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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김홍도(金弘道)
아호 : 단원(檀園)
제목 : 선인송하취생(仙人松下吹笙)
언제 : 18세기 말
재료 : 족자 종이에 담채
규격 : 109 x 54.5 cm
소장 : 고려대학교 박물관
해설 : 김홍도 도석(道釋)인물은 전혀 배경을 그리지 않고 인물들만 크게 부각시켜. 그들의 표정 및 동작이나 자세만으로. 화면구성을 꾀한 것과. 배경 속에 점경(點景)으로 인물을 담는 두 가지로 크게 나뉘어지는데, 대체로 전자가 앞선것으로 본다.
배경이 있는 경우도 서원아집병(西園雅集屛)과 같이 정교하고 섬세하여. 그야말로 화본풍(畵本風)으로 나타내는 경우와. 전혀 이런 분위기와 는 거리가 먼 평범한 장면으로, 나타내는 경우가 있는데. 대체로 섬세한 쪽이 먼저 그린 것이 된다. 노송만을 화면 중앙에 수직으로 포치시킨, 선인송하취생은 장식성이 전혀 배제된 소탈함과. 번거롭지 않는 담담한 운치를 보여준다.
이와 같이 수직으로 소나무를 그린 예는, 김홍도 보다 한세대 앞선 18세기 전반의. 대표적인 문인화가로 손꼽히는. 이인상(李麟祥)에게서 찾아볼수 있어, 공통점이 보이는 석법(石法)과 더불어. 그의 영향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김홍도가 즐겨 그린 상하로 뻗은 노송은 갈필선묘(渴筆線描)로 때로는 노송의 위아래가 화면 밖으로 벗어나 중간만 나타내기도 한다.
노송의 굵은 수직 줄기로 인해 나타난 화면공간엔 폭포를 곁들이거나 학이나 사슴이 신선대신 등장되기도 한다. 소나무와 관계있는 신선으로는 소를 탄 노자(老子)의 배경에 노송이 나타나기도 하며. 노송에 기댄 적송자(赤松子) 등을 열거할 수 있다. 소나무와는 별개로 생황(笙簧)을 잘 부는 신선으로 옥자진(玉磁晉)이 있다.
선인송하취생은 신선보다 오히려 노송이 큰 비중을 화면을 점하고 있는데. 솔잎은 성글고 늙은 줄기의 거친 표현은, 신선과 함께 상징적 의미를 부여한 듯도 하다. 차분한 자세로 앉아 생황을 부는 신선은, 사뭇 유연(悠然)한 정취이며. 의습선은 가늘고 고른 필선으로. 율동감 있는 송린(松鱗)과 는 대조적이다. 오른쪽 상단에 회화적인 아름다움까지 보이는 제발(題跋)은 “생황의 외형은 봉황이 날개짓 한는 것 같고. 불 때 들리는 소리는 용의 울음소리보다 처절하다”. 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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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김홍도(金弘道)
아호 : 단원(檀園)
제목 : 마상청앵(馬上聽鶯)
언제 : 18세기 말
재료 : 족자 종이에 담채
규격 : 117.4 x 52 cm
소장 : 간송미술관
해설 :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는 겸재(謙齋) 정선(鄭敾)과 관아재(觀我齋) 조영석(趙榮祏)의 동국진경풍속화(東國眞景風俗畵)를 계승하여 이를 기교적으로 변모시켰던 화원화가이다.
풍채가 아름답고 성격이 호방 활달하여. 당시 사람들이 신선중의 사람으로 보았다는. 이야기가 있을정도로 수려한 미남자 였던 보양인데. 그래서인지 이 그림속의 말 탄 양반이나. 구종하인이 모두 늘씬한 몸매로 그려져 있다. 심지어 앞발을 모아세우고 다소곳이 서 있는 적황색 말과. 노변의 버드나무까지도 호리호리한 미태(美態)를 발산하고 있다.
그림속의 인물이 항용 그린 사람을 닮게 마련인 것을 생각하면. 말 탄 사람은 바로 김홍도 자신이라고 하여도 좋을 듯 하다.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나른한 늦은 봄날. 복건에 갓 쓰고 도포는 술띠를 늘여 차려입은. 멋장이 양반이 한 손에 쥘부채 들고. 한손에는 고삐를 잡은채. 길가 버드나무 아래 위에서 화답하는. 노란 봄 꾀꼬리 한 쌍의 흐드러진 교성에. 가는길도 잊은 듯 넋을 잃고 멈춰 서 있다. 모춘여정(暮春旅情)의 시취(詩趣)가 뿌듯이 느껴지는 분위기 이다.
공백을 한껏 강조한 시정(詩情) 넘치는 일각(一角) 구도뿐만 아니라. 적황색 말과 푸릇푸릇한 연초록의 봄버들잎. 등황빛 꾀꼬리의 색조는, 노변과 버드나무 둥치에 찍어낸 청묵빛과, 묘하게 대조를 이루며 어우러져서, 춘정을 한층 자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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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김홍도(金弘道)
아호 : 단원(檀園)
제목 : 무이귀도(武夷歸圖)
언제 : 18세기 말
재료 : 족자 종이에 담채
규격 : 112.5 x 52.6 cm
소장 : 간송미술관
해설 : 무이산(武夷山)은 지금 대만의 대안(對岸)에 해당하는. 복건성건녕부(福建省建寧府)에 있는 길이 120리의 명산이다. 36봉과 37암 그리고 그 사이를 흘러내리는 건계(建溪)가 어우러지며, 선경을 빚어내어 한무제(漢武帝) 때부터. 무이군(武夷君) 이라는 신선이 살았다 하고. 가깝게는 松代의 신선 옥섬(玉蟾) 갈장경(葛長庚)이. 이 산속에 숨어 살았다고도 하는. 신비한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빼어난 경치로 인해, 수많은 탐승객이 이곳을 찾아 절경을 읊었으나, 중국 십철(十哲) 중의 한 사람이자. 주자(朱子) 성리학의 개조로서 추앙받는, 남송(南宋)의 주희(朱熹)가 노래한, 무이구곡가(武夷九曲歌)만큼 무이산구곡(武夷山九曲)을 유명하게 한 것은 없다.
이후 건계가 36봉 37암을 감아 흘러내리며 빚어낸 아홉 굽이는 화가들에 의해 즐겨 그려지게 되었는데 주자성리학을 국시로 하여 중국보다 더욱 성리학적 학문체계를 발전시켰던 조선에서도 주자의 무이구곡가는 중요한 소재로서 일찍부터 그려졌었다. 김홍도의 이 그림이 구곡중에서 어디를 그렸는지 언뜻 알기 어렵지만. 하엽준(荷葉皴)으로 처리된 기암준봉과. 그 사이를 굽이쳐 내려오는 탕탕한 계류를 타고 치닫는 선유(船遊)는 실로 호방장쾌 하여. 무이구곡 전체가 이 한폭에 모두 담겨진 것 같으니. 굳이 어느 굽이의 경치인지를 따질 필요가 없을 듯 하다.
뜸집배 안에 상반신을 드러낸 채 절경을 승람하는 인물로 그려진. 주희의 단아한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사공들이 행색은 분명 조선 사람의 그것이어서, 당시 풍미하던 조선중화(中華)사상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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