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수 농촌진흥청 축산과학원 박사는 2009년 4월 3일을 잊을 수 없다. 이날은 장기 이식용 복제돼지 ‘지노’가 태어난 날이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황 박사는 밀려오는 전화가 곤혹스러웠다. 장기 이식을 문의하는 애절한 환자 가족의 전화였다. 그는 “인체 이식까지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는 설명을 하는 게 힘들었지만 더 큰 사명감을 갖게 된 계기였다”고 말했다. 현재 농진청의 복제돼지 개발은 2~3년 후 영장류에 대한 이식 성과를 낼 수 있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농업 기술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 보릿고개를 이겨내기 위해 생산량에 집착하던 기술이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도전으로 이어지고 있다. ‘애그로메디컬(Agromedical·의료용 축산업)’은 정부가 중점을 두고 있는 농업 기술 분야 중 하나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때 일본의 로열티 닦달에 시달렸던 딸기는 해외로 국산 품종이 수출되고 있다. 아프리카 케냐에선 한국식 모내기를 농업에 활용하고 있다. 이달로 창립 50주년을 맞은 농촌진흥청이 이처럼 한국 농업을 바꾼 50대 기술·사업을 선정했다. 이 가운데 상위 10개를 소개한다.
◆보릿고개를 없앤 통일벼=10대 기술 중 벼농사 관련은 3개다. 통일벼 개발, 통일벼에서 일반 품종으로의 성공적 전환, 벼 도열병의 극복이다. 허건양 농진청 연구정책국장은 “통일벼는 ‘기적의 볍씨’이자 ‘녹색 혁명’”이라고 평가했다.
통일벼 개발은 1963년부터 시작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이집트에서 수입한 볍씨를 자신의 이름 마지막 자를 따 ‘희농(熙農) 1호’라고 명명할 정도로 애착을 가졌다. 그러나 수입 종자는 한국 토양에 뿌리 내리지 못했다. 내로라하는 전문가가 품종 개발에 매달려 71년 ‘IR667’이 개발됐다. 통일벼의 효시다. 이삭당 낱알이 80개 남짓 열리던 시절, 이삭당 130개는 혁명이었다. 성과는 놀라웠다. 60년대 말 1000㎡당 304㎏이던 쌀 수확량은 77년 494㎏으로 늘었다. 77년은 쌀 자급을 달성한 해이기도 하다.
양은 곧 질의 문제로 이어졌다. 통일벼는 밥맛이 떨어졌다. 80년 발생한 냉해는 통일벼를 일반벼 품종으로 바꾸는 계기가 됐다. 일반벼 품종의 개발은 밥맛의 차별화를 가져왔고, 고급쌀 경쟁의 기반이 됐다. 너무 좋아서 문제가 되기도 했다. 2007년 나온 ‘호품벼’는 보급 4년 만에 전국 쌀 재배면적의 17%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생산성이 워낙 좋아서다. 그러나 풍년이 이어진 데다 대북 식량지원까지 중단되면서 2011년 농진청은 호품 보급을 중단했다.
◆우장춘 박사와 배추=배추를 고를 때 흔히 “속이 꽉 찼다”는 말을 한다. 그러나 50년대에는 이런 배추가 거의 없었다. 배춧잎이 모아지지 않고 상추처럼 펄럭이는 배추가 대부분이었다. 배추의 변신에는 ‘씨 없는 수박’으로 유명한 우장춘 박사의 노력이 서려 있다. 50년 귀국한 우 박사는 다수확 품종 개발에 온 힘을 쏟았다. 우 박사는 교배를 위해 농산물에서 종자를 채취하는 기초적인 기술까지 가르쳐야만 했다. 이런 노력 끝에 나온 한국형 배추의 시초가 원예 1호와 2호다. 우 박사가 숨진 이듬해인 60년에 개발 완료됐다. 육종 불모지에서 시작된 기술은 급격히 발전했다. 배추의 10개 염색체 중 가장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는 1, 2번 염색체를 세계 최초로 완전 해독해낸 것(2011년 8월)은 한국 기술진이었다.
◆백색혁명 비닐하우스=68년 4월 10일 수박 3통이 화제가 됐다. 경북 성주 비닐하우스에서 재배된 이 수박은 개당 무게가 400g이었다. 요즘 수박이 보통 5~6㎏ 하는 걸 감안하면 초소형 수박이었다. 그러나 당시로선 3개월가량 일찍 출하된 수박은 신문에 실릴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비닐하우스를 농업계에선 ‘백색 혁명’이라 부른다. 사계절 과일·채소 시대를 열었을 뿐 아니라 재배 면적도 급격히 늘리는 역할을 했다. 초기에는 대나무로 골격을 만든 비닐하우스가 많았다. 비닐하우스 보급이 늘면서 채소 재배면적은 70년 이후 20년간 10.7배로 늘어났다. 비닐이 농사에 쓰이면서 ‘멀칭 재배’도 밭 농업 풍경을 확 바꿨다. 멀칭 재배란 토양 표면을 자재로 덮는 것을 말한다. 과거에는 볏짚 등을 활용했으나 비닐을 활용하면서 지금은 텃밭을 가꿀 때도 활용될 만큼 보편화됐다.
◆딸기 전쟁의 승리=설향, 매향, 금향…. 국산 딸기 품종의 이름이다. 딸기는 한국 땅에 들어온 게 100년이 채 되지 않는다. 일본을 통해 들어온 게 대부분이었다. 국제적으로 종자 전쟁이 가열되면서 일본은 2002년 로열티 32억원을 내라는 요구를 해왔다. 한편으론 일본과 로열티 협상을 하고, 다른 한편으론 국산 품종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축적된 연구가 빛을 발하면서 2006~2010년 10여 개 품종이 나왔다.
곡절도 많았다. 현재 전국 딸기 재배 면적의 68%를 차지하는 ‘설향’은 한때 사라질 운명에 처하기도 했다. 2000년 시험 재배에 들어간 설향은 과실이 무르고, 초기 생육이 좋지 않았다. 예쁜 이름도 받지 못한 채 ‘논산 3호’로 불렸다. 그러나 농민 도중엽(충남 논산 연산면)씨가 이 딸기를 놓지 않았다. 해를 거듭할수록 재배 요령이 생겼고, 질병(흰가루병)에 강하고 무엇보다 수확량이 많다는 점이 입증됐다.
◆미래 농업 기술=10대 기술·사업에는 현재진행형인 미래형 사업도 여럿 있다. ‘흙토람’은 전국의 토양정보를 데이터베이스한 시스템으로 일종의 ‘토양 족보’다. 2009년 설립된 해외농업기술개발센터(KOPIA)는 한국 농업 기술을 해외로 전파하는 전초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50대 기술에는 방부제를 쓰지 않고도 6개월간 굳지 않는 떡, ‘버리지 않는 축산업’의 핵심인 가축분뇨 에너지화 기술 등이 포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