북한이 입수한 전파교란 기술을 테스트하고 그것을 군에 적용하기 위해 테스트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준일 기자 jikim@donga.com

 

 

 

 

 

정동영 장관 통일부, 비전향 장기수에게 대북사업권 내줘

 

GPS(위성위치확인시스템) 교란장치를 북한에 넘기려다 검거된 비전향 장기수 이모(74)씨에 대해 노무현 정부 시절 통일부가 법무부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북 사업권을 내준 사실이 확인됐다고 동아일보가 1일 보도했다.

 

이씨는 북한노동당 연락부 소속의 고정 간첩으로 활동하다 1972년 검거됐다. 이씨는 1990년 비전향 상태에서 3·1절 특별사면으로 가석방됐고, 이후 보안관찰자 대상으로 지정됐다.

 

이씨의 대북 사업권을 두고 법무부와 통일부가 대립한 시기는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이었다. 이씨는 자신이 세운 대동무역이 북한 물품을 수입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정부에 대북 사업권을 신청했다. 그해 10월 법무부(당시 장관 천정배)는 "이씨는 피보안관찰자 신분으로 북한의 주장에 동조해 다시 간첩 활동을 할 가능성이 있는 등 재범 우려가 있다"며 이씨의 대북사업권 승인 요청을 반대했다.

 

하지만 통일부(당시 장관 정동영)는 "이씨가 신청한 사업이 남북 간 경제 교류와 상호이익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1970년대에 국가보안법을 위반해 형을 살았다고 해서 남북 협력사업을 할 수 없지 않다"며 2005년 11월 승인해줬다.

 

이씨는 사업 승인을 받고 2006년 8월부터 2008년까지 180여 차례 중국과 북한을 다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