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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mmensita (눈물 속에 피는 꽃) & 웅산의 재즈 스토리

淸山에 2011. 3. 15. 12:08
 

 

 
 


 

 

 

 

 
 
 
웅산의 재즈 스토리
 

*드럼과 콘트라베이스의 농익은 화음 사이로 허스키한 중저음 보이스가 안개처럼 섞여든다. 목소리의 농담(濃淡)에 따라 달콤함과 농염함을 넘나드는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운 표면 속에 쓰디쓴 술을 감춘 ‘위스키 봉봉’처럼 매혹적이다. 비구니의 꿈을 안고 절에 들어갔던 열여덟, 록 음악으로 점철된 뜨거운 청춘, 그리고 매혹적인 보이스의 재즈 디바가 되기까지, 재즈처럼 즉흥적이고 자유로웠던 그녀 인생의 결정적 장면들을 공개한다. 
 
 
 
 
scene #1 비구니, 록커, 재즈보컬리스트


“웅산이요? ‘클 웅(雄)’에 ‘뫼 산(山)’. 큰 산이라는 뜻이에요. 예전에 절에 있을 때 얻은 법명이죠. 아시다시피 제가 비구니가 되려고 했었잖아요. 인터뷰할 때 가장 많이 나오는 얘기가 비구니에요. 절에 들어가지 않았었다면 과연 저한테 뭘 물어보셨을지 의심스러울 정도라니까요. 하하.” 별 일 아니라는 듯 그녀가 자연스레 출가 얘기를 꺼냈다. 아는 사람들은 다들 아는 얘기지만 한 번 더. 웅산은 한때 절에 몸을 의탁했던 경력이 있다. 덕분에 ‘불자 가수’니, ‘비구니 출신 재즈 싱어’니 하는 종교색 짙은 칭호가 따라다니기도 하지만 그녀는 별로 개의치 않는 눈치다. 아니, 오히려 그때의 다짐을 잊지 않으려는 듯 웅산이라는 법명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지 않은가.

독실한 불교 가정에서 자란 그녀는 고교시절, 혈혈단신 비구니의 꿈을 안고 충북 단양의 구인사를 찾았다. 김은영이라는 본명을 버리고 ‘웅산’이라는 법명으로 수행하기를 1년 반. 그러던 어느 날 참선 도중 깜빡 잠이든 그녀의 어깨 위로 큰 스님의 매서운 죽비가 내리꽂혔다. 순간, 입에서 외워야 할 염불 대신 “여보세요, 거기 누구 없소~”로 시작되는 한영애의 노래가 튀어나왔다.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지만 돌이켜보면 수행 중에도 틈틈이 노래를 흥얼대던 그녀였다. 지금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은 염불이 아니라 노래라는 것을 깨달은 웅산은 이튿날 미련 없이 절을 나섰다. 처음 출가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단칼에 내린 결정이었다.

그렇게 다시 세간으로 돌아온 그녀는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 들어갔고, 학내 록 밴드 ‘돌핀스’의 보컬로 활약하며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했다.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헤비메탈과 데스메탈을 소화하는 그녀에게 학우들은 ‘제니스 조플린’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그렇게 징징대는 디스토션 사운드 속에 파묻혀 청춘의 한 페이지를 보냈건만, 졸업할 무렵이 되자 누구도 여성 헤비메탈 뮤지션 따위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현실 속의 록커는 잠시 길을 잃었고, 실의와 방황의 날들이 이어졌다. 그러던 중 친구가 우연히 건네준 빌리 홀리데이 음반을 통해 그녀는 재즈와의 운명적인 사랑에 빠져들게 된다. “화려하고 꽉 찬 록 사운드에만 익숙해져 있다가 재즈를 듣는데, 피아노 한 대 달랑 놓고 노래하는 그녀가 너무 멋져보이 거예요. 빌리의 노래를 듣자마자 곧장 남대문으로 달려가서 까만 벨벳 드레스를 샀어요. 재즈 가수라면 으레 그런 옷을 입어야 한다고 생각했나 봐요. 하하하. 그걸 입고 혼자 거울 앞에 서보기도 하고, 노래도 불러보고…. 그러다가 문득 결심했죠. 빌리 홀리데이 같은 재즈보컬리스트가 되자고.”


scene #2 한국 그리고 일본

그러나 독학으로 달려든 재즈는 벨벳 드레스의 낭만과는 거리가 멀었다. 웅산이 처음 재즈를 시작한 90년대 중반은 학원은커녕 전문서적조차 제대로 번역되지 않던 시기. 딱히 참고할 책도, 물어볼 사람도 없던 그녀는 낮에는 레코드 가게를, 밤에는 다섯 개 남짓했던 재즈 클럽을 전전하며 눈으로 귀로 야금야금 재즈를 익혔다. 그렇게 타는 목마름을 홀로 해갈하던 그때 운명 같은 스승이 나타났으니, 대한민국 재즈 1세대라 불리는 피아니스트 신관웅과 퍼커셔니스트 류복성이 그들이다. 밤마다 클럽에서 죽치고 있는 이 묘령의 여인(?)을 수상히 여긴 그들은 그녀에게 노래를 청했고, 웅산은 즉석에서 얼떨결에 오디션을 치렀다. “반주도 없이 부르는데 어찌나 떨리던지… 너무 창피해서 그냥 있는 힘껏 불렀어요. 재즈를 거의 록처럼 불렀다니까요. 근데 노래를 다 들으시더니 절더러 같이 공연을 해보자고 그러시는 거예요. 완전히 아마추어였던 제가 하루아침에 재즈 고수들과 한 무대에 서게 된 거죠.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 애가 뭐 좀 해보겠다고 버둥대는 모습이 선생님들 눈에는 마냥 기특해 보였던 것 같아요.” 이후의 날들을 두고 그녀는 ‘입시생보다 더 고되게 공부했던 시기’라고 회고한다.

갑작스레 프로들과 공연을 하려니 매일 매일이 하드트레이닝이었다고. 하루에 서너 시간씩 자면서 이론을 공부하고, 가사를 외우고, 노래를 연습하는 날들이 계속됐다. 내로라하는 재즈 뮤지션들과 함께 무대에 오르고 레퍼토리를 쌓으며, 그녀는 그렇게 점차 프로로 거듭났다. 그러기를 2년. 일본으로 서서히 활동 범위를 넓혀가던 웅산 앞에 마침맞게 기회가 찾아왔다. 일본의 한 프로듀서가 앨범 발매를 권유해온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깊은 슬럼프의 시작이 될 줄이야. “일본에서 가진 첫 무대가 아직도 생생해요. 작은 규모의 재즈 클럽이었는데, 출연진 리스트를 보니까 저랑 베이스, 색소폰이 전부더라고요. 아직 멤버가 다 정해지지 않았나보다 했죠. 리허설 시간이 다 됐는데 세상에, 여전히 세 명 밖에 없는 거예요. 알고 보니 멤버는 이게 전부고 저 혼자 2시간 동안 공연을 이끌어야 한다고 하더군요. 결과는 참혹했죠. 그 후로 엄청난 슬럼프에 빠졌어요.”

공연 중간에 등장해 두 세곡 정도 부르고 멋지게 퇴장하는 사람. 이것이 그때까지 그녀가 알고 있던 재즈 보컬의 역할이었다. 게다가 퀸텟(5중주) 혹은 쿼텟(4중주) 이하의 편성은 상상도 못해본 그녀다. 한국에서 나름의 재능을 인정받으며 탄탄대로를 걷던 웅산은 다시금 바닥으로 추락했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거다. 부러 좌절하기 위해 일본을 드나들기 시작한 것은. 2003년 한•일 양국에서 첫 데뷔앨범 <Love Letter>를 발표한 후, 그녀는 한국에서 입지가 다져졌다 싶으면 어김없이 일본으로 건너가 슬럼프에 빠져들기를 반복했다. 세계 최고의 뮤지션들이 운집해있는 일본은 그 자체로 너무나 훌륭한 스승이었던 까닭이다. 이후 웅산은 국내에서 <The Blues>, <Yesterday>, <Fall In Love>를 차례로 발표하는 동안 일본에서도 부지런히 정규앨범을 발표하며 1년에 한번 꼴로 통산 6장의 앨범을 토해냈다. 한국에서 자신만의 완벽한 스타일을 정립했다는 찬사와 함께 ‘재즈 스타일리스트’라는 칭호를 부여받은 한편 일본에서는 ‘웅사마’라는 다소 남성적인(?) 애칭을 얻으며 한국인 최초로 블루노트 무대에 서기도 했다.

scene #3 지금 이 순간

“드레스를 발로 툭툭 차며 계단 위를 오르는 순간, 무대 위에서 관객들과 처음으로 마주하는 순간, 처음 전주가 흘러나오는 순간… 매번 겪는 순간들이지만 그때마다 가슴이 울컥울컥해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내 음악을 들으러 왔구나, 내 노래가 저들에게 어떤 위로가 될 수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하면 너무나 감사하죠.” 그녀 인생의 결정적 장면을 하나 더 추가한다면 아마도 ‘지금 이 순간’이 아닐까. 중저음의 농염한 보이스와 카리스마 넘치는 무대 매너, 스탠더드 재즈부터 블루스, 국악, 가요까지 전 장르를 아우르는 특유의 자유로운 창법은 대중들로 하여금 그녀를 나윤선, 말로와 함께 국내 3대 재즈보컬리스트 중 한명으로 불리게 했다. 그리고 얼마 전, 웅산의 신보 <Miss Mister>가 발매됐다. 한국 팬들만을 위해 마련된 ‘스페셜 기프트 앨범’으로, 그동안의 정규 음반들과 달리 대부분 한국어로 된 자작곡
중심으로 채워진 것이 특징이다. 그중에서도 2번 트랙 ‘지독한 사랑’이 유난히 귀에 들어온다. 대중가요라고 해도 무방할 정통 발라드곡이 묵직한 재즈 넘버들 틈에 살짝 끼어들어 있는 것. “작곡가에게 저를 보고 떠오르는 멜로디를 그려달라고 했더니 이 곡을 가져오셨어요. 전 좀 펑키한 스타일의 곡이 나올 줄 알았는데 말이에요. 그분 말씀이 자기가 보는 웅산은 한없이 여리고 여성스러운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허스키한 목소리가 주는 관능적인 이미지 때문일까. 겉보기엔 집시 여인처럼 단단한 성품을 지녔을 것만 같은 그녀지만, 그녀의 음악을 조금이라도 집중해서 들어본 사람이라면 ‘한없이 여리고 여성스러운 사람’이라는 표현에 동감의 미소를 보냈을 것이다. 웅산은 매 앨범마다  ‘Call Me’, ‘Yesterday’ 같이 나긋나긋하고 멜랑콜리한 노래를 한 두곡씩 삽입해왔다. 대부분 순종적이고 헌신적인 여자의 사랑을 노래한 곡들이다. 불자인 그녀는 빼앗고 쟁취하는 남녀 간의 사랑보다는 만인을 보듬어줄 수 있는 ‘큰 사랑’에 더 마음이 간단다. 그래서 자신의 노래가 더 많은 사람들을 안아주고 위로해 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시간이 남을 때는 주로 뭘 하시는 편이세요?” 별 기대 없이 던진 마지막 질문이었는데 의외로 속이 꽉 찬 대답이 돌아온다. “시집 읽는 거 좋아해요. 최근에는 김선우 시인의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라는 책을 봤는데 너무 좋더라고요. 얼굴은 꼭 고등학교 수학 선생님처럼 생겼는데 글은 엄청 세고 강해요. 어떤 때는 부드러웠다가, 또 어떤 때는 굉장히 자극적이었다가, 아주 변화무쌍하죠. 이런 책들을 만날 때면 가끔은 시인을 꿈꾸기도 해요. 작곡을 하다 보니 글쓰기에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이러다 시인하겠다고 또 덜컥 음악을 그만두는 건 아닌지. 아니, 그녀라면 어느 날 갑자기 다시 절에 들어갈 수도 있을 것만 같다. 이 같은 에디터의 우려에 웅산이 깔깔대며 맞장구를 친다. 자기는 내일이라도 당장 네팔의 어느 높은 산 위에 벌렁 드러누워 있을 수도 있다며. 마음 동하는 데로 거침없이 인생을 핸들링하는 그녀의 삶은 변덕스러운 재즈 선율을 닮아있다. 그리고 웅산은 오늘도 재즈처럼, 그렇게 생의 결정적 장면을 만들어간다. 자유롭게, 즉흥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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