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정원 조선 왕릉①]
지상에서 영원으로 聖과 俗이 숨쉬는 공간
이창환 상지영서대 조경학과 교수 55hansong@naver.com
한양에서 10리 밖, 100리 안에 자리잡은 조선 왕릉의 분포 현황.(바탕화면: http.goole. com 인터넷판) 1.건원릉(健元陵) 2.정릉(貞陵) 3.헌릉(獻陵) 4.영릉(英陵) 5.현릉(顯陵) 6.장릉(莊陵) 7.사릉(思陵) 8.광릉(光陵) 9.경릉(敬陵) 10.창릉(昌陵) 11.공릉(恭陵) 12.선릉(宣陵) 13.순릉(順陵) 14.연산군묘(燕山君墓) 15.정릉(靖陵) 16.온릉(溫陵) 17.희릉(禧陵) 18.태릉(泰陵) 19.효릉(孝陵) 20.강릉(康陵) 21.목릉(穆陵) 22.광해군묘(光海君墓) 23.장릉(章陵) 24.장릉(長陵) 25.휘릉(徽陵) 26.영릉(寧陵) 27.숭릉(崇陵) 28.명릉(明陵) 29.익릉(翼陵) 30.의릉(懿陵) 31.혜릉(惠陵) 32.원릉(元陵) 33.홍릉(弘陵) 34.영릉(永陵) 35.융릉(隆陵) 36.건릉(健陵) 37.인릉(仁陵) 38.수릉(綏陵) 39.경릉(景陵) 40.예릉(睿陵) 41.홍릉(洪陵) 42.유릉(裕陵)
1408년 음력 5월24일, 서울에 많은 비가 내렸다. 새벽 파루(야간통행금지 해제 때 서른세 번 타종하는 것)에 태상왕 이성계는 가래가 심해져 태종이 급히 달려와 청심원을 드렸으나 삼키지 못하고 눈을 들어 두 번 쳐다보고는 창덕궁 별궁에서 74세를 일기로 승하했다. 이날을 양력으로 계산하면 6월27일이다.
601년 후. 2009년 6월27일 새벽 1시30분(한국 시각), 스페인의 역사도시 세비야에서 조선 왕릉 40기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6월21일부터 7월3일까지 열린 제33차 세계유산대회(World Heritage Committee) 기간 중 태조가 승하한 바로 그날 그 시각, 그의 후대 왕과 왕비의 유택이 모두 세계유산이 된 것이다. 우연치고는 대단한 우연이다. 이런 것을 두고 하늘의 뜻이라고 하는 걸까?
6월27일 오후 동구릉 건원릉에서 태조 승하 601주기 기신제(매년 후손들이 치르는 제사)가 황세손 이원(李源) 씨를 초헌관으로 거행됐다. 601년 전과 달리 쾌청했다. 조선 왕릉은 탁월하고 보편적인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를 인정받아, 세계인이 함께 보존하고 향유해야 할 우리 민족의 중요한 문화유산이 됐다. 세계유산에 등재되려면 잠정등록, 등재를 위한 학술연구, 등재신청서 작성,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실사, 세계유산대회 등의 과정을 거친다. 필자는 십수 년 조선 왕릉을 연구해온 덕에 운 좋게 이 모든 과정에 참여할 수 있었다. 이제 ‘신의 정원’ 조선 왕릉의 내밀한 세계로 독자들을 안내하고자 한다.
동서고금 가장 완벽한 형태의 무덤 유산
조선시대 능원은 1392년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한 이래 500여 년 동안 지속적으로 조영된 무덤 유산이다. 27대에 이르는 왕과 왕비, 추존왕 등 42기의 능(陵)이 남아 있으나 조선 초기의 능인 제릉(齊陵)과 후릉(厚陵)은 북한 개성에 있고, 폐왕이 된 연산군·광해군의 묘는 이번에 세계문화유산 등재에서 제외됐다.
5000여 년의 역사에서 조선시대는 우리 민족의 성립기이며 문화의 완성기다. 이때 조성된 궁궐과 왕릉은 대표적인 한국의 문화유산이다. 특히 조선 왕릉은 518년 동안 왕실이 철저히 관리했고, 일제강점기를 거쳐 현재까지도 국가에서 관리해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하다. 따라서 조선 왕릉은 현존하는 능원 가운데 가장 완전한 형태를 갖춘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조선 왕릉은 유교의 이념에 따라 능역 공간의 크기, 문·무석과 석물, 기타 시설물의 형태와 배치를 달리해 예술성을 높였다. 조선시대 최고의 장인들이 만들어낸 1500여 개 석조물은 지상 최대의 조각공원을 유산으로 남겼다. 아울러 당대의 조영 내용을 기록한 각종 의궤와 능지가 있어 보존과 관리에 진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 또한 높이 평가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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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역사성 외에도 조선의 통치철학인 유교에 근거한 공간의 배치와 자연친화적인 곡선미 등 능원의 형태와 봉분의 조영 방식에서 독특한 한국의 미(美)를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조선 왕릉은 한국인의 자연관과 세계관에 따라 조영된 문화유산으로, 비슷한 시기 타 유교문화권의 왕릉들과 비교해도 독보적인 길례(吉禮)의 공간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린벨트의 기원이 된 능역
왕릉은 경복궁을 중심으로 10리(4km) 밖, 100리(40km) 안에 조영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능지가 결정되면 수십에서 수백만 평의 능역에 선왕의 유택만 두고 사가의 무덤과 마을을 이전하고 녹지를 철저히 보존하고 관리했다. 덕분에 능역 주변의 녹지가 잘 보전돼 오늘날 그린벨트의 근간이 됐고 왕릉 숲은 현재의 광릉수목원, 홍릉수목원 등 도시 숲이 형성되는 역사적 배경이 되기도 했다.
능원은 산의 능선이 겹겹이 둘러싸고 있어 마치 꽃잎에 싸인 꽃심처럼 보인다. 이처럼 중층적인 공간에서 왕릉은 외부와 분리돼 폐쇄성과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능침(봉분)만큼은 시계가 넓게 확보되는 곳에 자리잡는다. 즉 주종산(主宗山)을 뒤로하고 좌우가 주종산보다 낮은 산록으로 둘러싸이며 앞이 트인 지형에 있다.
능침 앞으로 좌청룡 산, 우백호 산의 능선이 감싸고 내려와서 입구에 가까워질수록 산세가 좁아진다. 만약 지형적으로 입구가 오므라들지 않는 곳이라면 별도로 비보림(樹林)과 연못(蓮池)을 조성하기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