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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에 보내는 편지 - 남쪽에 온 풍산개와 북에 간 진도개의 엇갈린 운명 (15)

淸山에 2013. 9. 9. 16:32

 

 

 

 

 

 

북녘에 보내는 편지

남쪽에 온 풍산개와 북에 간 진도개의 엇갈린 운명 (15)
by 주성하기자   2013-09-09 8:46 am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 시간에 제가 탈북 1호견 멍구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는 멍구처럼 나름 목숨 걸고 한국에 오지 않고 꽃가마를 타고 당당하게 분계선을 넘어 남쪽에 내려와 숱한 사람들의 엄청난 관심과 배려 속에 사는 개도 있습니다.

 

북한이 남쪽에 선물로 보내준 풍산개가 바로 그러합니다.

 

북한이 풍산개를 선물로 보내준 것은 두 번입니다. 한번은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을 했을 때 김정일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선물한 생후 2개월 된 풍산개 한 쌍이고, 또 한 번은 지난해 2월 문선명 통일교 총재의 생일을 맞아 김정은이 보낸 풍산개 한 쌍으로 모두 4마리입니다.

 

2000년에 선물로 준 풍산개는 당시 북에서 ‘자주’와 ‘단결’이란 이름을 붙여 선물했습니다. 그 답례로 김대중 대통령은 남쪽에서 유명한 진돗개 한 쌍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남쪽에 온 풍산개 부부는 그 이름을 우리와 두리로 개명했습니다. 솔직히 개 이름에 자주, 단결이란 이름을 붙이는 것은 좀 촌스러운 것이거든요.

 

 


한국에 갖 온 새끼 때의 우리와 두리와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 2010년 서울대공원의 우리 두리.

 

이 개들은 청와대에서 좀 살다가 나중에 서울대공원에 보내줘서 살았습니다. 여기 대공원은 정말 살기 괜찮습니다. 마음껏 뛰놀기는 그렇지만 일단 먹고 싶은 것은 마음대로 먹고 건강검진도 꼬박꼬박 받고 그러거든요.

 

남한에 온 우리와 두리는 다음해에 새끼 25마리를 낳았습니다. 이 새끼를 국가 안보기관 종사자들에게 나눠줬는데, 이 새끼가 커서 다시 새끼를 낳고, 이렇게 해서 이제는 2000년에 온 우리와 두리의 자손들이 한국에 수백 마리가 됩니다.

 

후손이 한 5대쯤 이어져서, 이제는 전국 동물원에도 있고, 여러 가정에서 자라고 그럽니다. 자손이 5대가 번창했으니 우리와 두리는 한국으로 온 13년 만에 사람으로 치면 고조 손자, 손녀까지 본 셈입니다.

 

개의 평균 수명은 보통 13년~15년 정도라고 하는데, 이제는 우리와 두리도 사람으로 치면 90세 노인이 됐습니다.

 

2년 전에 암컷인 두리는 노환이 와서 새끼집을 들어내는 큰 수술을 받았습니다. 갑상선에도 이상이 생겨 털도 많이 빠졌습니다.

 

두리에 비해 수컷인 우리는 여전히 기력이 훨씬 좋습니다. 평소에도 이 부부는 사료를 주면 암컷인 두리가 먼저 먹을 수 있게 수컷인 우리가 뒤에서 기다렸다가 먹을 정도로 서로 금술이 좋았다고 합니다.

 

여기 남쪽은 북한과 다르게 남자가 여자를 엄청 배려합니다. 우리가 이런 남쪽의 문화를 언제 체득했는지 두리를 끔찍이 아끼는 것을 보면 참 신통방통합니다.

 

두리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는 언제 돌아오나 우리가 애타게 기다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와 두리는 이제 세상을 살날이 얼마 안 남았습니다.

 

그래도 이 한반도에서 이 풍산개 부부만큼 백년해로하면서 잡혀 먹힐 걱정이 없이 천수를 누리고 수백 마리의 자손을 남긴 팔자 좋은 개가 어디 있겠습니까.

 

지난해에 김정은이 문선명 총재에게 보낸 풍산개는 그 이름이 정주와 안주입니다. 문 총재의 고향이 평안북도 정주이고, 그의 부인의 고향이 평안남도 안주이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을 붙였습니다.’

 

문선명 총재는 지난해 9월 92세로 세상을 뜨고, 지금은 부인인 한학자 여사가 통일교 총재를 맡고 있습니다.

 

 

정주와 안주 부부는 지금 통일교 본부에서 잘 크고 있습니다. 이들의 팔자 역시 우리와 두리의 팔자에 못지않게 좋습니다. 이들도 자손들 5대까지 남길 때까지 편안하게, 먹고 싶은 것을 다 먹고, 건강 검진 주기적으로 받으면서 잘 살 것이라 믿습니다.

 

이렇게 우리와 두리, 그리고 정주와 안주는 비록 몸은 북한에서 태어났지만, 어떻게 선물로 선택이 돼서 남쪽으로 공식적으로 와서 정말 최고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북에 있을 이들의 형제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아마 우리와 두리의 부모 형제들은 이미 오래 전에 죽었을 것 같습니다. 북에선 개가 죽으면 기르던 개라고 해도 무조건 개장을 해서 먹지 그냥 파묻는 법이 없으니 아마 그런 운명에 처해졌겠죠.

 

더 궁금한 것은 2000년에 우리와 두리가 남쪽에 오는 대신 북에 보내진 진도개 한 쌍의 운명은 어떻게 됐을까 하는 겁니다.

 

 

물론 선물이니 북에서 나름 관리했겠지만, 북한이야 동물원에 보내져도 먹을 것이 없어 호랑이 같은 귀한 동물도 죽는 세상인데, 이들이 오랫동안 살았을까 의문입니다.

 

우리와 두리와 달리 이 진돗개들은 남쪽에 살았으면 주인의 보살핌 속에서 천수를 누렸을 겁니다. 남쪽도 순종 혈통의 진돗개들은 정말 잘 보살피거든요.

 

그런데 북에 간 진돗개들은 운이 나쁘게 선물로 간택돼서 북한에 가서 죽게 됐으니 이 뒤바뀐 운명, 참…정말 개 팔자도 곡절이 없지 않다 말하기 힘듭니다.

 

어떻게 보면 분단국가에서 사는 개의 운명도 사람과 닮지 않았습니까. 이 땅에는 혈육이 남과 북으로 갈라져 그리움에 사는 이산가족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남쪽에 사는 이산가족들은 자신들은 잘 먹고, 잘 살고, 건강검진 주기적으로 받으면서 장수를 하면서도 늘 북에 남겨둔 부모 형제 때문에 괴로워하고 고민합니다.

 

반면에 남쪽에서 태어났는데 이런저런 사연 때문에 북에서 살게 된 사람들은 평생 남쪽 출신이라 박해받으면서 무슨무슨 행군만 열심히 하다가 제명에 못사는 경우가 태반이었죠.

 

이런 사람들이 상봉이라도 자주 해서 서로의 소식을 주고받으면서 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남쪽 사람은 북쪽 혈육의 소식을 알고 맘이라도 편하고, 북쪽 사람은 남쪽 혈육에게서 경제적 도움도 받으면 오래 살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이 땅에서 이산가족 상봉은 정치적 이해관계의 희생물이 돼버렸습니다.

 

다행히도 이번 추석 이후에 금강산에서 이산가족 상봉이 재개된다니 이제부터라도 남과 북의 통치자들이 이산가족 상봉만큼은 통이 크게 계속 이어가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