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風鑑(풍감)

淸山에 2012. 5. 21. 16:10

 

 

 

 

 

風鑑(풍감)

 
 
 사람이 그 내면에 善性(선성)이 크게 쌓이면 그것이 밖으로 흘러넘치는구나
張良守    
 
 

언젠가 한 서양 잡지에 재미있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 사람은, 어떤 사람을 처음으로 대면했을 때 상대를 하찮게 대할 것인가, 아니면 예의를 차려 점잖게 대할 것인가를 7초 안에 무의식적으로 결정한다는 것이었다.


우리 先人(선인)들은 그런 경우에 風鑑(풍감)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이때 ‘풍’자는 ‘바람 풍’자가 아니고 ‘모습 풍’자다. 그리고 ‘감’자는 ‘본다’는 의미의 글자다. 그러니까 사람을 그 외모, 다른 말로 印象(인상)을 보고 판단한다는 것이다.


인상을 이루는 것으로는 먼저, 그 사람의 얼굴 생김새, 골격과 같은, 본인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타고난 외적 資質(자질)이 있다. 예를 들면 키가 크면 싱겁다, 눈이 작으면 간이 크다 하는 식이다. 이는 우리말 발음은 같은 ‘인상’이나, 한자로는 ‘印象’이 아니라 ‘人相’이라 한다.


또 한 가지는 化粧(화장), 헤어스타일, 옷차림 등 그 인물의 마음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다. 둘 중 후자가 그 사람의 인품과의 隣接性(인접성)이 더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그것이 그 사람의 됨됨이를 판단하는 데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겠다. 사원 채용 면접시험 보러 가는 사람에게 갈치은빛 양복 입지 마라, 머리 염색하지 마라, 귀고리 떼고 가라 하는 것도 다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사람에 따라 그 생김새, 곧 人相(인상)이 몇 번을 보아도 낯이 익지 않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아주 강한 印象(인상)을 주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강한 인상을 준 경우로는 朝鮮(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를 들 수 있다. 작고한 국문학자 金台俊(김태준)이 天台山人(천태산인)이라는 필명으로 쓴 《李朝五百年 野史(이조오백년 야사)》라는 책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조선이 개국을 하고 난 후 使臣(사신)이 明(명) 황제에게 왕 이성계의 초상을 가지고 가서, 한반도에 이러이러한 사람이 새 나라를 세워 왕이 되었다고 했다 한다. 그때 명 황제가 그 초상을 보더니 “탁탁진에서 한 번 본 사람이구나”라고 하더란다. 나는, 짤막하지만 이 이야기는 세 사람을 칭찬하고 있다고 본다.


첫째로 칭찬하고 있는 사람은 그 초상을 그린 畵員(화원)이다. 사진 같은 것이 없던 시대에 그림을 보고 바로 그 사람임을 알 수 있게 그렸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명나라 황제를 치켜세우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수 천, 수 만 명의 사람이 오가는 陣中(진중)에서 얼핏 한 번 본 사람의 인물 그림을 보고 금방, 그 사람임을 알아보았다면 그 눈썰미가 보통 사람을 지나 있다는 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 가장 빛을 내 주고 있는 사람은 바로 이성계, 그 사람이다. 아무리 눈썰미가 좋다 해도 명 황제가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잠깐 본 사람을 한 눈에 알아보았다면 그 풍모가 범상한 인물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것은 수백 년 전의 옛날이야기이지만, 필자는 실제로 실로 놀랄만한 강한 人相(인상)의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1970년 대 어느 날 당시 내가 근무하고 있던 회사의 일로 범어사로 갈 때의 일이다. 시가에서 그 절로 가는 산복도로는 왕복 각 1차선으로 아주 좁았다. 내가 탄 차가 그 산복도로를 반쯤 올라갔을 때 차가 막혀, 가다 서다를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때, 내가 탄 차가 잠깐 멈추어 섰는데 절 쪽에서 마주 보고 내려오던 검은 승용차 한 대도 같이 섰다. 무심코 그 차를 보니 뒷좌석에 한 스님이 앉았는데 그 얼굴 분위기가, 安穩(안온)한 것이, 인상이 여간 좋은 분이 아니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그 눈이 아주 인자하게 보였다. 곧 막혔던 길이 트여 내가 탄 차도, 그 스님이 탄 차도 각각의 길을 갔다. 그러니까 내가 그 스님을 본 것은 길어야 10초 정도가 아니었나 싶다. 그래서 그 한 순간의 일은 곧 망각 저쪽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러고 20년의 세월이 흐른 1991년 봄, 범어사에서 觀照(관조)라는 스님을 만났을 때다. 상당히 이름 있는 사진작가인 그 스님과 차를 마시면서 그 스님이 찍은 사진들을 보고 있는데 얼핏 넘기는 앨범 한 쪽에, 오래 전 차가 서로 스칠 때 본 그 스님 사진이 있었다. 인자하기 이를 데 없는 눈을 한, 바로 그 때 본 인상 그대로였다.


그래, 관조스님에게 저 분이 누구냐고 했더니, 이 사람도 모르느냐는 듯 한 목소리로 “성철 아닙니까?”라고 했다. 명성은 많이 들었지만 한 번도 뵌 적이 없었는데 그 분이 바로 그 유명한 高僧(고승)이었던 것이다. 그때 나는 이성계의 경우는 어떤지 알 수 없지만 성철스님의 경우는, 사람이 그 내면에 善性(선성)이 크게 쌓이면 그것이 밖으로 흘러넘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