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군종신부, 사망 51년만에 미군 최고훈장 받을 듯
조호진 기자 이메일superstory@chosun.com
카폰 신부는 두 번이나 전장을 다니며 군인들과 동거동락했다.
BBC 제공
6·25 전쟁 당시 한국에 파견돼 군인들과 동고동락하다가 포로수용소에서 병사(病死)한 군종신부에게 미국 정부가 군(軍) 최고 훈장을 추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로마교황청은 그를 성인(聖人)으로 선포할 수 있는지 검토에 착수했다.
영국 BBC는 “로마 바티칸 교황청이 서른다섯이라는 짧은 생애를 함경도 원산의 포로수용소에서 마감한 미 육군 소속 에밀 카폰(Kapaun) 신부의 성인 추대를 검토하고 있다”고 16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BBC는 또 "카폰 신부가 미국 군인 최고훈장인 '명예훈장(medal of honor)'을 받으면, 군인으로는 3458번째로 가톨릭 사제로는 다섯 번째로 받을 전망"
이라고 전했다.
1916년 미국 캔자스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카폰 신부는 1940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 6·25 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카폰 신부는 미 육군 제8기병연대 소속 군종신부로
한국에 파견됐다. 그는 2차 세계대전 때도 군종신부로 전장에 있었다.
카폰 신부는 단단한 신체 조건에 당시 최고 배우였던 커크 더글러스를 닮아 군종신부라기보다는 일반 사병 같았다고 한다. 그는 한국에 오자마자 교전 중 부상당한 군인을 구출한
공로로 1950년 8월 동성(銅星) 훈장을 받았다.
카폰 신부 소속 부대는 인천상륙작전 이후 함경도 원산까지 진격했지만, 북한 지원을 위해 투입된 중공군 부대에 11월 포위됐다. 철수 명령에도 불구하고 카폰 신부는 원산에 남아
부상병을 돌봤다. 결국 카폰 신부는 미군 수 백명과 함께 평안북도 벽동의
포로수용소에 수감됐다.
6·25전쟁에 참전한 에밀 카폰 신부가 전장의 한 벌판에서 군용 지프에 간이 제대를 꾸려놓고 병사들과 미사를 드리고 있다. BBC 홈페이지
포로수용소의 열악한 위생환경, 식량 부족과 강추위로 미군 포로들은 죽음 직전까지 몰렸다. 당시 수감됐던 로버트 버크 대위는 "이듬해 2,3월이 되자 우리 대부분은 음식 때문에 짐승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카폰 신부는 수감된 동료 군인들에게 주려고 감자, 소금, 마늘, 후추, 곡물 등을 훔쳤다고 한다. 거동이 불편한 부상병의 옷을 빨아주기도 했다.
포로수용소에서 헌신적으로 군인들을 돌보던 그는 1951년 세균 감염으로 한쪽 눈에 붕대를 감아야 했고, 혈전으로 다리를 절기 시작했다. 결국 그해 5월 카폰 신부는 수용소에서 눈을 감았다. 죽기 직전까지 카폰 신부는 군인들의 고해성사를 들으며 사제의 의무를 다했다.
카폰 신부는 "곧 하느님이 계신 곳으로 가기에 기쁘다"며 숨을 거뒀다.
카폰 신부의 선행은 미군 포로가 풀려난 1953년이 돼서야 미국 정부에 알려졌다. 하지만 ‘해당 사건이 발생한 시점을 기준으로 2년 이내에 제안돼야 한다’는 규정 탓에 명예훈장을 추서받지 못했다. 캔자스주 출신 의원들은 지난해 카폰 신부의 선행을 예외로 인정해 달라며 명예훈장 추서를 요청했고, 미 정부는 검토 끝에 이를 받아 들였다.
카폰 신부가 군종신부로 전장터를 누비며 군복을 입고 있는 모습.
BBC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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