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하착(放下着)
버리라 이 제목에 들어 있는 착(著)은 어조사(語助辭)로 뜻이 없습니다. 명령형인 "방하(放下)"를 강화하기 위한 글자로 의미상으로는 제로입니다. "방하"란 "버리라!"는 뜻입니다. 석존께서는 29세 때에 사회적인 지위도 처자도 버리고 고행(苦行)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러나 35세 때에 이 고행도 버립니다. 그것은, 괴로움과 즐거움, 미망(迷妄)과 깨달음의 대립 관념 위에 선 고행의 상대적인 지식을 버린 것입니다. 자기와 타인의 구별을 초월한 수행이 보리수 아래서의 좌선이었습니다. 어느 소설가는 "지식에 치중하면 모가 나고, 정에 매이면 걷잡을 수 없으며, 의지를 관통하려면 답답하다"고 했는데, 이 상대적인 것을 버리지 않으면 마음의 자유는 얻을 수 없습니다. 옛날 중국의 엄존자(嚴尊者)라는 수행자가 조주(趙州)스님(779-897)에게 "모든 것을 버리고 손에 아무것도 없을 때에는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조주 스님은 대답했습니다. "버려야 하네." 그래서 엄존자는 버리라고 하자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은데 하고 "모든 것을 버렸는데 더 무엇을 버리란 말입니까?"하고 반문했습니다. 그러자 조주는 "그렇다면 그것을 버리고 가게"하고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다는 의식 자체를 버리라"는 뜻입니다. 선자는 이것을 알기쉬운 말로 "짐을 메고 있어서는 안 된다."고 타일렀습니다. 어느 시인은 "무거운 짐을 앞뒤에 메었나니"하고 노래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어떤 짐을 메고 있습니다. 명함의 직함은 그 사람의 짐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 직함을 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나는 쓸모없는 변변치 못한 사람입니다"하고 겸손한 태도를 취합니다. 그러나 이 말에는 꼬리가 보입니다. 선자(禪者)는 이것을 자기 비하(卑下)의 교만이라고 말합니다. 비하라는 이름의 교만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주 스님이 버리라고 거듭 말한 까닭은 여기 있습니다. 직함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그 유무(有無)에 구애되지 않는 것이 버리는 것입니다. 인생은 나그네길입니다. 여행에는 으레 짐이 있게 마련입니다. 우리가 일생 동안에 계속해서 만들어낸 몸과 입과 마음의 짐은 좋든 나쁘든 인생의 종착역까지 자기가 짊어져야 합니다. 아무도 분담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모셔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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