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를 얘기하는 선양 소주 회장 조웅래[중앙일보]
입력 2011.06.04 01:24
“ 13㎞ 황톳길, 헬스장이자 집무실이죠 ”
‘가무(歌舞)와 음주(飮酒)’ 사업으로 벌떡 일어선 사내가 있다. 돈도 꽤 벌었다. 성공한 남자의 다음 여정은 뭘까. 바로 ‘휴식(休息)’이다. 노래 부르고 술 마셨다면, 쉬어야 한다는 이치다. 그래서 대전시 대덕구 계족산에 ‘황톳길’을 깔았다. 어설픈 산책길이 아니다. 장장 13㎞에 이르는 명소다. 입장료 받으려고 벌인 일은 아니다. 치유를 얘기하는 소주회사 주인. 그 돈키호테 같은 주인공은 선양의 조웅래(52) 회장이다.
●황톳길이 전국구 유명세를 타고 있습니다.
“계족산은 닭발이란 뜻이죠. 해발 423m 높이인데 350m 중턱을 한 바퀴 도는 길이 있어요. 폭이 5m인데 거기에 흙을 깔았어요. 길이만 13㎞ 정도 됩니다. 전북 김제와 충남 태안에서 황토를 공수했지요. 처음엔 ‘맨발 마라톤’ 대회로 화제였는데 지금은 신 벗고 천천히 걷는 사람이 많아요. KTX 타고 대전역에서 내리면 25분 걸리니 접근성도 좋지요.”
●맨발로 걷는 황톳길이라니. 뜬금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처음에 아이디어를 냈을 때 회사 임직원을 비롯해 다들 말렸죠. ‘누가 맨발로 걷느냐’고요. 원래 돌멩이투성이인 길이었으니 그럴밖에요. 또 ‘비 오면 흙 다 쓸려간다’는 비아냥도 나왔어요. 보통 신발 벗기를 꺼리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남이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또 다칠까 봐 그렇죠. 하지만 전 폭발적 호응이 있을 것으로 확신했어요.”
●어떤 계기로요.
“제가 직접 체험했으니까요. 2006년 4월이었습니다. 친구들과 산행 모임이 있었어요. 여자들이 하이힐을 신고 왔더라고요. 그때 맨발로 걸었죠. 이게 환상적인 거예요, 글쎄. 집에 오니 다리는 아픈데 기분이 가벼우면서, 몸이 후끈거리고. 다리 근육엔 지렁이가 기어 가는 것 같은 묘한 쾌감이 느껴지더라고요. 그 뒤로 맨발 마라톤을 해봤는데 너무 좋은 거예요. 결심했죠. ‘여러 사람이 공유하게 해보자’고요. 제 주특기가 대중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거든요.”
조웅래 회장과의 인터뷰는 황톳길을 3시간가량 걸으며 진행됐다. 걷기 전엔 흙가루가 뽀얗게 뿌려져 있는 그런 길을 연상했다. 그러나 실제 황톳길은 찰떡 같은 느낌이었다. 쫀득쫀득, 푹신하게 밟히는 색다른 체험이었다. 그동안 황톳길 조성에 들어간 돈은 25억원이다.
●황톳길을 키운 수완이 궁금합니다.
“오너가 추진하는 일이니 아무튼 모두 따라왔습니다. 2006년 가을 첫 행사로 ‘마사이 마라톤’을 열었죠. 마사이족(族)이 육식을 많이 해요. 그런데 콜레스테롤 수치는 서양인 평균의 3분의 1입니다. 많이 걸어서 건강한 거죠. 그런 이미지를 차용해서 대회를 개최했어요. 13㎞ 맨발로 뛰는 게 쉽지 않잖아요. 그런데 다들 표정이 너무 좋은 겁니다. 이듬해부턴 봄에 대회를 치렀죠. 그 뒤로 많이 알려지기 시작했어요.”
5월 중순에 치러진 올해 6회째 대회엔 1만2000명이 참석해 마라톤과 걷기를 즐겼다. 10~20대가 절반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외국 손님들도 37개국에서 1000명이 왔다. 맨발 마라톤은 세계적으로 유일한 행사다.
●대회 때 ‘에코 힐링’이란 개념을 내걸던데요.
“자연 속에서 몸과 마음을 치유하자는 철학입니다. 매달 둘째 주 일요일에 맨발 걷기 행사를 치러요. 그냥 헤어지면 섭섭하니 숲속 음악회도 열고요. 책을 읽거나 누구 얘길 듣고 정립한 개념은 아닙니다. 제가 맨발로 걸으며 체득한 거죠. 사람들이 걸으며 행복에 빠진 모습을 보고 ‘치유’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황토가 몸에 얼마나 좋습니까.
“발엔 26개 뼈와 100여 개 근육이 있어요. 그래서 제2의 심장으로 불리죠. 걸으며 경혈을 자극하니 혈액순환 잘되고 좋지요. 저도 꾸준히 걸으니 일단 주량이 늘고요, 하하하, 잠이 잘 와요. 소변이 잘 나오고 혈색도 좋다는 소릴 자주 듣습니다. 무엇보다 정신적 만족을 뺄 수 없지요. 저도 사업하다 아무리 힘들고 고민되는 일이 있어도 30~40분만 걸으면 스트레스가 풀려요. 금세 집중력이 생기죠.”
●주변에도 많이 권유합니까.
“손님들도 거기서 많이 맞습니다. 임원회의도 한 달에 두 번씩 ‘새벽’에 맨발로 걸으며 산에서 합니다. 황톳길은 헬스장이자, 집무실이자, 접견실인 그런 공간이죠.”
●소주회사가 치유며 건강을 얘기하는 게 흥미로운데요.
“제가 원래 휴대전화 벨소리 업체인 ‘5425’를 창업했지요. 소리로 비즈니스를 한 겁니다. 선양은 술 회사고요. 말하자면 음주가무지요, 하하. 그렇다면 다음은 뭘까요. 쉼이죠. 휴식 말입니다. 그게 바로 사람들이 오가는 황톳길이고요. 옛날에 회사 슬로건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를 내건 적이 있어요. 소리·술은 물론 황톳길도 사람 간 ‘소통의 도구’가 될 수 있죠. 동떨어진 게 아닙니다.”
●창업 전엔 뭘 했습니까.
“경북대 전자과를 나왔어요. 삼성전자와 LG전자에서 일했죠. 전화교환기 소프트웨어 쪽이었습니다. 어느 날 ‘내가 부속품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과감히 사표를 냈죠. 중소기업에 취직했어요. 원격으로 조종하는 계량기 만드는 곳이었습니다. 자연스레 전화국을 많이 드나들었죠. 그때 700 전화 서비스를 민간에게 넘길 때였어요. 회사에 ‘이거 돈 된다’고 건의했는데 사업성을 잘 모르더라고요. 92년 말에 뛰쳐나와 단돈 2000만원으로 창업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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