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칭, 자택서 美 영화 보다 무방비로 강제연행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2013.11.03 06:11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346>
화궈펑(오른쪽 첫째)이 공안부장 시절, 천융구이(陳永貴?왼쪽 셋째), 우구이셴(吳桂賢·오른쪽 셋째),
덩샤오핑(鄧小平?왼쪽 둘째) 등 3명의 부총리와 함께 장칭(가운데)을 따라 농업시범구 다짜이(大寨)를 방문하고 있다.
1974년 봄, 다짜이 교외. [사진 김명호]
왕훙원(王洪文·왕홍문)과 장춘차오(張春橋·장춘교) 체포에 성공한 화궈펑(華國鋒·화국봉)과 예젠잉(葉劍英·엽검영)은 왕둥싱(汪東興·왕동흥)과 머리를 맞댔다. 나머지 두 사람, 야오원위안(姚文元·요문원)과 장칭(江靑·강청) 처리 방법을 의논했다.
왕둥싱은 거침이 없었다. “장칭은 지금 중난하이에 있다. 체포조가 대기 중이다. 당장 잡아오면 된다. 야오원위안은 이곳으로 유인하자. 마오 주석의 원고는 중난하이 밖을 나갈 수 없다. 주석의 선집 출판에 관한 건이라고 하면 당장 달려온다. 전화는 화궈펑 동지가 직접 해라.”
화궈펑의 전화를 받은 야오원위안은 “왕훙원·장춘차오 동지와 마오 주석 선집 5권 출판에 관한 문제로 회의 중이다. 당신의 의견이 필요하다”는 말을 듣자 “지금 곧 가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화궈펑과 예젠잉은 더 이상 회의실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왕둥싱도 부하들에게 야오원위안의 체포를 지시하고 자리를 떴다.
서류가방을 들고 나타난 야오원위안을 왕둥싱의 부하들이 에워쌌다. 화궈펑 명의의 격리심사 명령서를 들은 야오원위안은 데리고 온 경호원을 불렀다. 어느 구석에 있는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체포를 지휘한 조장이 구술을 남겼다. “야오원위안은 계속 고함을 질러댔다. 격리심사 장소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도 ‘너희들은 어디 소속이냐’며 그칠 줄을 몰랐다. ‘덩샤오핑(鄧小平·등소평)이 시켰느냐’는 말까지 했다. 준비한 수건으로 입을 틀어막자 잠잠해졌다.”
장칭은 누가 뭐래도 마오쩌둥의 부인이었다. 왕둥싱은 중앙경위국 부국장 장야오스(張耀祠·장요사)에게 체포를 지시했다. “전화로 화궈펑 총리의 명령을 받았다고 해라. 당 중앙이 격리심사를 결정했으니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고 하면 된다. 문건 상자 열쇠를 뺏고, 전화선을 끊어버려라. 여자 간호사를 한 명 데리고 가라.”
장야오스도 구술을 남겼다. “마오 주석 사망 후, 장칭은 중난하이 201호에 머물고 있었다. 몇 명만 데리고 갔다. 주변에 깔린 게 모두 직속 부하들이라 몰려갈 필요도 없었다. 매일 다니던 곳이라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장칭의 부속실은 평소와 다를 게 없었다. 비서, 경호원, 의사, 간호사, 운전기사들이 뒤섞여 포커 놀이가 한참이었다. 장야오스 일행을 보자 손을 흔들었다. “안에 있느냐”고 손짓을 하자 다들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장야오스는 장칭의 운전기사에게 방탄차를 문 앞에 대기시키라고 일렀다.
장칭은 소파에 앉아 클라크 게이블이 나오는 미국 영화를 보고 있었다. 장야오스를 보자 “무슨 일이냐”는 표정을 지었다. 장야오스는 부동자세로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장칭! 너는 중앙의 경고를 무시했다. 패거리를 만들어 당을 분열시키고 당권 찬탈 음모를 꾸몄다. 이에 중공 중앙은 너를 격리심사에 처하기로 결정했다. 즉각 집행한다.”
듣고만 있던 장칭이 몸을 꼿꼿이 하고 되물었다. 두 사람 사이의 대화가 몇 년 전 공개됐다. “중공 중앙 누구의 결정이냐.” 장야오스는 말문이 막혔다. 이실직고하는 수밖에 없었다. “화궈펑과 예젠잉 부주석의 명령을 받았다.”
동행한 행동조장이 언성을 높였다. “서둘러라. 빨리 이곳을 떠나야 한다.” 장칭은 못 들은 체했다. 질문을 계속했다. “이 방에 있는 문건들을 어떻게 하라는 지시도 받았나.” “우리가 보관하겠다. 열쇠를 내놔라.” 장칭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건 안 된다. 나는 당에 책임이 있는 사람이다. 화궈펑에게 직접 전달하겠다.” 장야오스는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화궈펑에게 편지를 써라. 서류와 함께 전달하겠다.”
장칭은 앉은 자리에서 화궈펑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다. “너의 명령을 받았다는 사람들이 내게 격리심사를 통보했다. 당 중앙의 결정인지, 사실 여부를 알 수 없다. 편지와 함께 문건 상자 열쇠를 이들에게 넘긴다.”
중요 서류와 열쇠가 담긴 봉투를 건넨 장칭은 복장과 머리를 가다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왕둥싱이 간호사를 딸려 보낸 것은 이유가 있었다. 장칭은 평생 소변에 시달렸다. 마오쩌둥이 선물한 요도염 때문이라고 하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이날도 방문을 나가기 전 화장실에 들어가 30분을 허비했다.
장칭은 평소 이용하던 방탄차를 타고 격리심사가 진행될 곳으로 이동했다. 선도차량과 중무장한 8341부대원을 태운 차가 뒤를 따랐다. 베이징 중요 거리의 교통경찰들은 눈치가 빨랐다. 홍색등을 무시하고 질주하는 차량을 제지하지 않았다. 아주 높은 사람이 타고 있는 게 분명했다.
격리심사장에 도착한 장칭을 지켜본 사람이 기록을 남겼다. “차에서 내린 장칭은 당황하는 기색이 없었다. 여기가 어디냐, 언젠가 와본 곳 같다며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기억을 더듬는 듯했지만 잠시였다. 무장요원들에게 끌려 격리심사실로 들어갔다.”
거의 같은 시간, 베이징 위수사령관 첸시롄(陳錫聯·진석련)의 명령을 받은 무장병력이 칭화·베이징 양 대학을 급습해 홍위병 두목들을 체포했다. 4인방의 주무대였던 신화통신사와 인민일보, 중앙TV도 화궈펑과 예젠잉이 파견한 사람들의 지시에 순순히 따랐다. 문혁 10년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권력과 금력처럼 허망한 것도 없다. 아무리 망할 것 같지 않아도, 인심을 잃으면 망하는 건 하루아침이다. 4인방도 그랬다.
김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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