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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골 삼 천((踝 骨 三 穿)

淸山에 2010. 10. 26. 17:24
 
 
 

 
 

 

 


 과 골 삼 천((踝 骨 三 穿)

 

 


과골삼천(踝骨三穿)이란 말을
한 동안 화두로 들고 지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강진 유배 시절에 제자인
황상(黃裳)의 글속에 나오는 말이다.

70 이 넘어서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메모해가며
책을 읽는 황상을 보고 사람들이 그 나이에 어디다
쓰려고 그리 열심히 공부를 하느냐고 비웃었다.

그가 대답했다.
“우리 선생님은 귀양지에서 20여년을 계시면서 날마다
저술에만 힘써 과골,즉 복사뼈가 세 번이나 구멍 났다.

선생님께서 부지런히 공부하라 친 히 가르쳐주신 말씀이
아직도 귀에 쟁쟁한데 관 뚜껑을 덮기 전에야 어찌
그 지성스런 가르침을 저버릴 수 있겠는가?”

처음 이 글을 읽고 어안이 벙벙했다.
책상다리를 앉아 20년 세월이 가는 동안 바닥에 닿은
복사뼈 자리에 구멍이 세 번 뚫렸다는 것이다.

낙숫물이 돌을 뚫는다는 말은 들었고,
추사가 먹을 갈아 벼루 여러 개를 밑창을
냈다는 말도 들었지만,

복사뼈에 세 번이나 구멍이 뚫렸다는
말은 처음 들었다.

다산은 40대 초반 한창 뜻을 펼칠 나이에
급전직하의 나락으로 떨어져 강진으로 유배 왔다.

그 절망의 20년 세월 동안 곁눈질 한번 하지
않고 학문에만 정진했다.

나중에는 뼈가 시어 앉아 있을 수가 없어 벽에
시렁을 메어놓고 서서 작업을 했다고 한다.

그 광경을 떠올리며‘다산문선’을 수십 번 통독하다 보니
도대체 우리 공부란 것이 그 앞에 서면 초라하여
민망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다산의 그 초인적인 노력도 대단하지만 10대에 들었던
스승의 가르침을 70 이 넘은 나이에 마음에 되새겨 잊지
않은 제자의 도타운 마음이 참 고맙다.

그래서 지난번 강진 답사 때는 일부러 황상이
살던 천개산 아래 일속산방(一粟山房)
터를 물어물어 찾아 갔었다.

25년 전 저수지가 생겨 집터가 있던 자리 바로
아래턱까지 물이 차 있어 건너갈 수 없었지만
건너다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뭉클했다.

열다섯 살 난 소년은 아전의 자식이었다.
다산이 유배 초기 강진 읍내 주막집 한 한 켠에
열렸던 서당에 쭈볏쭈볏 나아가

“저같이 머리 나쁜 아이도 공부 할 수 있나요?”
하고 물었다.

스승은“오로지 부지런히 노력하면 안될 것이 없다.”
며 저 유명한 삼근계(三勤戒)의 가르침을 글로 써서
소년의 용기를 북돋워주었다.

소년은 스승의 격려에 크게 고무되었다
말씀에 따라 평생을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스승이 귀양이 풀려 서울로 올라간 뒤에도,
그는 세상에 눈길을 주지 않고 낮에는 농사짓고
밤에는 책을 읽었다

그렇게 다시 몇 십 년이 지났다.제주도에 귀양 가 있던
추사가 우연히 그의 시를 보았다 추사는 그 시의 높은
경지를 보고 깜작 놀랐다.

귀양이 풀려 뭍으로 오르자마자 추사는 황상의 집부터
찾았다 스승 다산은 이미 세상을 뜬 뒤의 일이다.

이후 시골 아전의 자식은 평생 농투성이 농사꾼으로만
살다가 일약 세상이 알아주는 유명한 시인이 되었다.

다산의 아들 정학연 형제와 추사 형제 등이 다투어
그의 시를 칭송하고,그의 시집에 서문을 써주었다.
하지만 그는 조금도 우쭐대지 않았다.

추사 형제와 정학연 형제가 차례로 세상을 뜨자 그는
또 다시 야인으로 돌아가 세상에 잊혀진 사람이 되었다.

황상이 75세 나던 해에 쓴 임술기(壬戌記)는 스승에게
첫 가르침을 받은 지 60년이 되던 해에 쓴 글이다.

이글에서 그는 스승이 15세 때 자신에게 준 글을 옮겨
적고 나서 평생 이룬 것은 보잘것없지만 생각해보면

스승이 남기신 가르침을 지켜 부끄럽지 않게
살아왔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삶의 끝자리에서 그가 남긴 이 말을
나는 오래 잊지 못한다.

다산이 강진에 내려와서 거둔 것이 단지 학문의
성취뿐이었다면 우리의 외경은 훨씬 덜했을 것이다.

그는 역경의 세월을 자신과 싸워 이겼을 뿐 아니라
자신감 없던 시골 소년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학문의 위대함은 인간의 위대함에서 나온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은 얄팍한 세상에서 이 아름다운
사제간의 만남은 늘 내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삼 근 계(三 勤 戒) 

다산(茶山)선생이 황상(黃裳)에게 문사(文史)를 
공부하라고 권했다.
 (詞曰 余勤山石治文史)
그는 쭈뼛쭈뼛하더니 부끄러운 빛으로 
사양하며 말했다. 
(山石浚巡愧色而辭曰)
선생님 저에게는 세 가지 병통이 있습니다.
(我有病三)
첫째는 너무 느리고 둔하고
(一曰鈍)
둘째 앞뒤가 꽉 막혀 융통성이 없으며
(二曰滯)
셋째 답답한 것입니다.
三曰戞)
다산(茶山)선생이 말했다.
(詞曰)
배우는 사람에게는 큰 병통 세 가지 있다. 
그런데 너에게는 그 문제가 없다.
(學者有大病三 汝無是也)
#첫째,외우는데 민첩한 사람은 소홀하고 
부실한 것이 문제다.
(一敏於記誦 其弊也忽)
#둘째,글 짓는데 날래면 글이 들떠 
날리는 것이 병통이지 
(二銳於述作 其弊也浮)
#셋째,깨달음이 재빠르면 거칠고 
조악한 것이 폐단이다. 
(三倢於悟解 其弊也荒)
대저 둔한데도 계속 천착하는 
사람은 구멍이 넓게 되고 
(夫鈍而鑿之者 其孔也濶)
막혔다가 뚫리면 그 흐름이 성대해 진다.
(滯而疏之者 其流也沛)
답답한데도 꾸준히 연마하는 사람은 
그 빛이 반짝거린다.
(戞而磨之者 其光也澤)
 천착하는 것,뚫는 것,연마하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부지런하고 부지런하고 부지런해야 한다.
(曰若之何勤也)
제가 어떤 자세로 부지런해야 할까요?
마음을 확고하게 다 잡아야 한다. 
(曰 秉心確)
~^* 卮園遺稿의 壬戌記에서 黃裳지음 *^~
#註* 戞(어근버근할 알) 鑿(뚫은 착) 滯(막힐 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