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空軍조종사, 해주항 상공에서 "빨리 공격명령 내려 달라"고 재촉

淸山에 2010. 12. 3. 05:09
 
 

 

 
 

空軍조종사, 해주항 상공에서 "빨리 공격명령 내려 달라"고 재촉
 
 
 당시 작전사령관 尹應烈 장군의 회고록에서 발견한 1970년 6월6일 해군 방송선
납북(월북?) 사건의 秘話.
趙甲濟   
 
 尹應烈 전 공군작전사령관이 최근 ‘상처투성이의 영광’이란 제목의 회고록을 냈다. 황금알 출판사에서 나왔다. 528페이지(1만8000원)짜리 책을 단숨에 읽었다. 그의 경력이 파란만장하다.
 
  1927년 평양출생, 일본육군소년비행학교 졸업, 자바에서 가미가제 특공대원으로 차출, 일본 본토로 이동하다가 해방을 맞아 목숨을 건졌다. 연합군 포로수용소에서 억류되었다가 풀려나 평양으로 돌아갔다가 북한공군에 입대하였다. 사상적 갈등으로 남한으로 탈출, 육군사관학교 7기로 입대, 졸업한 뒤 독립한 공군으로 옮겼다.
 
  6.25 직전 옹진전투, 지리산 및 영남지구 공비토벌에 조종사로 참전하였다. 6.25 전쟁중엔 107회의 敵陣 출격을 기록, 승호리 철교 폭파 등 戰果가 많다. 공군 소장으로 사관학교 교장과 작전사령관을 역임한 뒤 轉役, 국방과학연구소 부소장(차관급)과 코리아 타코마 사장을 지냈다. 현재는 미국 샌 디에고에서 살고 있다.
 
 비행중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긴 장면들을 읽어보면 生과 死는 인간의지가 아닌 運命에 의하여 결정되는구나 하는 느낌도 든다. 연평도 도발 사건과도 연관된 대목을 소개한다.
 
  1970년 6월5일 尹應烈 장군이 공군작전사령관으로 있을 때 서해 연평도 부근에서 해군 방송선이 월북한 사건이 일어났다. 문 모 중위가 북한에 있는 아버지를 찾는다면서 배를 몰고 북한으로 올라간 것이다. 한국 해군은 방송선이 북한 함정에 의하여 拉北되고 있다고 보고, 공군기의 출동을 요청하였다. 수원의 제10전투비행단에서 F-5 두 대가 출격하였다. 출동 조종사는 NLL 부근에 도달하였으나 방송선을 찾을 수 없었다. 尹 장군은 “철저히 수색하여 북한함정을 발견하면 공격하여 침몰시켜라”는 지시를 내렸다.
 
  출동 조종사는 용감하게도 NLL을 넘어 북한의 해주항 상공까지 들어가, 해주항엔 몇 척의 북한함정이 보이는데 한국해군의 방송선은 보이지 않는다는 보고를 해왔다. 尹 장군은 김성룡 해군참모총장에게 ‘정박중인 북한함정을 공격하겠다’고 보고하였다. 출동 조종사도 공격명령을 내려달라고 재촉하였다. 김성룡 총장은 그러나 “공격은 안 된다. 敵機가 나타나기 전에 우리 전투기를 철수시켜라”고 지시하였다.
 
 尹 장군에 따르면 해군측은 우리 해군 방송선이 북한 함정에 납북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공군에 지원을 요청하였으나 기다리는 전투기가 나타나지 않아 해주로 끌려가버렸다고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고하였다고 한다. 해군은 恥部(치부)를 감추기 위하여 越北사고라는 설명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방송선 납북은 공군의 소극적 대응 때문이라고 오해한 朴 대통령은 任期 만료를 두 달 남겨 놓은 김성룡 총장을 轉役시켰다는 것이다.
 
 지난 11월23일 오후 연평도 상공으로 출격한 한국 공군의 F-15K 전폭기 조종사도 “빨리 북괴 해안포에 대한 폭격명령을 내려달라”고 재촉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