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 & 배움/명소의 풍경

독일의 로텐부르크 풍경

淸山에 2010. 10. 1. 19:40
 

 

 
 
 
 

 

 

인구: 1만 1053명
면적 : 41.45㎢

 


독일, 바바리아지방의 프랑켄 행정지역, 로맨틱로드 코스의 하나인 로텐부르크는
타우베어 江위에 中世의 모습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곳으로 서기 950년에 이곳을 소유한 콤부르그 로텐부르크 伯爵(백작)에 의해서 마을이 만들어졌고

1070년에는 城이 세워졌으나 城은 지진에 붕괴되었다.

 

로텐부르크의 마지막 후손은 콤부르그 수도원에 財産을 기증했으나 황제'하인리히Ⅴ'는 조카(훗날 神聖로마제국 독일황제 Konrad Ⅲ)에게 로텐부르크 재산의

後任(후임)을 지정하였다.

 

12세기에는 市場과 야콥교회, 우유市場, 垓子(해자)로 마을이 건설되었다.

로텐부르그의 성벽과 탑은 13세기에 보강되고 신성로마황제의 '황제의 도시'가 되었다. 로텐부르그를 포함한 황제의 도시들은 번영을 위해 훈련하는 센터로

巡廻地(순회지) 중의 하나였다.

1517년에 마틴 루터가 '용서받기 위한 거대한 금액'을 지불할 수 없다고 했을 때

독일 귀족들은 로만 가톨릭에서 루터派가 되었다
 
다음 세기에 改新敎(개신교) 군대와 가톨릭 군대의 전쟁으로 유럽의 도시나 도시

외곽의 시골이 파괴되고 로텐부르크도 정복되었으나 市長의 기지로 마을은

파괴당하지 않았다

 

2차대전中, 독일은 로텐부르크를 '가장 독일적인 독일' 이라 名하고 나치

支持者(지지자)들과 나치의 지지를 위해 이곳의 유태인들을 추방하며

독일군이 주둔하였다. 그러나 전쟁중, 이곳의 아름다움과 역사를

알게 되고 이를 존중한 미국의 폭격중지, 독일군의 로텐부르그를 포기하고 

저항하라는 히틀러의 명령을 '無視(무시)한 결정' 으로 살아남게 되었다.

 

로텐부르크는 세계 각지에서 보내온 誠金으로 전쟁중 파괴된 곳이 곧 수리되었다. 

로텐부르그는 전쟁, 유럽을 휩쓴 페스트, 지진, 종교개혁, 그후 2차大戰에도

살아남았으나 19세기 初까지는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었다

19세기 말 畵家들이 이곳을 찾아 매력적인 건물, 타우베어 江위의 마을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에게 알려졌는데 지금은 바바리아 지역의 가장 많은 방문객이 모이는 관광도시이다.


독일은 이 도시를 現代化시키지 않는 것을 법으로 통과시켜 로텐부르크는 中世의 매력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곳이다

 

 

 

 
 
 

로텐부르그 시청

聖야콥교회

 

 

 

성벽

 

 

  

 
 
타우베어江 주변의 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