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이야기. 냉면
한국은 풍토상 밀의 생산이 적어 밀가루로 만든 국수는 특별한 날에 먹는 별식처럼 여겨졌다. 반면 메밀가루와 녹말을 섞어 만든 메밀국수는 비교적 일반 백성들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식이었다. 특히, 메밀수확이 많았던 서울 이북지방에서 메밀로 만든 국수가 발달했다. 메밀이 주재료인 메밀국수 중 하나인 냉면을 언제부터 먹기 시작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냉면의 주 원료인 메밀이 고려시대 몽골로부터 전해진 것으로 보아 그 이후에 생겨난 음식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현재는 냉면이 여름철을 대표하는 음식이지만 과거에는 겨울에 즐기는 별식이었다고 한다. 한겨울 땅에 묻어놓은 독에서 살얼음 깨가며 동치미를 떠와 뜨끈한 온돌방에서 후루룩 말아먹는 냉면, 기가 막힌 맛이었으리라.
함흥냉면은 질긴 면발과 맵고 진한 냉면 비빔장이 특징이다. 평양냉면의 면에 비해 함경도의 특산물인 감자 전분이 다량으로 포함되어 있어 면발이 더욱 차지다. 식초와 겨자를 곁들여 먹고 식전에는 따뜻한 육수를 먹는 것이 정석이다. 면에는 매운 양념을 먹고 따끈한 육수를 곁들이는 이유는 함경도 지역의 혹독한 겨울을 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가자미식해를 곁들여 즐기는 것인데 흔히 접할 수 있는 회냉면이 이와 같은 형태다.
황해도 냉면은 평양식과 비슷한 물냉면이다. 차이점이라면 면이 좀더 굵고 함흥냉면처럼 쫄깃하다는 것. 냉면 국물은 평양의 그것보다 좀 더 진한 맛이다. 돼지고기로 만든 육수를 주로 사용하고 간장을 더했기 때문이다.
각 지방을 대표하던 냉면이 서울 이남지역에서 대중적으로 퍼지게 된 계기는 6.25 전쟁과 관련 있다. 북쪽의 피난민들이 내려오고 휴전이 된 후에 자리를 잡으며 고향에서 먹던 냉면을 찾게 돼 자연스럽게 수요와 공급이 생긴 것이다. 만들어지는 장소가 바뀜에 따라 지방색에 맞게 그 형태가 변하기도 했다. 동치미 국물을 주로 사용하던 평양냉면은 맑은 소고기 육수를 사용한 냉면이 주가 되었고, 꿩 고기 육수로 만든 평양냉면은 차츰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함흥냉면은 감자대신 고구마 전분을 넣어 만든 면이 성행하기 시작했고, 그 위의 고명이 지역에 따라 가자미식해 대신 명태무침이나 홍어무침이 자리매김했다. 평양식이나 함흥식에 비해 황해도식 냉면은 그 모습이 많이 사라졌다. 현재는 황해도식 냉면육수에 까나리액젓을 더한 백령도식 냉면이나, 옥천군에 위치한 냉면집에서 그 자취를 찾아 볼 수 있다. 이북식 냉면과 별개로 탄생한 냉면도 등장했다. 바로 진주지방의 냉면인데, 해물 육수를 사용하고 소고기육전을 고명으로 얹는 방식이다.
조선닷컴 라이프미디어팀 정재균 PD jeongsan5@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