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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江의 새벽' - 박정희 소장은 왜 일어났던가?

淸山에 2013. 5. 18. 06:00

 

 

 

 

 

'漢江의 새벽' - 박정희 소장은 왜 일어났던가?
삼국지보다 더 재미 있는, 1961년 5월16일 군사혁명에 대한 결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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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江의 새벽
저 자:趙甲濟
펴낸곳:조갑제닷컴
판 형:신국판
페이지수:680 쪽
출판일:2011년 5월16일
판매가격: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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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전 박정희 少將은 왜 일어났는가?

‘朴正熙(박정희) 연구자’ 趙甲濟(조갑제) 기자가 5·16 군사혁명 50주년을 맞아 ‘朴正熙 少將(소장)으로 대표되는 軍 장교단이 왜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게 되었는가’를 한 권의 책으로 정리했다. 10여 년 전 <조선일보>와 <월간조선>에 연재, 출판한《朴正熙 傳記(全13권)》에서 5·16 전후 부분을 뽑아 보완하고, 事後(사후) 평가 부분을 덧붙였다.

趙 기자는 [1부 實錄· ‘民族史 최대 사건’ 5·16 군사혁명]에서 박정희 少將이 왜 쿠데타를 일으켰고, 그 쿠데타는 어떻게 진행되었으며, 쿠데타 성공 후 자유민주주의가 기능할 수 있는 경제력과 제도를 만들며 국가를 改造(개조)해나가는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쿠데타 모의를 알면서도 막지 않았던 張都暎(장도영) 육군참모총장, 5·16 새벽 총성을 듣고 수도원으로 피신해 軍 통수권을 사실상 포기했던 張勉(장면) 총리, 張 총리를 대신해 진압군을 동원해야 할 책임이 있었으나 “올 것이 왔다”며 쿠데타를 반기고 軍政(군정)이 안정되도록 도운 尹潽善(윤보선) 대통령, “우리도 인간답게 살아보자”며 쿠데타를 지지한 60%의 서울 시민들, 쿠데타 모의가 진행 중인 것을 알고도 고발은커녕 응원했던 상당수의 軍 장교들 등 박정희의 쿠데타가
성공할 수 있도록 도운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은 역사의 大勢를 탄 쿠데타였음을 증명한다.

[2부 50년 後· 朴正熙는 무엇을 혁명하였는가?]는 ‘군사혁명 50년 후 다시 본 朴正熙’다. 선동·과장·우스개가 없는 너무나 진지한 朴正熙의 연설문과, 근대화 혁명가로서 가졌던 격정과 비전을 담고 있는 著書 《국가와 革命(혁명)과 나》(1963년, 향문사)를 통해 그의 ‘혁명적 사상’을 분석했다. <아사히 신문> 서울특파원 출신 다나카 메이 교수(拓殖 대학)는 그를 ‘한국의 봉건과 싸우다 전사한 사람’이라고 해석했다. 황장엽 前 북한노동당 비서의 는 '비상조치로써 비상사태를 해결한 사람'이라고 朴正熙를 높게 평가하였다. 프란시스 후쿠야마 교수(존스홉킨스 대학)는 ‘역사적·문화적 조건에선 도저히 대기업을 만들 수 없는 한국에 박정희, 군인, 개신교가 있어 대기업이 생겨날 수 있었다’고 평가한다. 연두순시 때 '경제개발을 뒷받침할 과학기술은 있는가'란 결정적 질문으로써 경제관료를 당황하게 만들어 최초의 국가 차원 과학기술 진행 계획을 만들게 한 것도 박정희였다.

역사는 또 다른 朴正熙를 불러낼 것인가

저자는 머리글에서 朴正熙를 ‘독재자’로 모는 이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西歐(서구)의 先進(선진) 민주주의를 기준으로 박정희를 독재자라고 단정하는 것은, 메이저 리그의 통계를 기준으로 삼아 동네 야구 선수들을 혹평하는 것과 같다. … 박정희는 물론 두 번(5·16과 유신) 쿠데타를 하였다. 그러나 1963, 1967, 1971년 세 차례 선거를 통하여 당선된 대통령이었다. 이 기간은 독재가 아니었다. 독재적 기간이 있었다고 하여 그의 통치기간 전체를 독재로 모는 방식의 표현(독재자 운운)은 잘못 된 것이다. … 자유민주주의가 기능할 수 있는 경제력과 제도를 만든 점에서 李承晩(이승만)과 함께 그를 한국 민주주의의 진정한 건설자로 보는 게 정당한 역사적 평가일 것이다.”

4·19 이후 전개된 자유의 放縱(방종)이 5·16을 불렀듯이 한국의 민주화는 자유를 파괴하는 자유를 공산세력에 선물함으로써 조국을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고 있다. 자유통일의 關門(관문)을 지나 一流(일류)국가로 나아가야 할 시점에서 ‘민주화의 함정’에 빠져있는 한국은 또 다른 박정희를 역사의 무대로 불러낼 것인가? 2011년,《漢江의 새벽》으로 민족사 최대사건 ‘5·16 군사혁명’을 돌이켜 보며 自問(자문)해 보자.




머리글_ 역사가 또 다른 朴正熙를 불러낼 것인가?
화보_ 黑白시대의 주인공들
1_ 1부 實錄· ‘民族史 최대 사건’ 5·16 군사혁명
1장 혁명 前夜
2장 漢江의 새벽
3장 국가 改造
2_ 2부 50년 後· 朴正熙는 무엇을 혁명하였는가?




趙甲濟(조갑제)

1945년 10월 일본에서 났다가 이듬해 고향인 경북 청송으로 돌아왔다.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수산대학(현재의 釜慶大)에 들어가 2학년을 마친 뒤 군에 입대, 제대 후 1971년 부산의 국제신보 수습기자로 입사해 언론생활을 시작했다.

문화부, 사회부 기자로 일하면서 경찰, 공해, 석유분야를 다루었는데 1974년 중금속 오염에 대한 추적 보도로 제7회 한국기자상(취재보도부문·한국기자협회 제정)을 받았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현장 취재를 했다. 1980년 6월 신문사를 그만둔 뒤 월간잡지 <마당> 편집장을 거쳐 1983년 조선일보에 입사, 月刊朝鮮 편집장으로 일했다.
저자가 月刊朝鮮 편집장으로 활동하던 시절 月刊朝鮮은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보도로 1994년 관훈언론상(관훈클럽 제정)을 수상했고 <6·29 선언의 진실> <12·12 사건-장군들의 육성 녹음테이프> 등 많은 특종을 했다. 1996년부터 1년 간 국제 중견 언론인 연수기관인 하버드대학 부설 니만재단에서 연수를 했다. 2001년 월간조선이 조선일보사에서 分社하면서 (주)月刊朝鮮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지금은 ‘조갑제닷컴’ 대표로 있다.
저서로는 ≪석유사정 훤히 압시다≫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 ≪有故≫ ≪국가안전기획부≫ ≪軍部≫ ≪이제 우리도 무기를 들자≫ ≪朴正熙≫(전 13권) 등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