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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9대 대통령 취임경축 예술전에서 축하를 받는 박정희 대통령(가운데)과 딸 근혜씨(오른쪽). 왼쪽이 필자다. |
1971년 4월의 대통령 선거가 끝난 후 공화당 간부가 청와대 소식통을 인용해 정국의 일정 등을 이야기하자 한 신문이 이를 톱기사로 썼다. 나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 기자단은 나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오해를 뒤집어쓸 판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하루빨리 청와대를 떠나고 싶었는데 골치아픈 일이 터진 것이다.
일단 대통령에게 공보실하고는 관련이 없다는 것을 얘기해야겠다 싶어 대통령 서재로 들어갔다. 대통령은 나더러 소파에 앉으라고 한 뒤 고충을 조용히 들으셨다.
그러더니 엉뚱하게도 딴 얘기를 끄집어 내는 것이 아닌가. "곧 청와대 수석비서관의 직급을 모두 낮추려 해. 대통령 비서관의 직급이 높으면 좋지 않아. 저 지방 변두리 공무원의 직급은 좀 높다 싶어도 상관없지만 대통령 주위의 공무원들은 직급이 가급적 낮은 게 좋아. 그래야 권력 남용을 막을 수 있단 말이야."
대통령이 왜 이런 얘기를 끄집어 내는 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대통령은 계속 얘기했다. "수석비서관을 모두 차관급으로 낮출 거야. 그러니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아. 대변인 후임으로도 자천타천으로 여러 사람의 이름이 올라왔는데 나는 임자를 쓰기로 했으니 그리 알고 발령이 날 때까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 나는 귀를 의심했다.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는 나에게 대통령은 계속 얘기했다. "임자, 목민심서 읽어보았나." 솔직히 말해 그런 책이 있는 줄 조차 몰랐다. "아직 못 읽었습니다." "그래 틈나는 대로 읽어봐. 사람이 너무 일찍 높은 자리에 올라가도 좋지 않아. 차관급으로 내 밑에서 5년만 있어. 그러면 내 생각도 알게 되고 나라 일도 알게 되고 그렇게 된 뒤에 또 다른 일을 맡아도 늦지는 않아. 그러니 내 밑에 5년은 있을 생각을 해." 박 대통령은 이런 말을 나즈막한, 그러나 기운찬 목소리로 일러주었다. 그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미처 비서실장실에는 들르지도 못하고 실신한 사람처럼 터벅터벅 걸어서 사무실에 와 소파에 주저앉았다. 창밖으로 하늘이 유난히도 새파랗게 보였다.
박 대통령의 말이 어찌도 위엄이 있으면서 자상스러웠던지 "아닙니다""못하겠습니다"라는 소리를 감히 할 수가 없었다.
나는 한국전쟁 때의 군인생활을 거쳐 언론계에서 제법 자리를 굳힐 때까지만 해도 치열한 경쟁을 이겨내면서 '내 앞길은 내가 스스로 개척한다'는 신조로 살아왔다. 자수성가하신 선친을 따른다는 자부심도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내 앞 길이 남에 의해 정해지는구나'라고 생각하니 맥이 빠지는 것을 어찌 할 수 없었다.
앞으로 내가 겪어야할 인생은 몹시도 고달플 것 같았다. 꼴보기 싫은 관료주의의 악폐와 어떻게 공존해 나갈 것인가. 형식주의와 허례허식, 그리고 이기주의 같은 것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지금부터라도 일할 맛 나는 청와대 생활을 개척할 수밖에 없다. 나는 결의를 가다듬었다.
김성진 전 청와대 대변인·문공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