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버는 민속 전설을 소재로 한 이 오페라에서 애국심과 국민정신을 고양시켰다.
서곡은 오페라의 주요 테마를 사용해 극적인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묘사해 주고 있다.
특히 혼에 의해 연주되는 주제는 깊은 산림의 정경을 묘사하면서
신비스럽고 환상적인 오페라의 배경을 설명해 주고 있다.
베버 - 오페라 <마탄의 사수>중 '서곡'
마탄(魔彈)의 사수(射手)
독일의 옛 전설을 바탕으로 한 3막극으로 1821년 6월 베를린에서 초연되었는데,
초자연적이고 비현실적인 민속 전설에서 소재를 택하여
당시 애국심이 열렬했던 국민 정신을 고양시켰다.
- 등장 인물 -
오토카르(바리톤) : 보헤미아의 영주
아가톄(소프라노): 쿠노의 딸
카스파르(바리톤) : 사냥꾼
은자(바리톤)
신부를따르는 아가씨들(소프라노)
쿠노(베이스) : 삼림관
엔혠(소프라노) : 이가테의 친구
막스(테너) : 사냥꾼
리안(테너) : 부자 농부
자미엘(대사만 나옴)
줄거리
대대로 내려온 관습에 의해 정기적으로 열리는
사격 경기에서 우승을 하는 자만이호림관의 딸 가가테와 결혼하고
동시에 호림관 자리를 물려받을 수 있다.
젊고 용감한 사냥꾼 막스는 호림관의 딸 아가테와 사랑하는 사이인데,
어쩐 일이지 별안간 손이 무디어져 목표물을 맞출 수 없게 된다.
사격 경기를 내일로 앞둔 막스는 고민하게 된다.
엉큼한 생각을 갖고 있는 사냥꾼 카스파르는
악마에게 희생시키려고 막스에게 마탄을 얻도록 유혹한다.
사냥꾼들 사이에서 전해 오는 전설에 의하면
'악마의 힘을 빌리면 사격의 명수가 될수있다'고 한다.
악마의 제자가 되면 마법을 쓰게 만든 7개의 탄환을 받게 되는데,
그것은 백발백중 명중한다.
그러나 마지막 탄환은 악마가 쏘라는자에게 명중하게 된다.
이 탄환을 사용하는 자를 마탄의 사수라 한다.
마탄을 입수한 막스는 사격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지만
카스파르의 음모로 7발 중의 최후의 1발은 아가테에게 명중한다.
그러나 아가테가 지니고 있던 장미꽃으로 인해 마탄은 카스파르를 맞추고,
막스는 모든것을 고백하고 도사의 도움으로 죄를 용서받는다.
- 제 1막 오토카르 백작 영내의 숲 속에 있는 작은 술집 앞 -
젊은 사냥꾼들이 모여 사격 연습을 하고 있으며
그 곳에서는 함성이 일어나고 있다.
그것은 내일로 다가온 경기에 대한 예비연습이다.
이 경기는 이 지방으이 호림관 쿠노가 늙었기 때문에
사격의 명수를 뽑아 새로 임명하는 동시에 당선자는
쿠노의 딸인 아가테와 결혼을 시키려고 여는 것이다.
또한 사격 당일에는 이 넓은 삼림 지대의 영주인
오토카르 백작도 참석하여 그 후계자를 선택하기로 되어 있다.
그런데 아가테는 이미 사랑하고 있는 막스라고 하는 젊은 사냥꾼이 있었다.
그러나 막스는 이 날 예비연습에서
한번도 과녁을 맞추지 못했기 때문에 걱정하고 있었다.
이 때 악마인 자미엘에게 혼을 팔았다는 마탄의 사수인 카스파르가 나타난다.
그는 사격대회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좋은 비방이 있다면서
비관하고 있는 막스를 유혹하여 오늘 밤 12시 교회의 종이 울릴 때
늑대골에서 만나 마법의 탄환을 만들자고 약속한다.
- 제 2막 쿠노의 집 -
아가테는 그의 사촌 동생인 엔헨과 함께
내일 열리는 대회의 승리자와의 할 결혼식 준비로 바쁘다.
그녀는 막스가 찾아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벽에 걸린 선조의 초상화가 떨어진 데 대해
불길한 예감이 들어 걱정하게 된다. 엔헨은 그녀를 위로한다.
아가테는 달밤이 보이는 창문에 기대어
'사랑과 번민은 같이 오네.
조용히 자다 깨어난 기도의 노래를 하늘에 전하자.
그대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를 노래한다.
막스는 늑대골에서 폭풍속에 떨면서 탄환을 만들고 있다.
마지막 탄환이 그의 애인인 아가테를 명중케 하려는
카스파르의 흉계인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다. 그러나
마지막 탄환이 다 되었을 때 막스는 실신하여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만다.
- 제 3막 아가테의 방 -
아가테는 마음이 진정치 못한 채 신에게 비는 카바티나인
'검은 구름이 뒤덮여도 해는 하늘에 뜨며 신의 마음은 변함 없으리
그의 눈은 분명히 진리를 분별한다'라고 노래한다.
무대는 사격 경기장. 막스는 마탄을 사용하여 영예의 승리를 하는데,
그 때 마지막에 쏜 탄환이 카스파르에게 맞아
카스파르는 피투성이가 되어 나무 위에서 떨어지고 만다.
여기서 사실이 발각되어 버린다.
영주는 그의 행동에 격분하여 그들을 추방하려 하는데,
그 때 이상한 은자가 나타나 영주에게 막스의 잘못을 용서하게 한다.
막스는 1년후에 아가테와 결혼하여
산림보호관의 후계자가 될 것을 공인 받는다.
모든 사람들은 신의 영광과 영주의 인자함을 찬양하며
정의가 승리함을 축하하는 화려한 합창으로 끝난다.
"Und ob die Wolke sie verhulle"
엘리자베트 그륌머가 노래하는 아가테의 카바티나
"Einst traumte meiner sel'gen Base... Du zurnest mir?"
리타 슈트라이히의 앵헨이다. 로망스, 레치타티보에 이은 아리아.
<'마탄의 사수'의 아가테 역으로 분한 그륌머>
푸르트벵글러의 마지막 오페라 공연이 된 1954년 7월 26일
잘쯔부르크 페스티벌 공연의 실황녹음으로,
그 동안 수많은 마이너 레이블들에 의해 해적판으로 발매되어 오다가
최근 EMI에서 정식으로 발매되었다.
수많은 해적판으로 발매된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다지 좋지 않은 음질에도 불구하고 가히 기념비적인 명연주로 꼽히고 있다.
= 엘리자베트 그륌머(Elisabeth Gruemmer, 1911-1986) =
모든 것이 파괴되고 허물어진 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의
피폐하기 이를 데 없는 상황 속에서도 독일은 오히려
뛰어난 성악가들을 여럿 배출했습니다.
이 뛰어난 신세대 성악가들 중에는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와
헤르만 프라이를 위시한 남성 가수들도 많았습니다만,
남성 가수들보다는 여성 가수들 - 특히 모짜르트와
슈트라우스 오페라에서 발군의 활약을 펼친 여성 가수들이 많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손위인 가수가
엘리자베트 그륌머(Elisabeth Gruemmer)입니다.
독일계 성악가들이 국제적인 명성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서야 하는 무대인 빈을 중심으로 활약하지 않고
끝까지 베를린에 남아서 활동한 때문에 동시대에 빈을 중심으로 활약한
다른 소프라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훨씬 덜 알려진 가수입니다만,
그 목소리가 지닌 매력과 음악적 재능에 있어
결코 그들에 뒤지지 않는 훌륭한 예술가였습니다.
= Karl Maria F. Ernst von Weber (1786∼1826) =
독일 작곡가. 오이틴(지금의 올덴부르크) 출생.
극장의 무대감독과 악장을 겸하고 있었던 프란츠 안톤과
그의 후처 사이에서 태어났다.
출생한 이듬해에 아버지가 순회극단을 조직하여
각지를 순회했기 때문에 정규학교 교육을 받지 못하였다.
그러나 6세부터 무대에 서게 되어 일찍부터 극장일을 익혔던 것이
훗날 오페라작곡가·지휘자로 활동하게 되는 바탕이 되었다.
W.A. 모차르트와 친척관계(아버지의 형이 모차르트의 아내 콘스탄체의 아버지)였고
또 아들을 모차르트와 같은 신동으로 키우려는 아버지는 음악교육에 주력하였다.
1798년에 잘츠부르크에서 J.M. 하이든(F.J. 하이든의 동생)에게 사사하여
습작 《6개의 푸게타》가 작품 1 로 출판되었다.
이해에 최초의 오페라 《사랑과 술의 힘》을 시도하였고,
이어서 《숲속의 처녀(1800)》
《페터 시몰과 이웃들(1801)》을 작곡하여 상연되었다.
1803년 빈에서 작곡가 G.J. 포글러에게 사사하였고
이듬해에 포글러의 천거로 브레슬라우오페라극장의 악장으로 취임하였다.
그러나 젊은 악장의 정력적인 활동이 주위의 반감을 사게 되어
《뤼베찰(1805)》은 상연되지 못하였다.
1806년 카를스루에의 오이겐공(公)의 악장으로 있으면서
두 곡의 교향곡을 작곡하여 호평을 받았다.
1807년에 슈투트가르트의 루트비히공의 비서 겸 음악교사가 되었으나
공의 방탕한 생활에 휘말려 음악생활은 정체되었고
10년에는 공금형령 혐의로 추방처분을 받았다.
이 불명예스러운 사건을 깊이 반성한 그는
만하임으로 옮기고 연주여행을 하며 《질바나(1810)》
《아부하산(1811)》을 상연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13년 프라하시립오페라극장의 지휘자가 되었으나
창작할 시간이 적어 사직하고 17년 드레스덴궁정오페라극장의
악장으로 취임하였고 가수 카롤리네 브란트와 결혼하였다.
그는 이탈리아 오페라의 세력에 대항하여
독일어 오페라 상연에 힘쓰면서 오랫동안 구상해 왔던
《마탄(魔彈)의 사수》의 작곡에 몰두하여 20년에 완성하고,
21년 6월에 베를린에서 초연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23년 빈에서 초연한 《오이뤼안테》는 대본이 약하여
실패로 끝나고 이때부터 지병인 폐결핵이 악화되어 생활도 궁하게 되었다.
25년 런던의 코벤트가든극장의 의뢰로 《오베론》 작곡에 착수하였고,
26년 런던에서 초연을 지휘하여 성공을 거두었으나
과로로 병이 악화되어 6월 5일 런던에서 죽었다.
베버는 모든 분야에 걸쳐 작품을 남겼으나 본질적으로는 오페라음악가였다.
오페라를 중심으로 낭만주의를 추진하고
《마탄의 사수》로 독일국민오페라를 확립하였다.
다른 오페라는 현재 거의 상연되지 않으나
독창적인 관현악법을 구사한 서곡은 널리 애호되고 있다.
피아노곡과 협주곡 등 많은 기악곡 중에는 《무도에의 권유(1819)》,
피아노와 관현악을 위한 《콘체르트슈튀크(1821)》가
낭만적 표제음악의 선구로 주목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