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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대통령의 입' 9년] 15. 리콴유 총리 방한

淸山에 2009. 8. 16. 10:46
 
 

 

 
 
[중앙일보] 입력 2005.03.31 18:17 / 수정 2006.05.18 00:33
 
 

방한한 리콴유 총리 부부를 위한 청와대 공식 환영행사에서 박정희 대통령(右)이 리 총리와 건배하고 있다.

1970년대 초 시작된 새마을운동은 70년대 말에 이르러서는 한국 농촌의 모습을 확 바꾸어놓았다. 새마을운동은 한국이 외국에 내놓을 수 있는 자랑거리가 되었다. 70년대 후반 문공부 장관을 하면서 나는 이를 직접 목격할 수 있었다.

79년 10월 싱가포르의 리콴유(李光曜) 총리 부부가 한국을 방문했다. 정부는 다른 외국 귀빈에게 하는 것처럼 그에게 한국 경제발전의 상징인 포항제철을 보여주려고 하였다.

 

그런데 자국에 대해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리 총리는 포철 정도에는 감동받지 않는다는 듯 굳이 한국의 전통문화를 보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외무 당국은 꾀를 내었다.

 

 

그를 불국사와 석굴암이 있는 경주로 안내하는 도중에 자동차가 포철 단지를 지나가도록 이동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웅장한 모습을 겉으로나마 보고 가라는 심산에서였다. 한국의 문화재를 보여주는 것이어서 문공부 장관이던 내가 리 총리 일행을 안내하도록 결정되었다.

리 총리 부부는 포철을 보고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승용차가 포철 안으로 들어서자 바로 전까지 차창 밖 풍경을 이리저리 둘러보던 리 총리 부부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똑바로 정면만 응시했다. 우리 정부의 의도를 눈치챈 게 분명했다. 내심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손님들에게 좀 지나치지 않았나 싶어서였다. 경주에 도착해서도 리 총리 부부는 포철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돌아갈 일을 걱정했다. 리 총리의 심경을 아는 터에 온 길을 되짚어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경주에서 대구 근교의 동촌비행장까지 승용차로 이동한 뒤 그곳에서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서울로 돌아가는 이동계획을 짜 경호실 요원들에게 주었다. 이들은 "각하의 결재가 있어야 한다"고 버텼다. 할 수 없이 내가 직접 청와대로 전화를 걸어 최광수 의전수석(훗날 외무부 장관 역임)을 통해 이동계획 변경을 보고했다. 박 대통령은 이를 승인했다.

출발하는 날 아침 나는 리 총리 일행에게 이동 경로를 설명하면서 동촌비행장까지 가는 도중 한국의 농촌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미리 알려주었다. 경주를 벗어나자 차창 밖으로 한폭의 그림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평야는 누런 황금물결로 파도쳤다. 초가 지붕 위에서 빨갛게 물들기 시작한 고추는 파란 가을 하늘 속에서 산호처럼 빛났다.

리 총리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런 말이 없었다. 침묵은 비행장에 도착해 대기 중이던 비행기에 오를 때까지 계속됐다. 리 총리는 자리를 잡고 앉은 뒤 나에게 말을 걸었다.

"김 장관, 당신네 농촌은 참으로 윤택하군요. 어떻게 이렇게 잘 살게 되었소."

나는 "박 대통령의 새마을운동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하나를 추가했다. "우리도 좋은 두뇌가 해외로 빠져나가는 현상이 극심했습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그 두뇌 유출에 역류(逆流)현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 결과의 하나가 당신이 어제 본 포항제철입니다."


김성진 전 청와대 대변인·문공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