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이 바꾼 세계사-소련의 태평양 전쟁 工作 내막
미국의 對日 최후통첩 '헐 노트'의 필자는 소련 간첩이었다! 정책부서의 간첩이 가장 위험하다.
趙甲濟
美 재무부의 소련 간첩을 이용한 美日 태평양 전쟁 유도 '雪作戰(Operation Snow)' 내막: '간첩이 기초한 '헐 노트'를 최후통첩으로 제시, 일본을 전쟁으로 몰아가 소련을 도왔다.' *도쿄에서 독일인으로 위장, 활동중이던 소련 간첩 조르게의 최고급 전략정보를 받은 스탈린은 시베리아에 있던 40만의 병력을 빼내 모스크바 전선에 투입, 소련을 구했다. *전략과 정책을 파는 간첩이 가장 위험하다! 한국의 화이트는 누구인가? 趙甲濟(조갑제닷컴 대표) 국정원의 대특종 북한의 관영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12월9일, 張成澤(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이 ‘反黨(반당) 反혁명 종파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모든 직무에서 해임됐다고 보도했다. 8일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는 장성택을 모든 직무에서 해임하고 일체의 칭호를 박탈, 출당·제명 시킨다는 내용의 결정서를 채택했다. 이로써 국가정보원이 그 6일 전 국회에서 장성택 숙청을 확정된 사실로 보고한 것이, 한국 첩보사에 남을 만한 특종임이 밝혀진 셈이다. 국정원은 서울에 앉아서 대부분의 북한노동당원들보다 먼저 장성택 숙청을 알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상당수의 북한 주민들과 노동당 간부는 국정원의 특종을 보도한 한국 언론을 통하여 숙청 소식을 알았을 것이다. 이는 1956년, 미국 CIA가 이스라엘 모사드의 도움을 받아 흐루시초프 서기장의 스탈린 격하 연설문을 입수한 것과 비견되는 특종이다. 국정원이 왜 그날을 잡아 장성택 숙청 사실을 공개하였느냐고 트집을 잡았던 사람들은, 북한 정권의 발표가 국정원보다 먼저 나왔더라면 “그것도 몰랐느냐”고 비방했을 것이다. 정보판단이 국가存亡 좌우 한국처럼 전쟁 중인 나라에서 지도부의 정보판단은 나라의 存亡(존망)을 좌우한다. 정치와 언론이 정파적 利害(이해)관계에 따라 국가정보기관을 난도질, 정보기능을 마비시키면 국가는 결정적 순간에 결정적 낭패를 당할 것이다. 정보판단이 역사를 바꾼 경우를 소개한다. *1956년 미국 CIA는 이스라엘 모사드의 도움으로, 그해 초에 있었던 흐루시초프의 스탈린 격하 비밀 연설문을 입수, 언론에 공개하였다. CIA가 자랑하는 특종이다. *1950년 10월, 맥아더 유엔군 사령관은 중공군이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誤判(오판), 평양 북방으로 공세를 펴다가 중공군의 공격을 받아 북진통일을 포기, 총퇴각(1·4 후퇴)했다. 이때 이산가족이 생겼다. *당시 영국 정보기관 MI 6의 對美(대미) 연락관은 소련 정보기관에 포섭된 킴 필비였다. 그는 미국 CIA와 중요 정보를 공유하였다. 미국의 原爆(원폭) 보유량 등 전략 정보가 필비를 통하여 소련으로 넘어갔을 가능성이 있다. *도쿄에서 활약하던 소련 간첩 리하르트 조르게는 1941년 9월 일본군이 소련을 공격하지 않고 南進정책을 펼 것이라고 報告(보고), 스탈린이 40만 명의 극동군을 빼내 모스크바 방어전에 투입, 독일군으로부터 소련을 구할 수 있게 했다. *소련 정보기관은 미국 재무부 高官 화이트를 간첩으로 포섭, 그를 통하여 美日 협상 때 일본이 받을 수 없는 제안을 하도록 유도, 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일으켜 결과적으로 소련을 돕도록 공작했다. *1942년 미드웨이 해전에서 미국이 승리, 태평양의 제해권을 장악, 일본을 패망으로 몰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이 일본군의 암호를 解讀(해독), 대비한 덕분이다. *1945년 루스벨트, 처칠, 스탈린이 얄타에서 만나 2차 대전 이후의 세계질서 재편을 논의할 때 루스벨트를 수행하였던 美 국무부 고관 엘저 히스는 소련 간첩이었다. 그를 통하여 스탈린이 미국 측의 회담 전략을 알았을 가능성이 있다. *소련은 독일공산당원 출신의 물리학자 클라우스 푹스를 통하여 미국의 원자탄 개발 계획을 훤히 들여다 보고 있었다. 그는 영국 측을 대표, 미국의 원폭개발계획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 플루토늄 폭탄의 핵심 기술인 內爆(내폭)장치 개발에 종사, 관련정보를 소련 첩보기관에 넘겼다. *1983년 9월1일 대한항공 007편 점보가 사할린 상공에서 소련 요격기에 격추당하여 269명이 죽자, 미국은 일본 자위대가 녹음한 소련 조종사의 대화를 공개, 소련의 만행을 규탄하는 데 활용, 국제여론전에서 압승하였다. *1987년 11월29일 김승일-김현희 組가 대한항공기를 폭파, 115명을 죽이고 김현희가 바레인에서 체포당하자 안기부는 전문가를 파견, 위조된 일본인 여권을 갖고 있던 김현희가 한국인임을 입증, 국내로 데려올 수 있었다. 사건 당시 중동을 여행하던 안기부 요원이 비상을 걸어 김승일-김현희가 바레인 공항에서 체포되는 데 일조했다. *2003년 미국 CIA는 후세인이 핵무기를 개발중이라고 판단, 부시가 이라크 침공작전을 펴는 근거를 제공하였으나 戰後(전후)에 오판으로 밝혀졌다. *1973년 10월 이스라엘은 이집트가 침공할 것이란 정보를 너무 늦게 확인, 이집트에 선제공격을 허용, 위기에 몰리는 바람에 한때 핵폭탄 사용까지 검토하여야 했다. ‘눈 공작’ 역사를 바꾼 간첩 사건 중 한국인의 운명에도 영향을 끼친 사례가 요사이 미국과 일본에서 연구되고 있다. 국가 정책을 좌우하는 정부의 사령탑에 신념으로 무장한 간첩이 숨어 있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를 실감 나게 하는 사례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소련 영웅’ 칭호를 받은 적이 있는 러시아의 작가 블라디미르 카르포프는 2000년에 <태평양 전쟁은 피할 수 있었다. (미국의) 對日 최후통첩을 유도한 사람은 스탈린이다>는 요지의 글을 썼다. 그는 <(미국 재부부 高官이자 IMF 창립을 주도했고 그 전에 이미 소련 정보기관에 포섭되었던 간첩) 해리 덱스터 화이트가 (소련 보안기구 NKVD 정보원) 아흐메로프와 파블로프가 설계한 대로 행동하였기 때문이다>고 주장했다. 소련은 화이트를 조종, 당시 재무장관 모겐소를 통해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일본을 자극, 미국을 공격하도록 하는’ 건의서를 쓰게 했다는 것이다. 소련 정보기관은 화이트의 이름을 빌려 이 작전을 ‘눈 공작’(Operation Snow)라고 불렀다. 소련이 미국과 일본 사이의 전쟁을 유도하려 한 것은 ‘일본이 미국과 전쟁을 하면 소련을 공격할 자원이 사라지기 때문’이었다. 외교 안보 정책 격월간지 ‘포린 어페어’를 발간하는 미국의 권위 있는 ‘외교협회’의 국제경제담당 국장 벤 스틸이 올해 쓴 ‘브레턴우즈의 전투’라는 책에 카르포프의 글이 인용되었다. 이 공작의 주인공은 당시 27세이던 소련 공작원 파블로프였다. 1941년 봄에 그는 워싱턴으로 파견되었다. 그의 임무는 (미국 공산당원이자 미국 내 소련 간첩망의 요원이던 휘테카 챔버스를 통하여 꾸준히 정보를 제공해왔던) 화이트를 활용하는 일이었다. 파블로프는 1996년에 자신의 체험담을 《눈 공작》이란 책으로 출판하였다. 이 책에서 파블로프는 1941년 5월, 워싱턴에 도착하자마자 모겐소 재무장관이 가장 신임하던 측근이던 화이트 국장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썼다. 그는 중국의 ‘빌’로부터 받은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빌’은 리투아니아 출신의 소련 정보원 조셉 카츠가 그 2년 전 화이트에게 소개해준 ‘중국 전문가’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