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 & 배움/술 & 와인愛

술을 노래한 선비들의 글

淸山에 2011. 7. 11. 17:04

 
 

 

 
 
 

☆☆☆ 醉時歌 취시가 ☆☆☆

- 杜甫 두보 -

諸公袞袞登臺省 제공곤곤등대성 관료들 줄줄이 높은 벼슬 오르는데

廣文先生官獨冷 광문선생관독냉 광문선생 벼슬만이 홀로 쓸쓸하고

甲第紛紛厭粱肉 갑제분분염량육 즐비한 고급저택 고량진미 넘치는데

廣文先生飯不足 광문선생반부족 광문선생 끼니조차 잇기 어렵구나.

先生有道出羲皇 선생유도출희황 선생의 덕 복희씨 보다 뛰어나고

先生有才過屈宋 선생유재과굴송 재주는 굴원과 송옥을 뛰어 넘는데

德尊一代常坎軻 덕존일대상감가 덕은 일세 제일이나 항상 불우하니

名垂萬古知何用 명수만고지하용 이름만 만고에 날린들 무엇하리.

杜陵野老人更嗤 두릉야노인경치 두릉의 촌 늙은이 사람들이 비웃으니

被褐短窄빈如絲 피갈단착빈여사 베옷마져 초라하고 머리칼은 헝클어져

日적太倉五升米 일적태창오승미 태창미 닷 되를 사 하루하루 연명하며

時赴鄭老同襟期 시부정노동금기 때때로 정노인과 마음을 나누네.

得錢卽相覓 득전즉상멱 돈이라도 생기면 서로를 찾고

沽酒不復疑 고주부복의 술을 사는 데는 눈치 보는 일이 없이

忘形到爾汝 망형도이여 겉치레를 버리고 너나하는 사이지만

痛飮眞吾師 통음진오사 흠뻑 취함에는 진정 나의 스승이네

淸夜沈沈動春酌 청야침침동춘작 밤은 깊어 가는데 술잔을 나누니

燈前細雨첨花落 등전세우첨화락 등잔 앞에 가랑비 처마 아래 지는 꽃

但覺高歌有鬼神 단각고가유귀신 소리 높여 노래하니 귀신이 흥 돋우고

焉知餓死塡溝壑 언지아사전구학 굶어 죽어 구덩이에 묻힐 걱정 잊었네.

相如逸才親滌器 상여일재친척기 재주 있는 사마상여 잔 씻는 일을 했고

子雲識字終投閣 자운식자종투각 유식한 자운은 몸을 던져 죽었으니

先生早賦歸去來 선생조부귀거내 선생도 일찌감치 귀거래사 읊으시게

石田茅屋荒蒼苔 석전모옥황창태 자갈밭 황폐하고 이끼 띠 집 덮기 전에

儒術於我何有哉 유술어아하유재 유학이 우리에게 무슨 소용인가

孔丘盜蹠俱塵埃 공구도척구진애 공자도 도척도 모두 티끌 먼지 된 걸

不須聞此意慘慘 부수문차의참참 이말 듣고 슬퍼할 것은 없으니

生前相遇且銜杯 생전상우차함배 살아 만나는 동안 술잔이나 나누세

-옮겨온 글입니다.-

 
 

 

 
 


▤▤▤ 把酒問月 ▤▤▤

-李白-

靑天有月來幾時 하늘의 저 달은 언제부터 떠 있는가.

我今停杯一問之 나는 지금 술잔을 놓고 물어본다.

人攀明月不可得 사람이 달을 잡으려 해도 잡을 수 없지만

月行却與人相隨 달은 떠서 사람을 따라 서로 지내나니

皎如飛鏡臨丹闕 달이 거울처럼 밝아 仙宮에 비치니

綠烟滅盡淸輝發 뿌연 아지랑이 걷히고 빛이 쏟아지네.

但見宵從海上來 다만 밤마다 바다 위에 떠오는 것을 보지만

寧知曉向雲間沒 어찌 새벽에 구름 속에서 져 가는 것을 알 것인가

白兎搗藥秋復春 옥토끼 약을 찌면서 봄가을 지내고

姮娥孤柶與誰隣 선녀 외로이 살아가니 누구와 이웃할까

今人不見古時月 지금 사람 옛 달을 보지 못하였으나

今月曾經照古人 지금 달 일찍이 옛사람 비추어 왔네.

古人今人若流水고인, 금인 흐르는 물과 같아서

共看明月皆如此 밝은 달 보는 것이 이와 같았지

惟願當歌對酒時 바라건대 노래하고 술 마실 때에

月光長照金樽裏 달빛이여, 이 술잔에 길이 비쳐다오.
-옮겨온 글입니다.-

 
 

 

 

 
 

☆☆☆ 將進酒 ☆☆☆

- 李 白 이 백 -

君不見 군불견 그대는 보지 못하였는가.

黃河之水天上來 황하지수천상래 황하의 강물이 하늘에서 내려와,

奔流到海不復廻 분류도해불부회 바삐 흘러 바다로 가 다시 못 옴을

又不見 우불견 또한, 보지 못하였는가.

高堂明鏡悲白髮 고당명경비백발 고당명경에 비친 백발의 슬픔

朝如靑絲暮如雪 조여청사모여설 아침에 검던 머리 저녁에 희었다네.

人生得意須盡환 인생득의수진환 기쁨이 있으면 마음껏 즐겨야지

莫使金樽空對月 막사금준공대월 금잔에 공연히 달빛만 채우려나.

天生我材必有用 천생아재필유용 하늘이 준 재능은 쓰여질 날 있을 테고

千金散盡還復來 천금산진환부래 재물은 다 써져도 다시 돌아올 것을

烹羊宰牛且爲樂 팽양재우차위락 양은 삶고 소는 저며 즐겁게 놀아보세

會須一飮三百杯 회수일음삼백배 술을 마시려면 삼백 잔은 마셔야지

岑夫子,丹丘生 잠부자,단구생 잠부자, 그리고 단구생이여

將進酒,君莫停 장진주,군막정 술을 마시게, 잔을 쉬지 마시게

與君歌一曲 여군가일곡 그대들 위해 노래 한 곡하리니

請君爲我側耳聽 청군위아측이청 모쪼록 내 노래를 들어주시게

鍾鼎玉帛不足貴 종정옥백부족귀 보배니 부귀가 무어 귀한가.

但願長醉不願醒 단원장취불원성 그저 마냥 취해 깨고 싶지 않을 뿐

古來賢達皆寂莫 고래현달개적막 예부터 현자 달인이 모두 적막하였거니

惟有飮者留其名 유유음자유기명 다만, 마시는 자 이름을 남기리라.

陳王昔日宴平樂 진왕석일연평락 진왕은 평락전에 연회를 베풀고,

斗酒十千恣歡謔 두주십천자환학 한 말 술 만금에 사 호탕하게 즐겼노라

主人何爲言少錢 주인하위언소전 주인인 내가 어찌 돈이 적다 말하겠나.

且須沽酒對君酌 차수고주대군작 당장 술을 사와 그대들께 권하리라

五花馬,千金구 오화마,천금구 귀한 오색 말과 천금의 모피 옷을

呼兒將出換美酒 호아장출환미주 아이 시켜 좋은 술과 바꾸어오게 하여

與爾同銷萬古愁 여이동소만고수 그대들과 더불어 만고 시름 녹이리라.

-옮겨온 글입니다.-

 

 

 

 
 
 

☆☆☆ 月下獨酌 一 ☆☆☆

- 李白 이백 -

天若不愛酒 천약불애주 하늘이 술을 즐기지 않았다면

酒星不在天 주성부재천 하늘에 주성이 있을 리 없고

地若不愛酒 지약불애주 땅이 술을 즐기지 않았다면

地應無酒泉 지응무주천 땅에 어찌 주천이 있겠는가.

天地旣愛酒 천지기애주 천지가 이미 술을 즐겼으니

愛酒不愧天 애주불괴천 술 즐김이 어찌 부끄러우랴

已聞淸比聖 이문청비성 듣기에 청주는 성인과 같고

復道濁如賢 복도탁여현 탁주를 일러 현인과 같다하니

聖賢旣已飮 성현기이음 성현을 이미 다 마신 후에

何必求神仙 하필구신선 신선은 더 구하여 무엇하랴.

三盃通大道 삼배통대도 석 잔 술에 큰 도에 통하고

一斗合自然 일두합자연 한 말에 자연과 하나 되거니

俱得醉中趣 구득취중취 취하고 취하여 얻는 즐거움을

勿謂醒者傳 물위성자전 깨어 있는 이에게 전하려 말라


☆☆☆ 月下獨酌 二 ☆☆☆

- 李 白 이 백 -

花間一壺酒 화간일호주 꽃 사이 놓인 한 동이 술을

獨酌無相親 독작무상친 친한 이 없이 혼자 마시네.

擧盃邀明月 거배요명월 잔 들어 밝은 달을 맞이하고

對影成三人 대영성삼인 그림자를 대하니 셋이 되었구나.

月旣不解飮 월기불해음 달은 전부터 술 마실 줄 모르고

影徒隨我身 영도수아신 그림자는 부질없이 흉내만 내는구나.

暫伴月將影 잠반월장영 한동안 달과 그림자 벗해

行樂須及春 행락수급춘 행락은 모름지기 봄에 맞추었다

我歌月排徊 아가월배회 내가 노래하니 달은 거닐고

我舞影凌亂 아무영능란 내가 춤을 추니 그림자 어지러워

醒時同交歡 성시동교환 깨어서는 모두 같이 즐기고

醉後各分散 취후각분산 취한 뒤에는 제각기 흩어진다.

影結無情遊 영결무정유 길이 무정한 놀음 저들과 맺어

相期邈雲漢 상기막운한 아득한 은하에서 다시 만나길...
-옮겨온 글입니다.-

 
 

 

 
 
* 황진이와 소세양의 멋진 사랑 이야기 *

2010년6월05일 오전11시30분모두조회수 1 1

??? 황진이(黃眞伊 ?~?) ???

조선 중기 시인. 개성(開城) 출신. 본명은 진(眞). 기명은 명월(明月).

중종 때 진사(進士)의 서녀로 태어나 어머니에게서 사서삼경을 배웠다.

15세 무렵 동네 총각이 그녀를 연모하다 상사병으로 죽자 기생이 되었다고 한다.

뛰어난 시·서(書)·가창 재능과 출중한 용모로 당대문인·석유(碩儒)들을 매혹시켰다.

10년 수도의 생불(生佛) 지족선사(知足禪師)를 유혹하여 파계시키고, 석학 서경덕(徐敬德)을 꾀려다 실패한 뒤 사제관계를 맺었다는 등 많은 일화가 전한다.

종친(宗親) 벽계수(碧溪守)와 깊이 교제하며 독특한 애정관을 시로 표현하였다.

서경덕·박연폭포와 더불어 송도삼절(松都三絶)로 불렸다.

기발한 이미지와 세련된 언어구사 등으로 조선시조문학의 백미로 꼽히는 그녀의 시조

<청산리 벽계수야> <동짓달 기나긴 밤을> <산은 옛 산이로되> <어져 내일이여> 등

6수가 《청구영언(靑丘永言)》에 전한다.


♡♡♡ 황진이와 소세양의 멋진 사랑 이야기 ♡♡♡

소세양(蘇世讓)이 송도에서 황진이(黃眞伊)를 만났을 때의 일이다. 소세양이 젊었을 때 친구들에게 그때 당시 이름을 날리던 황진이를 유혹해 한 달 간 동숙(同宿)을 하리라 약속을 하고 송도에 와서 황진이(黃眞伊)를 만났다.


소세양이 먼저 황진이(黃眞伊)에게 인편에 편지를 보냈다.

榴-석류나무 류(유), 편지에는 단 하나의 한자만 적혀있었다.

이 편지를 본 황진이도 역시 하나의 글자 ??漁-고기잡을 어??로 답장을 써서 보냈다.

榴의 뜻은 碩儒那無遊(석유나무유)를 해석을 하면 '큰선비가 여기 있는데,

어찌 놀지 않겠는가?' 가 된다. 즉 '내가 왔으니 어서 와서 나랑 놀자' 라는 뜻과 비슷하다.

황진이의 답장 漁의 뜻은 高妓自不語(고기자불어)로 '높은 기생은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라는 뜻으로 다시 말하면, '높은 기생인 나는 마음에 드는 남자라도 먼저 꼬시지 않으니까

네가 먼저 직접 와서 말해라' 가 되는 것이다.

둘은 어쨌든 한 달 간 동숙(同宿)을 하였고 이별할 때는 황진이(黃眞伊)가 시까지 지어서 남겼다. 송도의 명기 황진이의 소문을 들은 당대의 문장가 소세양(蘇世讓)은 아무리 황진이가 재색을 겸비하였다지만 한달 기한으로 그녀와 동숙하고 나면 반드시 떠날 것이라고 티끌만큼이라도 미련두지 않으리라 친구들에게 호언장담(豪言壯談)한다.

정말 그와 함께 꿈같은 한달을 보낸 뒤 황진이(黃眞伊)는 그와 더불어 누각에 올라 이별주를 나눈다. 그녀는 이별을 슬퍼하는 기색을 조금도 보이지 않고 다만 이렇게 말한다.

"당신과 이별하며 어찌 한마디 말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원컨대 졸구(拙句)를 올리고자 하오니 되겠습니까?"

소세양(蘇世讓)이 그러라고 하자 그녀는 시를 써서 바쳤다.


※奉別蘇判書世讓(봉별소판서세양) -黃眞伊(황진이)-

月下庭梧盡(월하정오진) 달빛 비치는 뜰에는 오동잎 지고

霜中野菊黃(상중야국황) 서리 맞은 들국화 노랗게 피었네.

樓高天一尺(누고천일척) 누각은 높고 하늘은 나직한데

人醉酒千觴(인취주천상) 오가는 술잔은 취해도 끝이 없네.

流水和琴冷(유수화금랭) 물소리는 거문고 가락에 싸늘하고

梅花入笛香(매화입적향) 매화는 피리 곡조에 젖어 향기로워라.

明朝相別後(명조상별후) 내일 아침 우리 둘이 이별한 뒤에

情與碧波長(정여벽파장) 우리정은 강물 되어 퍼져 가리라.


이에 소세양(蘇世讓)은 황진이의 시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다음과 같은 시로 보답을 하고

친구들과 사나이 약조(約條)을 저버린 채 그녀 곁에 더 머물렀다고 한다.


달빛 아래 소나무만이 푸르르고

눈에 덮인 한포기 꽃들은 고개를 떨구었구나.

강물은 하늘과 맞닿아 슬픈 줄을 모르고

쌓여가는 술은 그저 강물에 흘러갈 뿐

흐르는 강물은 나의 마음을 실어 보내주지 않고

저 멀리 절벽에서 살아남은 한포기 꽃은

아름다운 낙화를 보여 주는구나

내일아침 그녀를 보내고 나면

슬픔은 비가 되어 나의 몸을 짓누르리.


그들의 사랑이 얼마나 더 지속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나를 사람이 아니라 해도 좋다(吾爲非人也)'고 했던 장부의 철석간장(鐵石肝腸)도

'情意碧波長'에는 견디지 못했다.

소세양(蘇世讓)과 헤어진 후에도 황진이(黃眞伊)는 그리움에 찬 나날을 보냈다고 전한다.

그들은 헤어진 뒤에도 인편을 통해서 오랫동안 서찰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아래는 황진이(黃眞伊)가 소세양(蘇世讓)에게 보낸 또 하나의 시이다.


※蕭寥月夜思何事 - 황진이 作

蕭寥月夜思何事(소요월야사하사) 달밝은 밤에 그대는 누굴 생각 하세요?

寢宵轉輾夢似樣(침소전전몽사양) 잠이 들면 그대는 무슨 꿈 꾸시나요?

問君有時錄忘言(문군유시녹망언) 때로는 일기장에 내 얘기도 쓰시나요

此世緣分果信良(차세연분과신량) 나를 만나 행복 했나요? 나의 사랑을 믿나요?

悠悠憶君疑未盡(유유억군의미진) 그대 생각 하다보면 모든게 궁금해요.

日日念我幾許量(일일염아기허량) 하루중에서 내 생각 얼만큼 많이 하나요?

忙中要顧煩或喜(망중요고번혹희) 바쁠때 나를 돌아보라 하면 괴롭나요? 반갑나요?

喧喧如雀情如常(훤훤여작정여상) 참새처럼 떠들어도 여전히 귀여운가요?

悠悠憶君疑未盡(유유억군의미진) 그대 생각 하다보면 모든게 궁금해요.

日日念我幾許量(일일염아기허량) 하루중에서 내 생각 얼만큼 많이 하나요?

忙中要顧煩或喜(망중요고번혹희) 바쁠때 나를 돌아보라 하면 괴롭나요? 반갑나요?

喧喧如雀情如常(훤훤여작정여상) 참새처럼 떠들어도 여전히 귀여운가요?

※ 황진이가 동선이를 시켜 한양에 있는 소세양에게 전하게 했다는 漢詩

(7언율시) 소세양은 황진이가 유일하게 남자로 사랑했던 인물

☆ 소세양 (蘇世讓 1486∼1562(성종 17∼명종 17) 조선 전기 문신. 자는 언겸(彦謙),

호는 양곡(陽谷). 본관은 진주(晉州).

1504년(연산군 10) 진사가 되고 1509년(중종 4)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514년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하였고, 뒤에 직제학을 거쳐 사성이 되었다.

1521년 영접사(迎接使) 이행(李荇)의 종사관으로 명(明)나라 사신을 맞았고, 뒤에 왕자사부(王子師傅) 등을 지냈다.

1537년 형조·호조·병조·이조판서를 거쳐 우찬성이 되었고, 이듬해 성주사고(星州史庫)가

불타자 왕명으로 춘추관(春秋館)의 실록을 등사, 봉안하였다.

1545년(인종 1) 윤임(尹任) 일파의 탄핵으로 사직하였으나, 명종의 즉위 뒤 재기용되어

좌찬성을 지내다 사직하고 익산(益山)에 은퇴하였다. 문명이 높고 율시에 뛰어났다.

지은 책으로는 《양곡집》이 있다.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 알고 싶어요 ○○○ 이선희 노래

(황진이 원작 / 양인자 작사 / 김희갑 작곡)

달 밝은 밤에 그대는 누구를 생각하세요.

잠이 들면 그대는 무슨 꿈꾸시나요.

깊은 밤에 홀로 깨어 눈물 흘린 적 없나요

때로는 일기장에 내 얘기도 쓰시나요.

내가 많이 어여쁜가요. 진정 날 사랑하나요.

그대 생각 하다보면 모든 게 궁금해요


하루 중에서 내 생각 얼마큼 많이 하나요.

내가 정말 그대의 마음에 드시나요.

참새처럼 떠들어도 여전히 귀여운가요.

바쁠 때 전화해도 내 목소리 반갑나요.

나를 만나 행복했나요. 나의 사랑을 믿나요.

난 정말 알고 싶어요. 얘기를 해 주세요

※ 여류시인 양인자씨가 황진이 시를 번역해서 가사를 붙임
-옮겨온 글입니다.-

 
 

 

 
 
 

○○○ 술에 관한 옛시조 ○○○

잔들고 혼자 앉아 먼 뫼를 바라보니

그리운 님이 오다 반가움이 이러하랴

산은 말씀도 웃음도 없어도 못내 좋아 하노라

<윤선도>

청초 우거진 골에 자는 듯 누었는다

홍안은 어디 두고 백골만 묻혔는고

잔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슬허 하노라

<임 제 >

곡구롱 우는 소리에 낮잠 깨어 일어보니

작은아들 글 읽고 며늘아기 베 짜는데 어린손자 꽃놀이한다

마초아 지어미 술 거르며 맛보라고 하더라

<오경화 >

술을 취케 먹고 두렷이 앉았으니

억만 시름이 가노라 하직한다

아해야 잔 가득 부어라 시름 전송하리라

<정태화 >

엊그제 덜 괸 술을 질동이에 가득 붓고

설 데친 무우 나물 청국장 끼쳐 내니

세상에 육식자들이 이 맛을 어이 알리요

<김천택 >

청류벽에 배를 매고 백은탄에 그물 걸어

자님은 고기를 눈살 같이 회쳐 놓고

아희야 잔 자로 부어라 무진토록 먹으리라

<윤 유 >

술 깨어 일어 앉아 거문고를 희롱하니

창 밖에 섰는 학이 즐겨서 넘노는다

아해야 남은 술 부어라 흥이 다시 오노매라

<김성채 >

태백이 술 실러 가더니 달 지도록 아니 온다

오는 배 귄가 보니 거물 실은 어선이로다

아희야 잔 씻어 놓아라 하마 올 까 하노라

<작자 미상 >

적설이 다 녹도록 봄 소식을 모르더니

귀홍은 득의 천공 활이요 와류는 심생 수동요라

아이야 새술 걸러라 새봄맞이 하리라

<김수장 >

거문고 술 꽂아 놓고 호젓이 낮잠든 제

시문 견폐성에 반가운 벗 오도괴야

아해야 점심도 하려니와 외자 탁주 내어라

<김창업 >

도화는 흩날리고 녹음은 퍼져 온다

꾀꼬리 새노래는 연우에 구을거다

맞추어 잔 들어 권하랄 제 담장 가인 오도다

<안민영 >

앞내에 고기 낚고 뒷 매에 산채 캐어

아침밥 좋이 먹고 초당에 누웠으니

지어미 잠 깨워 이르되 술맛 보라 하더라

<작자미상>

재너머 성권농 집에 술 익단 말 어제 듣고

누운 소 발로 박차 언치 놓아 지즐 타고

아해야 네 권농 계시냐 정좌수 왔다 하여라

<정 철 >

벼슬을 저마다 하면 농부할 이 뉘 있으며

의원이 병 고치면 북망산이 저러 하랴

아해야 잔 가득 부어라 내 뜻대로 하리라

<김창업 >

꽃피면 달 생각하고 달 밝으면 술 생각하고

꽃피자 달 밝자 술 얻으면 벗 생각하네

언제면 꽃 아래 벗 데리고 완월장취 하려뇨

<이정보 >

자네 집에 술 익거든 부디 날 부르시소

내 집에 꽃피거든 나도 자네 청하옴세

백년 덧 시름 잊을 일 의논코자 하노라

<김 육 >

매아미 맵다 울고 쓰르라미 쓰다 우네

산채를 맵다든가 박주를 쓰다든가

우리는 초야에 묻혔으니 맵고 쓴 줄 몰라라.

<이정신 >

대추 볼 붉은 골에 밤은 어이 뜻 들으며

벼벤 그루에 게는 어이 내리는고

술익자 체장수 돌아가니 아니 먹고 어이하리

<황 희 >

주인이술 부으니 객을랑 노래하소

한잔 술 한 곡조씩 새도록 즐기다가

새거든 새 술 새 노래를 이어 놀려 하노라

<이상우 >

짚방석 내지마라 낙엽엔들 못 앉으랴

솔불 혀지마라 어제 진 달 돋아온다

아이야 박주산챌 망정 없다 말고 내어라

<한석봉 >

내 집에 술 익으면 매암을 부를테니

자네 집 꽃 피거든 배짱이 청하옴세

주야로 시름 잊을 일 권주간가 하노라

<石 >

공명이 그 무엇인가 욕된일 많으니라

三盃酒(삼배주)一曲琴(일곡금)으로 사업을 삼아두고

이 좋은 태평연월에 이리저리 늙어리라

<김천택 >

오늘이 무슨 날이 노부의 현고신이로다

술 빚고 벗 있는데 달이 더욱 아름다워

아희야 거문고 청쳐라 취코 놀려 하노라

<정내교 >

술이 몇 가지요 청주와 탁주로다

다 먹고 취할선정 청탁이 관계하랴

달 밝고 풍청한 밤이어니 아니 깬들 어떠리

<신 흠 >

☆☆☆ 將 進 酒 辭 ☆☆☆

-松江 鄭 澈-

한 盞 먹새 그려 또 한 盞 먹새 그려

곳 것거 算노코 無盡無盡 먹새 그려

이 몸 주근 後면 지게 우희 거적 더퍼 주리혀 매여가나

流蘇寶帳(유소보장)의 萬人이 우러네나

어욱새 속새 덥가나모 白楊수페 가기곳 가면

누른 해 흰 달 가는 비 굴근 눈 쇼쇼리 바람 불제 뉘 한 盞 먹쟈할고

하믈며 무덤우희 잔나비 파람 불 제 뉘우친들 엇디리.

 

 
 

 

 
 

☆☆☆ 술의 하늘에 뜬 별들 ☆☆☆

▩ 술과 풍류 ▩

세계 각 지역의 음식 문화가 다양하듯 술 마시는 습관도 각양각색이다.
옛날에는 술
이 귀한 음료였기 때문에 대개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하사하거나
주인이 객을 대접하
는데 쓰였을 것이다.
사회가 발달함에 따라 사교적인 모임이 늘어나 술은 어느 모임에
서나 음용되게 되었다.


우리나라와 인접한 중국과 일본의 음주 습관만 해도 매우 다르다.
일본 사람들은 술
자리에서 잔이 조금이라도 비면 항시 가득 채운다.
우리는 술잔이 완전히 비지 않은 상
태에서 술을 더 따르면 첨잔이라 해서 결례로 생각한다.
따라서 일본인들의 그런 습관
을 모르면 '야 이거 다 마시라는 것인가 보다'라고 착각하여
연거푸 마시다 술에 취해
버릴 수도 있다.


중국인들은 자주 '깐빠이(건배)'라고 하면서 술잔을 들었다 놓곤 한다.
술잔을 부딪히
면 다 마셔야 되고 술잔을 들었다 놓으면 자기가 마시고 싶은 대로 조금 마셔도 된다.

'깐빠이'했다 해서 무조건 다 마실 필요는 없다.
같은 동양이라 해도 술 권하는 습관이
다르다.


서양 사람들은 술을 권하는 데 있어서 동양 사람에 비해 인색하다.
첫잔을 권하기 전
에 꼭 뭘 마실 거냐고 물어 보고, 다음부터는 자기가 따라 마신다.
술집에는 라운드
(Round) 방식이 있는데 몇 명이 라운드에 든다하면 차례대로 한 사람씩
각 사람들이
원하는 술을 잔술로 사는 것이다.
우리네 풍습과는 너무 달라 어색하고, 그들이 쩨쩨하
게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음식을 권하는 인심이 매우 후하다.
술 권하는 인심도 마찬가지
다.
오히려 강제성이 많아 억지로 술을 마셔야 하는 경우가 많다.
서양 사람들은 그 반
대다.
그러나 역으로 생각해 보면 술 마시는 사람의 취향이나 컨디션을 존중하는 배려
가 깔려 있는 것 같다.


70년대 이장희의 노래 '한 잔의 술'이 유행하던 때에는
소위'노틀카(놓지도 말고 트림
도 하지 말고 술 마신 후 "카"하는 소리도 내지 말고 마시는 것)'가 유행하였다.
노래 가
사와 같이 '마시자 마셔 버리자'는 것이 술을 마시는 음주 풍경이다.
그리하여 70년대에
는 '꺾는다.'는 말이 유행을 했다.
꺾는다는 말은 잔을 들어서 손목을 꺾어(기울여) 입에
다 붓는다는 말이다.
즉 빨리 마시고 빨리 취하자는 뜻일 것이다.


80년대에는 폭탄주가 유행하였다.
70년대의 고도성장으로 경제적으로는 풍요로워졌
으나 정치적인 압제로 사람들이
내면의 스트레스를 표출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폭탄주는 맥주와 위스키를 섞어서 마시는 것인데 맥주 속의 탄산가스가
위벽을 자극하
여 알코올 흡수를 촉진하기 때문에 술이 급히 취한다.
그래서 한잔 푸러 가자는 말이
유행했다.
술을 마셔서 마음속의 답답함을 없애버리려 한 것이리라.


얼마 전에 20대 후반의 후배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야 빨러 가자."는 것이었
다.
나는 이 친구들이 혹시 대마초를 빨러 가자는 것인가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술 한잔하러 가자는 말이었다.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여성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 줄
어들면서 여성 음주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해서 그런지 말도 노골적으로 야해졌다.


말은 그 시대의 풍속을 반영한다.
따라서 말이 변천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래 한 30년간의 권주사의 변천을 보면 당시 사회 상황과 사람들의 내면을 엿볼 수 있을듯 싶다.

여보게 송암 한잔 드시게나. 그러시게, 청강도 한잔 드시게나.

한 100년 전 사랑방에서 술상을 놓고 친구끼리 마주 앉아 술을 권하는 말이었을 것이다.
이때는 자세를 꼿꼿이 하여 느릿느릿하게 마셨을 것이다.
어찌 보면 친구들끼리
격식을 너무 차려 딱딱한 듯도 하지만 여유가 있어 좋다.


음주와 풍류에 관해서 우리 선조들은 가난과 좌절 속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았고 자
연의 아름다움을 찬미하였다.
조선시대 시가 문학의 양대 거장인 송강 정철과 고산 윤
선도는 늘 음주를 즐겼는데 지나침이 없도록
스스로 경계하여 주도를 지켜 나갔다.
기에다가 훈훈한 인정을 실어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는다면 한층 술맛이 좋을 것이다.


※ 정철은 권주가에서

한잔 먹세 근여 또 한잔 먹세 근여 꽃 꺾어 산 놓고 무진 무진 먹세 근여라고 읊조린다.
얼핏 보면 주량에 관계없이 무진장 마시자는 것 같다.
그러나 자세히
내용을 보면 자기가 얼마나 마시는지 잔을 세면서(꽃 꺾어 산 놓고)
주량의 한도 내에
서 마시는 것을 알 수 있다.


※ 윤선도는 한 시조에서

술을 먹으려니와 덕 없으면 문란하고 춤도 추려니와 예 없으면 난잡하니
아마도 덕
예를 지키면 만수무강하리라. 라고 하였다.
윤선도는 일생을 통해 수많은 유배 생활을
했으나 마음은 늘 풍요로웠다.
그의 오우가, 어부사시사는 자연과 합일된 경지를 잘 나타내고 있다.
술 대함에 있어서나 놀이에 있어서나 조화와 질서를 지키면 더욱더 즐거우리라고 가르치고 있다.


우리는 좋은 선현을 갖고 있다.
그들의 음주 문화와 풍류를 되살린다면 술은 생활에
멋과 여유를 주는 활력소가 될 것이다.
평소 자주 차지 못하던 자연 속에서 술 한잔 곁
들이면 온갖 시름이 물러가고 한층 정감이 무르익는다.


여기에 돌, 바람, 풀, 나무, 물, 구름, 꽃, 정자 등을 완상하며
가까운 이들과 마음을
주고받는다면 풍류객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자기의 마음이 우주의 사물과 어
울려 생기고 흩어지는 것을 본다면 신선이 따로 없을 것이다.

※ 이태백

술의 하늘에 뜬 별을 헤아리노라면 자연히 이태백이 으뜸으로 꼽힌다.

그의 지기였던 두보는 그를 주중선이라 불렀으며, 이태백 스스로는 적선(지상에 귀향온 신선)으로 칭했다.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주선이었다.
술과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이태백의 아류로 생각하고 그의 경지를 동경하곤 했다.
그는 월하독작이란 시에
서 "석 잔이면 큰 도에 통하고 한말이면 자연과 어우러진다."라고 읊으며
취중의 호연
한 심정을 토로했다.


실로 이태백은 술과 자연을 즐겼으며 이를 노래했다.
그는 오강에서 뱃놀이 하던 중
술에 만취하여 물에 비친 달을 잡으려다 빠져 죽었다는 전설을 남길 정도였다.
이태백
의 시에서 절반은 술이 소재이다.
이러한 연고로 술에 만취하여 몸과 마음을 못 가누는
사람을 보고 주태백이라 일컫기도 한다.
그러나 이태백이 과연 그러한 사람이었을까?


이태백은 젊은 시절 도교에 귀의하여 신선도를 닦았으며 검술에도 달인이었다.
그는
벼슬길에 오르고자 많은 노력도 했다.
한때 현종과 양귀비가 노닐던 궁궐에 봉직하여
자기의 기개를 펴고자 했으나,
그는 한낱 궁정 시인으로만 취급 받아 벼슬에서 물러났
다.
그 후에도 그는 단념하지 않고 안록산의 난을 진압하는 데 참여하는 등 오탁한 현
실을 뛰어 넘고자 했다.
그는 정치적인 참여에 연관되어 임종 또한 유배지에서 맞게 된
다.
물론 위의 오강에서의 전설은 후인이 저어낸 우스갯소리이다.
이태백의 생은 인간
의 자유와 낭만을 현실 속에서 찾고자 부단히 노력했던 가장 인간다운 것이었다.


그는 유명한 장진주에서만고의 시름을 씻어 내리려 연거푸 삼백 항아리의 술을 마신다.고 읊었다.
인생의 유한함과 현실 속에서의 좌절을 달래기 위하여 술의 힘을 빌린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태백의 생애나 그의 시를 아무리 훑어보아도 그가 술에 의하여 정
신을 잃은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그는 술을 사랑했지 술의 노예로 전락한 적은 없었
을 것이다.


이태백의 시에 나오는 말이나 항아리라는 단위를 보고,
실제로 술독에 빠질 정도로
많이 마셔야 그런 경지를 맛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착각이다.
다만 정신이 그
렇게 활달해야 참된 술맛을 알 수 있다는 행간의 뜻을 음미할 일이다.

※ 김시습과 김삿갓

죽장에 삿갓 쓰고 방랑 삼천리 (중략)

술 한 잔과 시 한수로 떠나가는 김삿갓

한잔 마시고 마이크를 잡으면 술술 나오는 노래이다.
김삿갓은 구름과 같이 방방곡곡
을 돌아다녔으며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는 자유인이었다.
고금을 통해서 술을 마시는 가
장 큰 이유는 자유로워지고 싶은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술꾼들이 그를 영원
한 고참으로 여기는 것은 당연하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과거에 급제했던 김삿갓은 왜
방랑 시인이 되었을까?


김삿갓의 본명은 김병연으로서 그가 과거에 급제하고 벼슬에 나아가려던 차에
자기
조상을 자세히 알아볼 계기가 있었다.
이때 그는 자기가 홍경래의 난 때 항복한 선천
방어사 김일손의 손자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세상의 명리를 버리고 대 자유
의 길을 택했다.
각지를 돌아다니며 서민들에게는 웃음을 주고 틀린 세상을 풍자하며
시를 지어 주고 술을 얻어 마셨다.


최초의 한문 소설 '금오신화'를 지은 매월당 김시습은
쿠데타로 왕권을 탈취한 세조
에게 굽히지 않았다.
그는 금오산에 들어가 은둔 생활을 하다 스님이 되었다.
그는 승
복을 입고 각지를 주유하며 술을 마시고 시를 읊었다.
한때 술을 거나하게 먹고 거리를
지나가다가 당시 영의정인 정창손을 만났다.
그가 다짜고짜 "이 나쁜 놈아 네가 어찌
영의정이냐."고 소리치자 영의정은 혼비백산하여 사라졌다.
김시습의 곧은 절개는 부패
한 대감들을 두렵게 만들었다.
그는 달콤한 타협보다 자유롭고 불의에 지배받지 않는
주선의 길을 걸은 것이다.


14대 국회에 참여했던 이주일 씨는 퇴임 소감으로 "국회에서 진짜 코미디를 많이 배웠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바른 것보다는 이익을 따라 이합집산 하는 정치인들의 우스
꽝스런 골을 잘도 지적했다.
요새 술판에는 씹어야 할 안주가 너무 많아 탈이다.

새삼 김삿갓과 매월당이 그리워진다.
비록 술에 취해 방랑하더라도 굽히지 않는 지조
로 언제나 바른말로 불의와 맞서며
서민들에게는 웃음을 선사했던 선배들을 우러르고
싶다.

※ 정수동

조선 후기 기인 중에 정수동이 있다.
그는 재주가 뛰어나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
다.
추사 김정희는 수동의 총기를 기특히 여겨 자기가 아끼는 서책을 주었다.
수동은
책들을 다 통달하고는 어디론지 자취를 감추었다.
그는 마치 물과 같이 세상에 매달림
없이 살았다.
그는 술을 좋아했고 어디서나 거침없이 말을 했는데 잘못된 일은 사정 없
이 질타했다.


정수동이 하루는 아는 사람 집에 들렀다. 주인은 소실을 시켜 술상을 내왔다.
그 집
의 크기와 비교하면 술상은 너무 보잘것없었다.
더구나 술잔은 도토리 껍질만 했다. 수
동은 별안간 큰소리로 통곡을 했다.
주인은 깜짝 놀라 물었다. "무슨 변고 있소?" 그러
자 수동은 울음을 딱 그치고 말했다.
"우리 형님 생각이 나서 그러오. 형님도 나처럼
친구네 집에서 술을 마시다 술잔이 작아
그만 목구멍에 걸려 돌아가셨소." 주인은 눈치
를 채고 사발을 내왔다.
수동은 사발로 술을 마신 후 껄껄 웃으며 말했다. "진작 그래
야지 술잔만이라도 커야 하지 않겠소?"


한번은 대감 조두순이 여러 대신과 재사들을 모아 놓고 연회를 베풀었다.
술이 몇 순
배를 돌아 거나해졌다.
이야기가 돌다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무엇이겠노?"라는
화제에 이르렀다.
어떤 이는 '호랑이가 무섭다' 어떤 사람은 '역적이 무섭다'고 한마디씩
했다.
수동은 "이 사람은 호랑이를 탄 양반 도둑이 무섭습니다."라고 말했다.
좌중의 분
위기는 갑자기 싸늘해졌다.
벼슬 높은 양반들이 뇌물 도둑질하는 것을 비꼬았기 때문
이었다.


당대의 세도가인 김홍근 대감은 평소 수동의 기상천외한 재주에 그를 아꼈다.
그러나
수동은 별로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어느 해 세모에 김대감은 수동의 집에 선물과 함
께 술과 안주를 보냈다.
짐을 나르던 하인이 수동과 마주쳐 사유를 말했다.
수동은 다
짜고짜로 길바닥에 물건들을 펴놓고 하인과 행인들을 불러 권커니 잣거니 술을 마셨다.

하인은 겁이 덜컥 났다. 수동은 아랑곳없이 술을 선물에 뿌리며
"이 재물은 부정한 것
이니 술로 씻어야 해."라고 했다.
하인을 돌려보낸 후 마침내 대취하여 물건을 버린 채
가버렸다.


오늘날 수동이 있다면 정치가들의 집골목에는 술 냄새가 진동하지 않을까?
씻어야
할 재물이 한도 없으니... 술꾼들이여 대 선배 수동에게 텅 빈 충만의 주도를 배우라.

※ 도연명

전원이 황폐해지니 어찌 돌아가지 않으리

(중 략) 지난날의 벼슬살이가 잘못이었음을 이제 깊이 깨달았노라...

그 유명한 도연명의 귀거래사이다.
도연명은 가족들의 가난을 구제하고자 벼슬길에
올랐으나 당시의 관리들이 부정한 것을 개탄하고
10여 년 간 출사와 퇴임을 거듭했다.

그는 마침내 관리들과 결별을 하고 다시는 벼슬에 나가지 않았다.


가난해도 농사일을 하면서 천성을 바르게 지키는 것이 바른 삶이라고 깨달았기 때문이다.
오탁한 난세의 출세를 버리고 향리에 돌아가 자연의 섭리대로 산 선인 도연명은

애주가들에게 참된 삶과 주도에 대하여 많은 것을 시사한다.


도연명은 본시 술을 즐겨 누가 술을 권하여 부르면 사양하지 않고 갔으나 취하면 홀연히 사라졌다 한다.
그의 시에는 거의 대부분 술이 등장한다.
그는 초탈한 경지를 스
스로 즐겼다.
그의 음주 후 심경은 다음의 시에 잘 나타나 있다.


마을의 옛 친구들 나를 반겨 술병 들고 찾아왔네.

소나무 아래서 자리 잡고 마시니 어느덧 술기운 올라 취하네.

서로 격의 없이 떠들며 술잔을 돌리며 어울리니

스스로 존재조차 의식 못하고 더욱 명리 귀한 줄 모르노라

유연히 아득한 경지에 드니 술 속에 삶의 참뜻이 있더라.

그는 인생의 유한함과 명예와 재물의 덧없음을 노래했다.
그는 혼자서도 술을 즐겨
마셨다.
달빛 아래 비친 자기의 그림자와 대화를 나누고
현실의 자기와 이상적인 자기
를 대비시키고 둘이 합일하기를 꾀했다.
그의 은둔 생활은 현실 도피가 아니었다.
단지
자기의 가치관을 일관되게 관철한 것뿐이었다.
그의 또 다른 시에서는 "자기가 죽은 후

에 초상을 치르거나 제사를 지낼 때 상에 제물과 술을 놓고 사람들이 모여 있는 광경을 그려 놓고
그때는 이미 술을 보고도 못 마실 테니 후회되지 않도록 평소 음주를 즐
기리라" 할 정도로
현실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요즘 공직을 남용해서 각종 비리를 저지른 사례가 미간을 찌푸리게 한다.
그러나 그
끝이 얼마나 허무한가를 여실히 알 수 있다.
술 한 잔으로 허욕을 씻고 청정한 자아를
회복할 수 있다면 도연명의 후예라 할 수 있지 않으랴!

※ 로버트 번즈

헤어짐이 있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불려지는 구성진 노래 올드 랭 사인.


오랫동안 사귀었던, 정든 내 친구여

잊어야만 하는 건가 우리 옛날을 (중략)

그 옛날을 위해서, 나의 친구여

멀리 흘러간 옛날을 위해

우린 항상 다정히 잔을 들리라

멀리 사라진 옛날을 위해


이 시는 스코틀랜드의 민족 시인인 로버트 번즈의 생애를 그대로 담고 있다.
18세기
영국의 시단은 시어가 정형화되어 대부분의 시가 진부하였다.
이때 스코틀랜드 방언으
로 쓴 로버트 번즈의 시는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술을 좋아하였으며 위스키를 스코틀랜드의 나라 술로 만드는데 많은 기여를 하였다.
스코틀랜드 각지를 고루 다니면서 시를 짓고 술을 마셨다.
그의 시에는 서민적이
고 민족적인 것이 총망라되어 있다.
어떤 농부의 장날 술주정 이야기, 부도덕한 목사,
악덕 지주,
시골 처녀 총각의 사랑 등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번즈의 시를 읽노라면 내용이 한국의 이야기인지 스코틀랜드 이야기인지 모를 정도이다.
옛날 한국의 농촌에서 일어났던 일과 똑같은 상황을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집집마다 보리농사를 지었던 옛 시절, 처녀 총각들이 보리밭에 숨어서
밤새도록 속
삭인 사랑 이야기 '금빛 보리 이랑'은 우리나라에서도 흔한 일이었다.
촌로들의 이야기
속에서 도깨비와 씨름한 일(오 탬샌더)이 스코틀랜드에서도 일어났다니
재미있는 일이
다.

그가 표현한 음주의 즐거움은 다음의 시에 나타나 있다.

축복의 한잔이여/

활기의 근원이여/

어떠한 공부보다도/

위트에 불을 붙이고/

지혜를 다져 주네/

위스키 한잔이면/

시름이 오간 데 없네./

걱정 말게나 만취할 일 없으니/

우리의 관념을 간질이게나/

밤이고 낮이고

그는 식구가 많은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가족 부양에 삶의 뼈저린 아픔과 몇 차례의 실연도 겪었다.
그러나 그의 시는 낭만과 여유가 있었으니 술은 그의 시름을 승화
시키는 활력소였다.

현자여 눈을 감으라./

철학적 냄새를 거두고/

위스키의 이름을 그리스어로 말해 보려무나/

'생명의 술'이 아니던가/

스코틀랜드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여/ (중략)/

자유와 위스키는 함께 하나니/

꿈을 향해 용솟음 칠지니.

그는 당시 산업혁명으로 사라져 가는 스코틀랜드 민요와 설화를 낱낱이 조사하여
구와 함께 민요집을 펴내면서 스코틀랜드인의 생활에 깊이 박혀 있는 위스키 문화를 찬양했다.


스코틀랜드인들은 이 낭만 시인을 로비 번즈라는 애칭으로 부르며 잉글랜드인들이

워즈 워스를 기리는 것 이상으로 번즈를 사랑하고 있다.
오늘날에도 매년 1월 15일 밤
에는 친지들이 모여 로버트 번즈의 생일을 기린다.
스코틀랜드 민속 명절인 번즈 나이
트(Burn's Night)는 사람들이 다음 내용의
로비 번즈의 '셀커크 그레이스'를 암송하면
서 시작된다.

가진 게 있는 이는 먹을 수 없고

먹을 수 있는 이는 가진 게 없네.

우리는 맛있게 음식을 나누노니

신의 은총이 여기에 있네.

이날 밤에는 위스키를 건배하고 스코틀랜드 전통 음식인 하기스를 들며
밤이 늦도록
대화와 노래를 한다.
한 잔의 위스키를 마시며 인생의 고뇌와 사랑, 낭만과 그리움을
노래한 로비 번즈는
영원히 스코틀랜드인들의 가슴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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