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先人(선인)들은 그런 경우에 風鑑(풍감)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이때 ‘풍’자는 ‘바람 풍’자가 아니고 ‘모습 풍’자다. 그리고 ‘감’자는 ‘본다’는 의미의 글자다. 그러니까 사람을 그 외모, 다른 말로 印象(인상)을 보고 판단한다는 것이다.
인상을 이루는 것으로는 먼저, 그 사람의 얼굴 생김새, 골격과 같은, 본인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타고난 외적 資質(자질)이 있다. 예를 들면 키가 크면 싱겁다, 눈이 작으면 간이 크다 하는 식이다. 이는 우리말 발음은 같은 ‘인상’이나, 한자로는 ‘印象’이 아니라 ‘人相’이라 한다.
또 한 가지는 化粧(화장), 헤어스타일, 옷차림 등 그 인물의 마음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다. 둘 중 후자가 그 사람의 인품과의 隣接性(인접성)이 더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그것이 그 사람의 됨됨이를 판단하는 데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겠다. 사원 채용 면접시험 보러 가는 사람에게 갈치은빛 양복 입지 마라, 머리 염색하지 마라, 귀고리 떼고 가라 하는 것도 다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사람에 따라 그 생김새, 곧 人相(인상)이 몇 번을 보아도 낯이 익지 않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아주 강한 印象(인상)을 주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강한 인상을 준 경우로는 朝鮮(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를 들 수 있다. 작고한 국문학자 金台俊(김태준)이 天台山人(천태산인)이라는 필명으로 쓴 《李朝五百年 野史(이조오백년 야사)》라는 책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조선이 개국을 하고 난 후 使臣(사신)이 明(명) 황제에게 왕 이성계의 초상을 가지고 가서, 한반도에 이러이러한 사람이 새 나라를 세워 왕이 되었다고 했다 한다. 그때 명 황제가 그 초상을 보더니 “탁탁진에서 한 번 본 사람이구나”라고 하더란다. 나는, 짤막하지만 이 이야기는 세 사람을 칭찬하고 있다고 본다.
첫째로 칭찬하고 있는 사람은 그 초상을 그린 畵員(화원)이다. 사진 같은 것이 없던 시대에 그림을 보고 바로 그 사람임을 알 수 있게 그렸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명나라 황제를 치켜세우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수 천, 수 만 명의 사람이 오가는 陣中(진중)에서 얼핏 한 번 본 사람의 인물 그림을 보고 금방, 그 사람임을 알아보았다면 그 눈썰미가 보통 사람을 지나 있다는 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 가장 빛을 내 주고 있는 사람은 바로 이성계, 그 사람이다. 아무리 눈썰미가 좋다 해도 명 황제가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잠깐 본 사람을 한 눈에 알아보았다면 그 풍모가 범상한 인물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것은 수백 년 전의 옛날이야기이지만, 필자는 실제로 실로 놀랄만한 강한 人相(인상)의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1970년 대 어느 날 당시 내가 근무하고 있던 회사의 일로 범어사로 갈 때의 일이다. 시가에서 그 절로 가는 산복도로는 왕복 각 1차선으로 아주 좁았다. 내가 탄 차가 그 산복도로를 반쯤 올라갔을 때 차가 막혀, 가다 서다를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때, 내가 탄 차가 잠깐 멈추어 섰는데 절 쪽에서 마주 보고 내려오던 검은 승용차 한 대도 같이 섰다. 무심코 그 차를 보니 뒷좌석에 한 스님이 앉았는데 그 얼굴 분위기가, 安穩(안온)한 것이, 인상이 여간 좋은 분이 아니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그 눈이 아주 인자하게 보였다. 곧 막혔던 길이 트여 내가 탄 차도, 그 스님이 탄 차도 각각의 길을 갔다. 그러니까 내가 그 스님을 본 것은 길어야 10초 정도가 아니었나 싶다. 그래서 그 한 순간의 일은 곧 망각 저쪽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러고 20년의 세월이 흐른 1991년 봄, 범어사에서 觀照(관조)라는 스님을 만났을 때다. 상당히 이름 있는 사진작가인 그 스님과 차를 마시면서 그 스님이 찍은 사진들을 보고 있는데 얼핏 넘기는 앨범 한 쪽에, 오래 전 차가 서로 스칠 때 본 그 스님 사진이 있었다. 인자하기 이를 데 없는 눈을 한, 바로 그 때 본 인상 그대로였다.
그래, 관조스님에게 저 분이 누구냐고 했더니, 이 사람도 모르느냐는 듯 한 목소리로 “성철 아닙니까?”라고 했다. 명성은 많이 들었지만 한 번도 뵌 적이 없었는데 그 분이 바로 그 유명한 高僧(고승)이었던 것이다. 그때 나는 이성계의 경우는 어떤지 알 수 없지만 성철스님의 경우는, 사람이 그 내면에 善性(선성)이 크게 쌓이면 그것이 밖으로 흘러넘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