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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과 리 장군

淸山에 2009. 9. 1. 18:30

 

 

워싱턴과 리 장군

미국의 역사는 짧지만 그 어느 나라보다 극적이다. 영광의 순간도 많았지만 벼랑 끝에 선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자기 땅에서 벌어진 두 차례의 전쟁 때 특히 그랬다. 오늘날 미국이 지구상 유일무이의 초강대국이 된 것도 백척간두의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한 결과다.

독립전쟁 말기 총사령관 조지 워싱턴이 분노한 청년 장교들을 설득해 쿠데타를 막은 것은 유명한 일화다. 임금 체불에 화가 난 군인들이 대륙회의(의회)로 진격했다면 눈앞에 둔 독립이 물거품처럼 꺼져버릴 수도 있었다. 군인들 앞에서 편지를 꺼내들며 워싱턴이 말했다.

"여러분, 제가 안경을 좀 써야겠습니다. 조국을 위해 전쟁을 하다 보니 머리는 백발이 됐고 눈은 장님처럼 침침해졌습니다."

안경을 쓴 워싱턴을 처음 본 군인들 눈에 이슬이 맺혔다. 그들은 이성을 찾았고 총사령관 편으로 되돌아왔다.

미국 건국사에는 이보다 더한 굴곡이 숱하게 있었다. 워싱턴은 그 비밀을 누구보다 많이 알고 있었지만 회고록을 쓰지 않기로 결심한다. 독립이라는 찬란한 대의가 하찮은 사욕과 반목으로 얼마나 여러 번 재앙을 맞을 뻔했던가를 알면 국민이 환멸을 느낄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이번엔 남북전쟁 말기. 리 장군의 기진맥진한 남군은 버지니아에서 그랜트 장군의 압도적인 북군에 포위당했다. 부관 알렉산더 장군이 숲으로 달아나 게릴라전을 펼 것을 제안했다. 리 장군은 고개를 저었다.

"이제 남부동맹이 실패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오. 병사들은 하루빨리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를 짓고 전쟁 잔해를 복구해야 합니다."

리 장군은 항복했다. 탁월한 리더십으로 전투에서 대적할 사람이 없던 그였지만 승리보다 중요한 게 평화와 국민통합이었다.

남의 나라 얘기라 하지만 워싱턴과 리 장군의 지혜가 어느 때보다 절실한 요즘인 것 같다. X파일이라는 것에 대해 정치권과 언론.시민단체들이 저마다 옳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카이사르의 말대로 서로 "자신이 보고 싶은 현실만을 볼 뿐"이다. 자신의 이익이라는 안경 너머로만 현실을 본다는 얘기다. 국민의 환멸과 분열.혼란은 안중에도 없어 보인다. 그 사이 국가 위신은 추락하고 국제경쟁력은 뒷걸음치고 있다.

이훈범 주말팀장

2005.08.07 20:34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