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scia Ch'io Pianga 헨델 / 울게하소서 George Frideric Handel 1685∼1759 날 울도록 내버려두오, 잔인한 내 운명이여, 자유를 갈망하도록! 자유를 갈망하도록! 슬픔이 내 고뇌의 실가지들을 불쌍히 여겨 부러뜨리네~ Contratenor & Castrato (카운터 테너와 카스트라토) 카스트라토 ( Castrato ) 이로 인하여 교회안에서 뿐만 아니라 교회밖에서도 여자들은 제한을 받았다. 16세기에 로마교황청의 시스틴채플에서 카스트라토(Castrato·남성거세가수 주로 소프라노)들이 활약했다는 기록이 있고, 카스트라토의 전성기 때인 18세기에는 이탈리아에만도 1년에 4천여 어린 소년들이 거세되었다. 당시 정상급 카스트라토의 인기와 영화는 요즘 영화배우나 오페라 가수들을 능가할 정도다. 카스트라토는 젊은 사람들의 우상이 됐고, 남성도 여성도 아닌 중성 목소리는마치 외계에서 온듯한 신비감을 주었다. 음성이 좋은 어린 아들을 둔 가난한 부모는 아들을 카스스라토를 만들어 부귀를 누리려 했다. 작곡가 조셉 하이든도 음성이 좋아 카스스라토가 될뻔했으나 아버지의 반대로 거세를 면했다. 헨델은 그가 작곡한 46개 오페라중에서 적어도 16개를 카스트라토를 위해 만들었다. 모짜르트도 카스트라토에게 성악이론을 배웠고 또한 「이도메네오」등 여러 오페라에 카스트라토역을 작곡했다.많은 카스트라토의 이름들이 역사에 남아있지만 그중 가장 유명한 가수가 몇년전 우리나라에 수입된 영화 「파리넬리」의 주인공 「카를로 브로스키」(Carlo Broschi, 1705∼1782·예명 파리넬리)다. 원래 오페라 작곡가였던 헨델이 오페라를 그만두고 오라토리오작곡을 주로 하게된 중요한 원인중의 하나가 파리넬리 때문이었다. 헨델이 고용한 카스트라토 「세네시노」가 라이벌 오페라회사의 파리넬리 인기를 따르지 못하는등으로 적자에 허덕이게 되었다. 로마교황청의 공식적인 입장은 소년들의 거세를 금했지만 시스틴채플에 카스트라토를 고용했다. 18세기 시스틴채플의 성가대 구성은 28명의 남자성가대원으로 4부가 각각 7명으로 되어있어 7명의 소프라노가 필요했다. 1810년대 이탈리아를 점령한 나폴레옹이 카스트라토를 엄하게 단속하고 교회도 카스트라토의 고용을 제한해서 19세기말에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1902년4월, 그라모몬의 「가이스버그」가 로마교황청을 찾아갔다. 교황 리오 8세의 허락을 받아 시스틴채플의 성가대를녹음했다. 속셈은 성가대 지휘자이며 소프라노 솔리스트인 카스트라토 알레산드로 모레스키(Alessandro Moreschi, 1858∼1922)의 음성을 녹음하기 위해서였다. 하마터면 역사의 기록으로만 남을뻔했던 카스트라토의 음성이 음반으로 보존된 것이다. 몇 년 전 미국 예일대학교 음대 「구노」의 「아베 마리아」등 17곡의 모레스키 음성이 담긴 CD를 시판했다. 파리넬리는 누구 ? 목소리 자체가 극히 아름다웠음은 물론이었고 감정 표현이 완벽에 가까웠으며, 음역이 넓었고, 호흡 조절은 자유자재였다고하니 글자 그대로 당대 최고였답니다 .기록에 의하면, 그의 음역은 세 옥타브 반이었는데, 한 호흡으로 음표를 250개나 노래했다고 합니다. 뿐만아니라, 한 음표를 1분 이상이나 쭈-욱 길게 노래했다고도 전하는데, 정말 대단하죠?그당시 일부 사람들은 파리넬리가 뭔가 특수장치를 숨기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수근거렸답니다.그럼 이제 파리넬리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기 위해서 조목조목 소개를 하겠습니다. 본명:카를로 브로스키(Carlo Broschi) 데뷔: 1720년 톨렐라 군주의 궁정에서 스승인 Porpora(포르포라)가 작곡한 "Angelika and Medoro"로 데뷰했습니다. 은퇴:1759년에 은퇴를 했지만 모짜르트나 글룩처럼 유명한 음악가들이 계속 그를 찾아왔다고 합니다. 카운터 테너 ( Contratenor) 카운터 테너의 역사... 이러한 여러 상황 이 남성이 남성들 앞에서 혹은 여성이 여성들 앞에서 노래하는 경우를 제하고는 지금까지도 일부에서는 성별이 뚜렷하게 구별되는 연주를 제한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아마도 8세기경부터 가성(Falsetto)의 사용이 일반화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연주상에서 남녀의 구별을 뛰어 넘는 유일한 수단이었을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서기 822년 술탄(회교도의 군주를 칭하는 말) 하룬 아르 라쉬드 시대에 당시의 유명한 가수 Ziryab이 당시 술탄의 지배하에 있었던 코로바도 (현 스페인 도시)에 와서 그 유명한 가성발성을 전하였고 이 기술은 트르바도르(당시의 방랑시인들)에 의해 다시 널리 퍼져 급기야는 로마 교황청에 근무하는 성악가들에게도 전해졌다. 당시 여성들의 교회 내의 음악활동을 금했던 상황에서는 이 발성법으로 인해 교회 내에서도양질의 변화있는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이후 1600년 까지 가성이 거의 모든 성악 부문에서 압도적인 추세를 이루다가 사회의 구조와 상황의 변화에 의하여그역할은 카스트라토(Castrator, 남성 호르몬을 억제시켜 변성기 전의 소리를 낼 수 있도록 거세된 가수)에 넘겨졌다. Farinelli가 이에 속한 대표적인 사람이다. 어렸을 때부터 음악적 훈련을 받아 음악이 영글은 데다 아름다운 목소리가 남성의 신체적 특징(넓은 가슴, 단단한 성대등)에 힘입어 여자들이흉내내기 힘든 예술의 경지에 이른 그들의 발성법은 그 이후 오페라 혹은 오라토리오에서 절대적인 힘을 발휘하였다.카스트라토가 비인간적인 방법에 만들어 진다는것 때문에 그들의 수는 점점 줄어 들었고 19세기에는 거의 자취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러나 유럽의 일부 성당 합창단과 궁중에서는 옛날 가성 발성을 남자 어린이에거 가르치고 그들로 하여금 교회 음악에 필요한 높은 성부를 담당하게 되었다. 1922년 마지막 카스트라토였던 알레산드로 모레스키(Alessandro Moreschi)가 죽자 성인 남자 가수가 여성과 비슷한 소리를 내는... 그 어떠한 발성법도 그와 함께 사라진 것으로 여겨 졌으나 1940년대에 알프레드 델러(Alfred Deller)와 80년대의 아리스 크리스토 펠리스(Aris christofellis)등에 의해 가성 발성은 다시 그 아름다운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하였다. 독일 등의 유럽 각국에서 일어난 바로크 오페라의 부흥은 이들 새로운 기성가수들인 카운터테너들에 의해 그깊이를 더해갔다. 카운터테너의 교육 특별한 교육이라 함은 첫째, 가성발성의 특수한 발성법과 둘째, 이들 카운터테너들이 주로 부르게 되는 바로크 오페라 및 이들을 위해 특별히 쓰여진 레파토리의 연구이다. 보통 카스트라토와 카운터 테너를 음악용어에서 엄격히 구별하는데 이는 소리내는 방법이 엄청난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카스트라토는 변성기를 겪지 않은 남성이 소프라노 파트를 담당한 경우이고 카운터 테너는 변성기를 이미 거친 남성이 가성에 의해 여성의 알토 파트에 상당하는 음역을 담당하는 경우를 말한다. 가성에 의한 발성은 그 음역에 한계가 있어 카스트라토 만큼 높은 음역을 구사하기 힘든데 이로 인해 그들은 알투스(Altus)라고도 불린다. 모든 성악이 그렇듯이 음역은 개 인마다 차이를 보이는데 일부 카운터테너들은 옛날 카스트라토 못지 않게 넓은 음역을 노래하는 테크닉을 구사한다. 유럽의 일부 성당 합창단과 궁중에서는 옛날 가성 발성을 남자 어린이들에게 가르치고 그들로 하여금교회음악에 필요한 높은 성부를 담당하게 하였다. |
'음악 > Classic 성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냥꾼의 합창 - 베버 (0) | 2009.09.15 |
---|---|
Der Lindenbaum - Franz Peter Schubert(1797~1828) (0) | 2009.09.14 |
벨리니 - 은빛으로 물들이는 예쁜 달이여 (0) | 2009.09.14 |
Du, Du Liegst Mir Im Herzen - 그대는 내 마음 깊이 (0) | 2009.09.14 |
Plaisir d'amour - Josumi (0) | 2009.09.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