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는 경기도 안성으로 제주는 망고·구아바 등열대과일 시험재배 나서 연평균 기온 1도 오르면 재배한계선 100㎞ 상승 한국 100년새 1.5도 올라 개화·수확시기도 빨라져 농민들 혼란 더 커져
강원도 양구군 군량리에 사는 김법종(54)씨는 원래 1980년대부터 경북 문경에서 20여년간 사과 농사를 지었다. 그런 그가 9년 전 양구에 약 5만㎡(1만6000평)의 땅을 마련, 사과 과수원을 조성했고 지난 2008년부터 사과를 출하하기 시작했다. 이 마을에는 김씨처럼 남쪽 지방에서 이주해 와 사과 과수원을 꾸리는 농가만 6~7곳에 이른다. 과거 1~2그루씩 앞 마당에서 사과나무를 키우던 정도였던 양구군 일대는 어느새 영월과 함께 강원도의 사과 주요 산지로 부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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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 함양에서 강원도 양구로 옮겨와 사과 과수원을 운영하고 있는 마용하씨 부부가 잘 익은 사과 과실을 보며 활짝 웃고 있다. / 양구군청 제공
김씨는 "전통적으로 대구 경북 지역이 일교차가 크고 연교차가 커서 사과를 재배하기에 좋은 여건이었지만, 현재는 강원도가 그런 환경으로 바뀌어가고 있다"며 "휴전선 철책 바로 아래에서 사과를 재배하게 될 줄은 나도 몰랐다"고 말했다. 이들이 북쪽으로 찾아 들어온 데는 이유가 있었다. 경남 함양에서 양구로 옮겨온 또 다른 농민은 "요즘 남쪽 지방은 여름이면 열대야 때문에 밤에 기온이 떨어지지 않는 날이 많아 사과가 밤사이에 양분을 축적하지 못한다"며 "과육이 단단하고 당도가 높은 사과가 북쪽 지방에서 점점 더 많이 나오게 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주요 산지가 북쪽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은 사과만이 아니다. 배는 주산지가 전남 나주였으나, 현재는 경기권(안성·평택·화성) 등으로 주력산지가 북상(北上)했다. 추위에 약한 복숭아도 경북 영천에서 강원도 원주로 재배지가 확대되고 있다. 최근에는 양구에서 멜론까지 나오고, 전남 보성이 주요 산지인 녹차가 강원도 고성에서 시험재배되고 있다.
경기도 수원에 있는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온난화대응농업연구센터(제주도 소재)에 따르면, 연평균 기온 1도가 올라가면 기존 작물의 생육(生育) 한계선이 직선거리로 100㎞ 정도 북상한다고 한다. 지난 100년간 한반도의 평균기온이 1.5도(전 지구 평균 0.7도) 상승한 것을 감안하면, 남쪽 지역에서 주로 재배되던 작물의 주산지가 150㎞ 정도 북상했다는 말이 된다. 실제로 지난 10년 사이 강원도 지역의 사과 재배 면적이 122㏊, 배 재배 면적이 310㏊증가하는 등 과수 재배지가 점점 북상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같은 기간 동안 제주지역은 10도 이상의 평균기온이 10개월 이상 지속되는 아열대 기후로 바뀌었다.
전국을 대상으로 맛 좋은 과일을 찾아다니는 유통업체 과일 담당 바이어들은 과거의 동선(動線)을 답습하기 힘든 실정이다. 한 유통업체의 과일 담당 바이어는 "청송이나 대구 등 경북 지역에서 최고급 사과가 나왔지만, 요즘은 현지를 찾아가 맛을 보면 '옛날 맛'이 나지 않는 경우가 간혹 있다"며 "일부 바이어들은 옛날 명성만 믿고 유명 산지를 찾아다니다가 제대로 된 제품을 찾지 못해 '헛다리'를 짚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주요 과일 산지가 북상하면서 경남과 전남의 일부 과수 농가는 수익성 높은 '열대 과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전남 곡성의 정재균씨는 최근 열대과일 '파파야'를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현재 그는 하우스 재배방식으로 0.3㏊(1000평) 면적에서 파파야를 재배하고 있다. 정씨는 "기온이 떨어지는 날에는 공장의 폐열을 이용해 하우스를 덥히는 날도 있지만, 재배에 큰 어려움은 없다"고 했다. 지난 7일에도 정씨는 열대과일 재배 기술 연수차 대만 출장 중이었다. 충북 괴산에서는 구아바 재배에 성공해 서울 시내 주요 백화점에 납품한 사례도 있었다.
제주도 역시 그동안 제주에서만 생육이 가능했던 한라봉이나 밀감, 참다래 등의 산지가 경남·전남 일부 지역으로 확대되면서 열대 과일의 시험재배에 참여하는 농가가 늘어가고 있다. 현재 제주도 서귀포시에는 망고 재배 농가만 70여호에 이르고, 아보카도, 구아바 등을 재배하는 농가도 20여 농가에 이른다.
온난화대응농업연구센터 전승종 연구관은 "한반도의 환경이 제주도는 아열대성, 강원도는 온대성 과수를 재배하기에 적합한 풍토로 바뀌어 가고 있다"며 "기존 농가에서도 과일의 개화시기나 수확시기가 앞당겨지는 등 혼란스러워하는 농민들이 많은 만큼, 농업 환경 변화에 좀 더 적극적으로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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