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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대통령의 입' 9년] 14. 기업 새마을학교

淸山에 2009. 8. 16. 10:46
 
 

 

 
 
[중앙일보] 입력 2005.03.30 19:24 / 수정 2005.03.31 09:43
 
 

1976년 3월 박정희 대통령이 성남에 있는 타이어공장에 들러 여자 기능공을 격려하고 있다.

1970년대 초 새마을운동이 시작될 무렵 여당에서는 이를 당 조직 확대에 이용하려 들었다. 야당에서는 여당이 으레 그럴 것이라는 짐작 아래 관제 정치운동이라며 맹렬히 반대하고 나섰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새마을운동에 간섭하지 말도록 정치권에 엄명을 내렸다.

 

여당에는 절대로 넘보지 말라고 특별히 지시했다. 새마을운동으로 가난 추방이라는 염원을 해결하려고 하는데 이것이 정치에 오염돼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새마을운동은 처음에는 환경개선 운동으로 시작되었으나 점차 소득증대 운동으로 발전하면서 각 마을의 사업도 주민의 자치적 결정에 따르게 되었다. 그랬더니 의욕이 더욱 왕성해져 추진율이 올라가고 만족도가 높아졌다.

 

나중에는 주민 스스로 이것을 풀뿌리 민주주의의 실천 도장이라고 평가하면서 정치권을 비웃는 일까지 생겼다.

새마을운동은 농촌에서 공장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공장 새마을운동에서 내가 기억하는 가장 감격적인 장면이 하나 있다. 박 대통령은 어느 날 수출업체의 제품 생산공장을 시찰했다. 농촌 출신의 어린 기능공들이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박 대통령이 한 기능공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 어린 기능공은 뜻밖에도 "영어 공부를 하고 싶습니다. 영어를 모르니까 감독님 말씀을 잘 알아들을 수가 없어요"라고 대답했다. 임금을 올려 달라든가, 생활 여건을 개선해 달라는 등의 일반적 노동 운동가들의 요청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수출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에서 영어 단어를 모르면 불편하기 이를 데 없음은 당연한 일이다.

이 여자 기능공을 바라보는 박 대통령의 눈에는 이슬이 맺히기 시작했다. 가난에 찌들었던 자신의 어릴 적이 생각나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박 대통령은 고개를 뒤로 돌렸다. 마침 그곳 사장이 옆에 서 있었다. 박 대통령은 "얘들이 공부할 수 있는 길이 없겠는가"라고 물었다. 사장은 박 대통령의 눈을 보면서 "곧 야간학교를 만들겠습니다"라고 했다.

얼마 후 중학교 과정의 야간학교가 문을 열었다. 농촌 출신 여성 기능공들은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새마을학교에서 공부했다. 그런데 소정의 과정을 모두 마치고 영예의 졸업식을 눈앞에 뒀을 때 청천벽력같은 사건이 터졌다. 문교부에서 그 새마을학교는 졸업장을 수여할 자격이 없다고 통보해 온 것이다. 졸업장을 안 주는 졸업식이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박 대통령은 이를 알고 대노했다. "돈이 없어 공부를 못 하는 것이 한이라는 소녀들이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열심히 공부해서 졸업하는데 그 한도 못 풀어준다면 그런 규정은 당장 뜯어고쳐야 한다"고 일갈했다.

문교 당국은 이들에게 졸업장을 수여하도록 허가했다. 이것이 선례가 되어 급속히 야간 새마을중학교가 여기저기 개설되었다. 박 대통령의 개혁은 공무원들의 관료주의 타파가 그 특징이었다. 이른바 보수와 진보 등 정치이념을 들먹거리는 개혁은 안중에도 없었다.

김성진 전 청와대 대변인·문공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