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우리歌曲 愛

구강산 - 박목월 시. 조두남 곡 - 테너 안형일

淸山에 2010. 8. 12. 11:29

구강산

조두남 / 구강산

조두남 趙斗南, 1912 ~ 1984


박목월 시, Tenor 안형일

구강산 노을 놀위에 하늘을
자락마다 황금으로 아로 새기고
한 자락은 넌즈시 산넘어 보내고
대숲길을 거닐어 시를 읊으면
숙연한 대숲에 산새가 깃든다

구강산에 놀이서네
구강산 저녁놀은 열두자락 꿈이어려
아아 냇사 몰라 내일도 흥흥

자줏빛 또 밝은 날을 구름도 한점
그늘도 없이 청푸른 하늘을
아~ 어찌노 어찌노

구강산 "九江山"

보라빛 돌산에 백색, 담홍색 산도화가 두어 송이 피어나고 있는데, 이것은 충만이 아닌 여백을 중시하는 동양적 미학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구강산’이라 이름붙인 아름다운 선경(仙景)은 시인의 가슴 속에 존재하는 이상향 속의 산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우리 나라 지도에 구강산이란 없다. 이상향 속의 산이다. 박목월의 시 '청노루'에 나오는 '자하산(紫霞山)'과 마찬가지로 이상향 속에 있는 꿈의 산을 배경으로 제시했다.

영원한 Tenor 안형일, 1927 1. 18~

평북 정주 출생 정주운전초등학교를 거쳐 정주중학교로 진학한 안형일은 중학교 3학년 때 당시 음악교사였던 최용린 선생으로부터 목소리가 좋으니 노래를 하라는 권유를 받고 성악 개인 교습을 받으며 음악의 길에 들어섰다. 성악 외에도 학교 취주악대에서 트럼본을 불면서 지휘도 맡아 하는 등 교내외에서 적극적으로 음악 활동에 가담했다. 5년제 중학교를 졸업한 후 광복을 맞게 되자, 본격적인 음악공부를 위해 그는 가족을 고향에 남겨둔 채 1946년 3·8선을 넘어 단신으로 서울에 발을 디뎠다. 미군 대령집에 일자리를 얻고 시간을 내어 혼자 노래 연습을 했는데, 어느날 그의 노래를 듣던 미군 대령이 칭찬하며, 미군 장교 정기모임 때 노래를 해주면 음악공부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해 그 후부터는 비교적 안정된 생활로 음악에 몰두할 수 있었다.

이후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 입학하면서 테너 이상춘 교수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는데, 한국전쟁 발발로 해군정훈음악대 합창단에 들어가 위문공연을 다니게 된다. 위문공연 중에도 학교 생활도 계속해 재학 중에 그의 전공실기는 단연 으뜸이라고 손꼽힌다. 졸업시에는 성악기술상을 수상했을 뿐만 아니라 졸업연주회에서는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 중의 아리아를 불러 큰 인기를 얻었다. 그 후 안형일은 평생을 통해 <라 보엠>의 루돌프 역만 9회를 기록함으로써 가장 인연 깊은 오페라가 되었다. 흔히 음악하는 사람들은 비교적 넉넉한 집안 출신이라고 말하지만 안형일은 홀홀단신으로 남으로 내려와 어쩔 수 없이 인생의 어려움을 온몸으로 체험하며 자신의 삶을 개척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런 어려움을 내색하지 않고 언제나 부드럽고 여유로운 모습으로 주위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줌으로써 후학들로부터 많은 존경을 받고 있는 것이다.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 졸업 및 이태리 로마 싼타체칠리아 국립음악원을 졸업하였다. 1955년 오페라 ‘리골렛토’의 만토바 공작 역을 맡아 오페라의 주역으로 출연한 이래 45년여 동안 70여 작품에 출연하였으며, 특히 푸치니의 ‘라보엠’에서 시인 로돌포 역을 아홉 번이나 맡음으로써 한국 오페라 50년사, 특히 테너 부문에서는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찬란한 업적을 남겼다. 또한 수많은 오페라 이외에도 14회에 걸친 베토벤 합창 교향곡의 테너 솔로를 비롯하여 미국, 일본, 대만, 태국, 네팔, 독일 등 국내외도 각종 연주회에서 1000여회 이상 독창자로 출연하였다.

40여년 동안 서울음대를 비롯하여 한양음대, 추계음대 등에서 후진을 양성하면서 우리 악단의 기라성같은 많은 중견 음악가를 배출하였고, 우리나라 오페라 운동의 태동기에 선구적 역할을 해온 이연히, 이상춘, 이인범 등의 뒤를 이어 59년 ‘리골렛토’의 만토바 공작 주연역 데뷔 이래, 40여년간 주역의 왕좌를 지켜온 명실공히 우리 성악계의 독보적인 존재이다. 1983년부터 89년까지 국립오페라단장을 역임하면서 국립오페라단 발전에 기여했고 1992 정년 후에도 1996년 고희 기념음악회를 비롯하여 오페라 축제, 가곡의 밤 등 활발한 연주 활동을 계속해오고 있다. 현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추계예술대학교 대우교수, 국립오페라단 종신단원,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으로 있다.

조두남 趙斗南, 1912 ~ 1984

아호는 석호. 작곡가. 피아노 교육자. 평남 평양 출생. 평양 숭실학교 수학. 미국인 신부 죠셉 캐논스(Joseph Cannons)에게 작곡과 피아노를 배웠다. 11세가 되던 1923년에 첫 작품인 가곡 <옛 이야기>를 작곡하였고 16세 때 첫 작곡집을 발간하였다. 그 뒤 만주로 가서 해방 이전까지 그 곳에서 청년기의 작품활동을 하였다. 그의 대표곡인 가곡 <선구자>는 1933년 만주에서 윤해영의 시에 곡을 붙여 작곡된 것이다. 해방 후 귀국하여 서울에서 창작활동을 하다가 6ㆍ25가 일어나자 마산으로 피난 가서 그 곳에 정착하였다. 마산에 정착한 후 작품활동보다는 피아노 교육에 주력하였다. 1962년부터 1968년까지는 한국문화예술단체총연합회 마산시지부 초대지부장을 역임하였고 이후 한국음악협회 마산시 지부장, 고문 등을 역임하였다. 지역문화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1962년 경상남도 문화상, 1976년 눌원 문화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1982년 MBC창사 20주년기념 가곡공로상을 받았다.

음원출처:http://gagok.poodi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