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정치.사회/파헤친 歷史

1000년을 이어온 자랑, 1000년을 기다린 잔치

淸山에 2011. 9. 14. 14:34

 

  

  

  

 

 
 
 
1000년을 이어온 자랑, 1000년을 기다린 잔치

 

 

 

 

 

2011 대장경천년 세계문화축전 23일~11월 6일 해인사 일대
동아시아 문화대국 저력 보여준 증거… 세계인 앞에 민족의 지혜 당당히 소개

 

 

 

 

 
 

*① ‘2011 대장경 천년 세계문화축전’ 개막을 100일 앞두고 6월 19일 시민 1000여 명이

서울에서 재현한 대장경 이운(移運)행렬.

②  해인사 장경판전에서 팔만대장경 목판을 들고 있는 팔만대장경연구원 보존국장 성안 스님.

 ③ 축전 시작 100일 전 해인사에서 열린 기념행사에서 대장경을 종이에 찍어 보는

 인경 체험을 하고 있는 외국인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해인사 제공·축전조직위원회 제공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그 안에 세계기록유산을 보존하고 있는 사례는 세계에서 유일하다. 바로 해인사 장경판전 내부에 보관되어 있는 팔만대장경이다. 팔만대장경은 1011년 처음 판각되기 시작한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에서 출발해 1251년에 완성된 팔만대장경으로 이어지면서 1000년이 지나도록 찬란한 문화의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해인사 팔만대장경연구원 보존국장 성안 스님)

1000년 전, 11세기가 시작되는 즈음에 우리 선조들은 대장경 판각을 통해 우리의 문화적 저력을 보였다. 당시 불교가 지배하던 동아시아에서 부처의 말씀을 담은 경전을 수집하고 대조 검증을 거쳐 엄밀하고 방대한 대장경판으로 판각하는 것은 국가가 지닌 문화의 저력을 남김없이 드러내는 일이었다.

고려대장경은 당대에 가장 방대하면서도 정확한 내용으로 아시아에서 문화적 정상의 지위를 누렸고, 근세에도 불교 지식과 문화의 표준이 되었다. 현대 불교에서는 20세기 초 일본에서 활자본으로 만들어진 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修大藏經)을 가장 많이 참조하는데 이 대장경의 모본도 바로 팔만대장경이다.

이런 고려대장경의 판각 1000년을 기념해 경남도와 합천군, 해인사가 9월 23일∼11월 6일 경남 합천군 가야면과 해인사 일대에서 ‘2011 대장경 천 년 세계문화축전’을 연다.

고려대장경은 최초 판각부터 팔만대장경으로 완성되기까지 수없이 보완을 거쳤다. 고려의 존속 기간인 472년 중 무려 240년 동안에 걸쳐 완성됐다.

처음 만들어진 초조대장경은 거란의 침입을 계기로 1011년(현종 2년)에 만들기 시작해 1087년(선종 4년)까지 77년에 걸쳐 완성됐다. 대구 부인사에 도감을 두고 송, 거란의 대장경과 그때까지 전해오던 국내본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호국의 의지를 담아 만들어 부인사에 보관했던 초조대장경판은 몽골의 침입으로 1232년 불타 없어지고 만다. 초조대장경판에서 인쇄된 문헌은 지금도 한국과 일본에 일부 남아 전한다. 고려대장경연구소(소장 종림 스님)는 일본 교토 난젠(南禪)사가 소장한 초조대장경 약 2000권 분량을 디지털로 복원하고 있다.
이후 몽골의 침입으로 어려운 때임에도 불구하고 1236년(고종 23년) 대장경판을 만들기 시작해 1251년(고종 38년) 완성한다. 이것이 지금 해인사에 보관돼 있는 재조대장경(再雕大藏經) 즉, 팔만대장경이다.

팔만대장경은 세계에서 가장 오랜 대장경판이다. 약 8만1350장의 경판에 5200만여 자가 새겨져 있다. 한자에 익숙한 사람이 하루 8시간씩 읽어도 다 읽으려면 30년이나 걸린다. 경판을 쌓으면 높이가 무려 3250m로 백두산(2744m)보다 높고, 무게는 약 285t으로 4t 트럭 70여 대에 나눠 실어야 옮길 수 있다. 이렇게 많은 글자들이 한 사람이 쓴 듯이 고르게 새겨져 있을 뿐만 아니라 오탈자도 거의 없는 정교함을 자랑한다.

대장경에는 불교 경전의 주요 세 요소인 경(經)과 율(律), 논(論)을 담았다. ‘경’은 부처님의 말씀을 기록한 것이고 ‘율’은 승려들이 지켜야 할 계율, ‘논’은 학덕이 높은 스님이 경전에 주석을 단 것이다.

성안 스님은 “고려는 인삼이나 청자 등으로만 세계에 이름을 떨친 것이 아니라 종이와 먹, 대장경 등으로 인쇄 문화에 있어서도 높은 수준을 갖고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려대장경은 그 보존에서도 우리 선조들의 지혜를 보여준다. 팔만대장경은 완성된 지 760년이 지났지만 경판을 보관하고 있는 장경판전의 과학적인 구조 덕택에 아직도 완전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공기의 순환을 돕는 서로 다른 크기의 붙박이 살창, 습도를 조절해 주는 숯이 깔린 바닥 등이 경판을 상하는 것을 방지하고 있는 것. 대장경 천 년 세계문화축전을 관통하는 주제인 ‘살아 있는 지혜’는 대장경과 대장경을 보관하는 장경판전 모두에 스며 있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오늘의 영상
 

 

 

 


‘해인사 선원’ 1,200년 만에 공개

 


 

 

  

 

 

[대장경 1000년] 8만4000 법문 응축하면 心 卍 空 세 글자

[중앙일보]

해인사 팔만대장경 보존국장 성안 스님

성안 스님

 

세계기록유산이자 국보(32호)인 팔만대장경, 세계문화유산이며 국보(52호)인 장경판전(藏經板殿)이 있는 곳. 고려대장경 발원 1000년을 기념하는 ‘대장경천년세계문화축전’이 23일 해인사 일대에서 개막했다. 개막 직전 찾은 해인사는 축전 마무리 작업에 한창이었다. 해인사의 심장부인 장경판전을 지키는 이들의 발걸음도 분주했다.

 해인사는 신라 창건 이래 조선 말기까지 여러 차례 화재를 입고 중건을 거듭했다. 하지만 팔만대장경을 모신 판전만은 조선 초기 개수한 모습 그대로 보존됐다. 장견판전은 해인사 내에 있는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이기도 하다. 부처님 말씀을 지키는 여러 사람의 노력이 면면이 이어져왔다.

 장경판전 열쇠를 쥐고 있는 이는 팔만대장경 보존국장 성안 스님. 지난해 7월 보존국장으로 부임한 스님은 아무 때고 장경판전 안에 들어갈 수 있도록 허락된 유일한 이다. 1993년 출가해 이듬해 해인사에서 계(戒)를 받았다. 행자 생활 때 판전을 지키던 관후 스님의 방을 청소한 것이 대장경과 맺은 첫 인연이었다. 관후 스님은 86년부터 20여 년간 장경각에 상주하며 판전을 지켰다. 올해 세수(世壽) 74세인 관후 스님도 지난해 대장경 지킴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성안 스님은 45세의 젊은 스님이다. 스님 신분으로 79개국을 여행하고, 법문을 잘 하고 싶어 아나운서 과정을 밟은 신세대다. 스님도 영어를 알아야겠다며 미국에서 석사과정까지 수료했다. “힘든 행자 일과 중 관후 스님의 방을 지킬 때만은 신선이 된 기분이었다”고 회상했다. 강원(講院 ·승가대학)에서 수학할 때 이태녕 서울대 명예교수 등 대장경연구학자들을 거들며 쌓은 지식도, 전세계 문화유산을 돌아본 것도 모두 팔만대장경 지킴이라는 소임을 맡기 위한 과정임을 깨달았단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대장경 조성은 고려인의 꿈이었습니다. 고려가 불교국가였으니 대장경을 발원한 것일 뿐, 가톨릭 국가였다면 가톨릭 유산이 남았을 겁니다. 그러니 팔만대장경은 종교를 초월해 접근했으면 합니다.”

 스님은 지금까지 잘 물려받은 유산을 앞으로 1000년간 이어가게 할 방법을 고민한다.

 팔만대장경 보존국에선 직원 세 명이 스님과 함께 근무하며 매일 경판의 상태를 점검한다. 장경각에서만 예불을 올리는 스님도 있다. 장경각 예불을 맡으면 3년 임기 동안 사찰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것이 해인사의 룰이라고 한다.

 장경판전은 경비인력 14명이 밤낮으로 교대근무하며 지킨다. 장경각 지킴이들의 업무는 고되다. 특히 난방을 할 수 없는 추운 겨울엔 고통이 극심하다. 하지만 자부심은 드높다. 15년간 장경판전 경비를 맡았다는 안진만씨는 “돈 받고 시간 때운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팔만대장경을 지킬 자격이 없다. 후대를 위해 일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듯 정성 들여 지켜온 대장경이 품은 뜻을 한마디로 설명할 수 있을까.

 성안 스님은 “팔만대장경 5200만 자를 한 글자로 응축하면 결국 마음 심(心)이 된다. 수많은 경전이 결국 어떻게 하면 인간이 따뜻한 마음, 행복한 마음을 쓸 수 있을까를 다양한 방식으로 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합천(경남)=글 이경희 기자,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대장경 1000년=고려왕조가 꼭 1000년 전인 1011년 발원해 1087년까지 제작된 것을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이라 한다. 이것이 거란의 침입으로 소실되자 고려는 몽고의 침입을 물리치기 위해 1236년~1251년 재조대장경을 만든다. 재조대장경 경판의 수가 8만 장이 넘고, 중생의 8만4000 번뇌에 대한 8만4000개 법문을 실었다고 해 팔만대장경이라 불린다.

대장경천년세계문화축전 (11월 6일까지)

◆목판대장경 실물=
고려대장경(국보 32호)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판, 고려 각판(국보 206호) ‘화엄경 변상도’ 국보 두 점이 합천 가야면 주행사장 내 대장경천년관에 전시된다. 축전 기간인 11월 6일까지 45일간 공개된다. 그 밖에 패엽경, 팔리어 대장경, 티베트 대장경 등 세계의 대장경 실물 등도 관람할 수 있다.

◆1000년 고려대장경 영상=대장경을 지키는 법보 종찰로서 해인사, 장경판전과 경판의 역사성과 의미를 이현석씨가 3D 입체영상으로 만든 작품. 해인사 홍보관에서 볼 수 있다.

◆해인사 소리길=행사장에서 해인사로 가는 가야산 6㎞ 홍류동 계곡길을 7개의 다리와 500m 나무판으로 단장해 조성한 길이다.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단풍 관광명소이기도 하다. 축전 기간엔 차량 통행이 제한된다.

 

 

◆장경판전=800년 가까이 팔만대장경을 지켜온 해인사 내 장경판전. 세계문화유산인 장경판전 안에는 세계기록유산인 팔만대장경이 보관돼 있다. 장경판전 건물 밖에서 살창 안으로 대장경이 보관된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다.

 

 

 

 

1200년 만에 열린 해인사 선원 … “숨쉬기도 조심스러웠다”

[중앙일보]

‘대장경 1000년’ 맞아 첫 개방 … 좌선 체험해보니

 

경남 합천 해인사 스님들의 수행공간인 선원(禪院)이 1200년 만에 처음으로 24일 일반에 공개됐다. 해인사는 이날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440명에게 참선을 허용했다. 죽비를 든 입승 스님이 참가자들이 졸거나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지도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24일 경남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 대적광전(大寂光殿). 여기에서 오른쪽으로 30m 정도 떨어진 곳에 작지만 위엄이 느껴지는 건물이 있었다. 선원(禪院)이다. 입구에는 ‘이곳은 묵언 정진하는 선원이오니 외인 출입을 금합니다’라고 적힌 안내판이 있다. 일반인들은 접근할 수 없는 스님들만의 수행공간. 신라 애장왕 802년 해인사 창건 이후 지금까지 1200여 년간 문이 굳게 닫혀 있었던 선원의 출입문이 이날 처음으로 열렸다. 오전 6시~오후 6시 시간당 40명씩 모두 440명의 일반인에게 공개됐다.

어둠을 깨우는 범종소리가 들려왔다. 이어 스님들의 예불이 끝난 오전 6시. 40명의 참가자와 함께 100여 개의 계단을 밟고 줄지어 선원으로 올라갔다. 선원에는 3개의 문이 있다. 중간은 스님들만의 출입구다. 좌우로 20명씩 나눠 들어가자 방바닥에 방석이 깔려 있었다.

 

 수행은 입구 벽에 걸린 달마상에 세 번 절을 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달마는 무념무상의 상태에서 깨달음을 얻는 중국 선종의 시조다. 시계 반대 방향으로 5~6바퀴 도는 ‘포행’을 한 뒤 벽 쪽으로 돌아서 눈을 감았다. 좌선이다. 내 숨소리조차 부끄러웠다. 숨쉬기가 조심스러워졌다. 서울에서 밤을 새워 왔다는 송대철(51)씨는 “내 숨소리마저 남에게 방해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으면서 배려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탁탁~ 탁탁탁탁~’. 10여 분쯤 지나자 수행자들의 어깨를 내려치는 ‘죽비’(대나무로 만든 회초리)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한밤에 듣는 천둥소리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죽비를 맞은 이재성(57)씨는 “마음이 편해져 잠깐 졸았다. 아픈 것보다 마음이 경건해지는 느낌이었다. 죽비를 내려친 후 스님이 합장을 한 채 나에게 고개를 숙였는데 정말 수행자가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온몸에 힘이 풀리면서 깜빡 잠이 든 것 같기도 했다. “탁~탁~탁” 좌선을 마친다는 죽비 소리에 눈을 떴다. 가부좌를 풀자 다리에 감각이 없었다. 뻣뻣한 다리를 손으로 주무르던 박난숙(53·여)씨는 “단 한 시간이었지만 스님들의 수행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게 됐다. 큰스님들이 수행하던 공간이라서 그런지 보이지 않는 기운도 느껴졌다”고 말했다. 이점숙(65·여)씨는 “세상의 번뇌를 벗어놓고 내려온 기분이다. 선원에서 참선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축복”이라고 말했다.

 이 선원에서는 성철·법정 등 당대의 고승들이 수행을 했다. 현재는 조계종 종정인 법전 스님이 방장으로 있다. 하안거와 동안거 기간 스님들은 이곳에서 하루에 8~10시간 수행한다. 이 중 1주일간은 한 숨도 자지 않고 면벽 수행을 한다. 선원 개방은 ‘2011 대장경 천년 세계문화축전’에 맞춰 기획한 특별행사의 하나다.

합천=위성욱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선원(禪院)= 속세와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상징적인 장소다. 이곳에서 스님들은 하안거(夏安居·음력 4월 15일~7월 15일)와 동안거(冬安居·음력 10월 15일~이듬해 1월 15일) 기간 동안 수행한다. 안거는 스님들이 비 오는 시기에 작은 벌레나 초목을 밟아 상하지 않도록 외출을 금하고 한곳에 머물러 수행한 것에서 유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