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정치.사회/파헤친 歷史

朴正熙와 청와대를 도청한 미국

淸山에 2011. 2. 24. 12:39
 

 

 
 
 
朴正熙와 청와대를 도청한 미국  
 
 
 집무실 창문에 도청방지장치를 달았다. 
趙甲濟   
 
 1970년대, 서울시청은, 美 대사관이 한국일보 맞은편에 있는 직원관사촌에 건물을 신축하려고 하자 건축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한국지부 직원들은 사석에서 『우리가 청와대 도청을 꼭 하고 싶다면 그런 방법
(건물신축에 의한 시설)으로 하겠느냐』고 냉소하기도 했다.
 
  문제의 발단은 1970년 가을 청와대에서 있었던 밀담내용을 미국 정부기관이 어떻게 알아냈느냐 하는 점이었다. 이 회담은 朴正熙 대통령이 주재했고, 고위 청와대 간부들이 참석했다. 밀담의 주제는 대미(對美)로비활동 채널을 朴東宣씨 아래로 일원화하려는 계획이었다. 이 밀담의 내용은 미국 언론의 보도 이후 미국정부에 의해
 美 하원 국제관계 소위원회에 제출됐다. 미국정부는 이 정보의 원천을 밝히지 않았다.
 
  美정부의 자료는 청와대 1차 밀담에서 토의된 로비계획이 2차 밀담에선 보류된 과정도 자세히 담고 있었다. 청와대 도청설을, 76년10월15일자 워싱턴 포스트지에 특종으로 보도한 것은 사교란 담당의 맹렬 여기자 맥신 체사이어씨였다. 체사이어 기자는 朴東宣씨에 관한 정보를, 미국 정부가 청와대와 駐美 한국대사관 내부에 있는 정보원(源)으로부터 빼냈다고 보도했다. 이 정보원(源)은 첩자, 도청장치, 또는 전파감청 등을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체사이어 기자는 취재기에서 이 사실을 전직 국무성 관리에게 확인했다고 썼다. 이 관리의 이름은 밝히지 않았으나 한국 담당관이었음은 인정했다. 국무성 한국과장을 지내고 70년대 초에 퇴직한 도널드 레이나드씨가,
체사이어 기자가 말하는 확인자란 추측도 있었다.
 
  1978년 4월3일 미국 CBS방송은 윌리엄 포터 前 주한미국대사와의 인터뷰를 소개했다. 포터씨는 『미국정부가 청와대에 도청장치를 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내가 부임하기 전에 그것(필자 주:도청장치를 의미)이 중단됐다는 보고를 들었습니다. 나는 그것을 새로 가동시키지 말라는 특별지시를 내렸습니다』 포터대사의 이 실토는 그 전해인 1977년8월10일에 터너 CIA부장이 워싱턴 포스트지 기자에게 했다는 말과
상충되고 있다. 터너는 『청와대에는 녹음테이프나 도청장치가 없었다. 나는 CIA, NSA, 그리고 다른 모든
미국 정보기관을 대표하여 이야기하는 것이다』고 했었다.
 
  포터 대사가 한국에 부임한 것은 67년8월9일이었다. 포터 대사와 터너부장의 말을 『67년 이전엔 도청장치가 있었으나 그때(1970년 가을)는 도청장치가 없었다』는 뜻으로 해석한다면 두 사람의 증언은 상충되지 않게 된다. 적어도 포터대사의 증언을 믿지 않을 이유는 없다. 그렇다면 67년 이전에 CIA한국지부장으로 부임했던 넬슨, 실버, 나오시스, 에드워드, 라자스키 등 다섯 명에게 도청의 혐의가 돌아가게 된다. 이들 가운데 실버씨는 CIA를 물러난 뒤인 1978년에 회고록을 썼다. 「서브 로자(Sub Rosa)」(라틴어로 비밀이란 뜻)란 이 책에서 그는 여러 번 자신의 도청공작을 소개하고 있다. 도청전문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의 공작기술은 다양하다.
그의 체험담을 소개한다.
 
  사례1 : KGB 지부장 집 도청
  1955년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지부장으로 있을 때였다. 나는 잘츠부르크의 어느 호텔에 모 중립국의 대표단이 투숙할 예정이란 정보를 입수했다. 이 사절단은 고위 회담을 위해 모스크바로 가는 길이었다. 사절단이 호텔에 도착하기 며칠 전 나는 첩보조장 부부를 손님으로 위장시켜 사절단이 묵을 특실에 투숙시켰다. 그 부부는 탁자다리에 송신기를 설치했다. 그들의 대화를 수신하여 우리는 그 중립국이 다가올 회담에서 소련에 대하여 철강기술의 지원 등을 요구할 것이란 사실을 알았다. 이 정보를 우리는 워싱턴으로 보고했다. 그 중립국에서의
전략계획수립에 적절하게 활용됐다.
 
  사례2 : 공중전화 도청
  빈의 소련 대사관 앞에는 공중전화 박스가 있었다. 우리는 전화박스 천장에다가 도청용 송신기를 몰래 붙여놓았다. 우리는 기다렸다. 낯이 익은 KGB요원이 공중전화박스에서 전화를 거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스트리아인 첩자에게 전화를 거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 첩자의 사는 곳을 알아냈다. 우리 요원들이 그를 협박하여 우리의
 첩자로 만들었다. 그는 KGB에 박힌, 우리를 위한 2중첩자가 된 것이다.
 
  사례3 : KGB 지부장 집 도청
  우리와 협력하는 부동산 중개인이 빈의 KGB책임자가 캐나다 외교관이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를 갈 계획이란 정보를 갖고 왔다. 캐나다 외교관이 집을 비우고 KGB책임자가 이사를 오기까지의 어느 날 밤 나는 요원들을 그 빈집에 들여보냈다. 서재의 창문 쪽에 붙은 장식판자를 뜯어내고 콩알만한 송신기를 붙였다. KGB책임자는 그 서재에서 가끔 작전회의를 열었고, 우리는 죄다 그 내용을 듣게 됐다. 배터리가 소모되어 가동이 중단될 때까지
 여덟 달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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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방국 원수 도청은 관례
 
  실버씨는 지난 59∼62년 7월까지 한국지부장으로 일했다. 그가 경무대(뒤에 청와대)에 도청장치를 했다는 증거는 없다. 확실한 것은, 그가 만약 그런 장치를 하려고 마음만 먹었다면 빈에서 보다는 아주 쉽게 할 수 있었으리란 점보다는 아주 쉽게 할 수 있었으리란 점이다. 행동의 자유, 접근의 용이함, CIA커넥션의 풍부함 등에서 한국은 CIA가 활동하기에 가장 편한 나라일 것이다(더구나 60∼70년대의 놀라운 전자기술 발전을 생각해 보라).
그런 점에서 우리와 비슷했던 월남의 도청사례를 참고해 본다.
 
  사례1 : 티우집무실 도청
  사이공함락 직전 CIA사이공 지부에 분석관으로 근무했던 프랭크 스넵씨는 77년에 「Decent Interval」이란 책을 써 CIA공작을 폭로했다. 그에 따르면 티우 대통령의 집무실뿐 아니라 거실도 도청됐고, 그의 政敵이던 민 장군의 집도 도청됐다. 75년4월21일 티우 대통령은 수상과 부통령을 불러 사임의사를 밝혔다. 도청장치를 통해 이 사실을 알게 된 CIA지부장 폴가씨는 『월남정전 이후 최대의 특종을 했다!』고 즐거워했다는 것이다.
 
  사례2 : 도청기술
  14년간 CIA간부로 일했던 빅터 마체티씨가 쓴 「CIA와 정보숭배」란 책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오늘날 CIA 및 기타 정보기관은 출입금지 구역에 도청장치를 하거나 전파도청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경호원이나 수위를 찾고 있다. 다른 나라의 전화전신회사도 CIA의 표적이 되어왔다. 외무성 및 국방성 침투 이외에도 CIA 공작원들은 당사국가의 전신조직에 침투하려 한다. 이 작업은 때로 미국 회사 특히 국제전신전화회사(ITT)의 도움을 받는다. 우편업무도 첩보 목적의 대상으로 바뀌었다. CIA 공작원의 대부분은 도청에 관한 훈련을 받는다. 그러나 도청장치를 하는 것은 CIA 본부나 지부에서 온 기재과 전문요원들이 대부분 맡고 있다.
 
  작업이 복잡하면 할수록 CIA 본부의 전문가들이 더욱 많이 동원된다. 어떤 경우에는 CIA 요원 및 책임자급 까지도 이러한 장비설치 기술에 관해 기재과 전문가의 특별훈련을 받아야 한다. 물론 가청(可聽) 주파장치는 복잡하고 어렵다. 고도로 위험이 수반되는 작업은 광범위하고도 상세한 조사가 끝난 후 엄청난 사전 계획을 필요로 한다.
 
  이를테면 건물 및 바닥에 대한 계획은 1차적으로 눈으로 감식한다. 건물 벽의 구조, 방 내부의 색깔 및 이와 유사한 사실도 신중히 결정되어야 한다. 이 장비가 설치될 건물이나 방 혹은 사무실내의 활동이 관찰, 기록되어
그 지역에 언제 접근할 수 있느냐를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된다. 건물 안에 있는 사람의 움직임과
순찰 상황도 알고 있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후에라야 어디에 언제 도청장치를 할 것이냐가 최종 결정된다. 보통 문제의 장소는 밤이나 주말에 침투하며 주의 깊게 사전 계획된 시간에 도청장치가 설치된다. 속력 빠르고 소리나지 않는 고속 착공기로 벽을 뚫고 도청장치를 한 뒤 손상된 부분은 빨리 응고하는 도벽제로 막고 처음과 똑같은
페인트칠을 해 버려야 하는 것이다. 이 장치는 옆방 혹은 아래 윗방으로부터 행해질 수 있을 것이다
(천장이나 마루바닥이 있는 경우).
 
  CIA가 도청에 성공한 나라는 보통 국내 안보체제가 해이해서 이 장치를 하는 데 필요한 CIA 활동의 자유를 용인하는 비공산국가에 한정되어 있다. 일부 동맹국에서 CIA는 당사국 정보기관이 설치한 도청장치로부터 얻은 정보를 같이 쓰고 있다. 당사국 정보기관은 CIA로부터 기술적 원조를 받으며 이 과정에서 CIA가 침투할 수도 있다」 FBI는 케네디 대통령의 백악관 전화까지 도청, 케네디 대통령이 마피아 단원인 여자와 情을 통하고 있는
사실을 알아낸 적도 있다.
 
  에드가 후버 국장이 식사시간에 조용히 이 사실을 대통령께 통보, 관계를 끊도록 했다고 한다. 여러 가지 증거로 보아 청와대가 CIA에 의해 도청된 적이 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朴대통령도 중요한 이야기를 할 때는 집무실에서 정원으로 나왔다는 것이다. 창문에 도청방지 장치를 붙여놓기도 하였다. 그러나 CIA가 사람에 의한, 또는 외부로부터의 전파발사에 의한, 도청을 했다면 그런 회피 방법은 효과가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