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 예술/옛시조 모음

옥수수로 갈바람에 칠십년을 보냈네 玉薥西風七十年 - 추사 김정희

淸山에 2010. 10. 22. 13:31
 
 
 

 

 
 
 
 

추사(秋史)는 좀체 남을 인정하는 법이 없었다.
 남의 한 것은 헐고, 제 것만 최고로 쳤다.
 아집과 독선에 찬 언행으로 남에게 많은 상처를 입혔다.
 그가 단골로 꺼내든 카드는 '내가 중국에 갔을 때 실물을 봤는데' 였다.
 보지 못한 사람들은 그 한마디에 그만 꼬리를 내렸다.
 조선에서는 그의 경지를 넘볼 사람이 없었다.
 중국 학자들도 그를 호들갑스레 높혔다.
 재료도 중국제의 최고급만 골라 썼다.
 
 그런 그가 만년에 제주와 북청 유배를 거듭 다녀온 뒤 결이 조금 뉘여 졌다.
 북청 유배에서 풀려 돌아오다 강원도 지역을 지날 때였다.
 길을 가는데 옥수수밭에 둘린 초가집이 한 채 있었다.
 흘깃 보니 늙은 내외가 마루에 나와 앉아 웃으며 이야기 꽃이 한창이었다.
 내외는 길 가던 손이 불쑥 마당으로 들어서는 모습을 보았다.
 손은 물 한 잔을 달래 마시더니 잠시 쉬어 가겠다는 듯 마루에 슬쩍
 엉덩이를 걸친다.
 "여보 노인! 올해 나이가 몇이우?"
 "일흔 입지요."
 "서울은 가보았소?"
 "웬걸인겁쇼. 관청에도 못 들어가 보았습니다."
 "그래 이 산골에서 무얼 자시고 사우?"
 "옥수수 먹고 삽니다."
 
 추사는 순간 마음이 아스라해졌다.
 삶의 천진한 기쁨은 어디서 오는가?
 한세상을 발아래 둔 득의(得意)의 나날도 있었다.
 세상이 알아주는 한다 하는 이가 반눈에도 차지 않았다.
 하지만 신산(辛酸)을 다 겪고, 제주 유배지에서 아내마저 떠나 보낸뒤,
 다시 북청까지 쫓겨갔다.
 이제 늙고 병들어 가을 바람에 지친 발거름을 재촉한다.
 타관의 꿈자리는 늘 뒤숭숭하다.
 흰 머리의 내외가 볕바라기로 앉은 툇마루의 대화,
 서울 구경 한번 못하고 관청 문 앞에도 못 가봤지만,
 옥수수 세 끼니로도 그들의 얼굴엔 시름의 그늘이 없었다.
 아주 행복해 보였다.
 
 그가 쓴 시는 이렇다.
 
禿柳一株屋數椽
독유일주옥수연
 "두어 칸 초가집에 대머리 버들 한구루
 
翁婆白髮兩수然
옹파백발양소연
  노부부의 흰 머리털 둘 다 쓸쓸하구나
 
未過三尺溪邊路
미과삼척계변로
  석 자도 되지 읺는 시냈가 길가에서
 
玉薥西風七十年
옥촉서풍칠십년
  옥수수 갈바람에 칠십년을 보냈네
 
 
 시를 지은 뒤 앞서의 문답을 적고, 그는 이렇게 섰다.
 "나는 남북을 부평처럼 떠돌고, 비바람에 휘날렸다.
 노인을 보고 노인의 말을 듣고 나니, 나도 몰래 망연자실 해졌다.
 
 한 해의 끝자락에서 나를 돌아본다.
 
         - 옮김 <정민의 세설신어> 조선일보 2009.12.25 -  
 

추사유배지(秋史流配址) 사적 제487호 /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안성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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