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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국 대통령의 '後進的 비극'에 대하여 [강천석 칼럼]

淸山에 2012. 7. 7. 20:36
 

 

 

 

 

[강천석 칼럼]

다시 한국 대통령의 '後進的 비극'에 대하여
강천석 주필

 

 

정부 수립 이후 모든 대통령 가족 친인척 非理에 걸려 넘어졌다
대선 走者들, 국민에게 감시하고 또 감시해 달라고 구조 요청 신호 보내라
 
 강천석 주필 20년 전 일이다. 서울에 나와 있는 어느 나라 대사가 초대한 저녁 모임 자리였다. 참석자 대부분이 얼굴이 익었거나 이름이 귀에 익숙한 각 방면의 알만한 분들이었다. 한 사람만 예외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알 만한 분들이 다들 누군지 모를 그 사람에게 식탁 중앙 주빈석(主賓席)을 권하는 게 아닌가. 상대는 몇 번 손을 내저으며 사양하다가 모임을 만든 대사(大使)까지 나서서 강권(强勸)하자 마지못해 그 자리에 앉았다.

 

수수께끼는 곧 풀렸다. 한 달 전 선거에서 당선된 대통령 당선자의 사돈이었다. 대통령 당선자 아들의 장인은 겸손했고 말수도 적었다. 그러나 그가 입을 열면 별로 대수롭지 않은 내용인데도 온 좌석이 동작을 멈추고 경청(傾聽) 자세를 취했다. 아직 취임도 않은 대통령 당선자의 사돈을 그런 모임에 끌어낼 생각을 하다니…. 한국 실정을 꿰뚫고 있는 그 대사의 정치 센스가 놀랍고 한편으론 무섭기까지 했다. 당선자의 아들이 아버지 임기 말년에 교도소에 갔다는 건 덧붙일 필요조차 없는 공연한 후일담이다.

 

며칠 전 이상득 전 의원이 검찰에 소환됐다. 그는 검찰 청사 계단을 오르다 발을 헛디뎌 일순 중심을 잃고 휘청했다. 한 달 전엔 평생 친구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비슷한 사유로 이 계단을 올라갔다. 대통령 형님의 검찰 소환 뉴스가 전해지자 다들 "동생이 대통령 됐을 때 국회의원을 그만뒀어야지…" 하고 입을 모았다. "그랬더라면 정치 원로(元老)로서 존경받으며 넉넉한 노후를 보내고 있을 텐데"라고도 했다.

 

5년 전에는 필자도 그렇게 생각했기에 "'대통령 형님 드라마'는 끝내 못 보나"라며 "본인을 위하고 동생을 위해서 국회의원 출마를 접으라"고 쓰기도 했다. 대통령 형님의 국회의원 자리에 대한 집착은 분명 과욕(過慾)이었다. 그렇다고 그가 출마를 포기했더라면 정말 존경받고 편안한 노후를 보내게 됐을까. 십중팔구(十中八九) 그리되지 못했을 것이다. 한국 대통령 가족과 친인척을 다스리는 '운명의 법칙'은 그런 정도 자중(自重)으로 비켜갈 수 있을 만큼 만만치가 않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대통령 열 분이 거쳐갔다. 선출 과정의 적법성(適法性) 여부를 떠나서 하는 이야기이다. 그 가운데 대통령의 직계 가족과 친인척 비리·특혜 의혹이 법원 기록, 국회 속기록, 언론 보도에 오르지 않았던 경우는 이승만 윤보선 최규하 세 대통령뿐이다. 그러나 이것도 더 뜯어보면 사정이 달라진다.

 

이승만 대통령은 5대 독자였다. 열여섯 살에 결혼한 첫 부인과 사이에 두 아들을 두었으나 일찍 잃었다. 환갑(還甲) 무렵 재혼한 부인은 오스트리아 출신 여성이었다. 친가(親家) 쪽도 처가(妻家) 쪽도 사람 그림자가 오히려 그리운 처지였다. 그런 이 대통령도 말년에 양자(養子)를 들이고, 그 양자의 아버지 이기붕씨를 부통령으로 만들려다 4·19혁명을 부르고 말았다.

 

윤보선 대통령은 4·19 이후 채택한 내각책임제 헌법 아래서 실권 없는 명목상의 국가원수로 재임 기간이 채 1년도 안 됐다. 최규하 대통령 역시 유신(維新)과 또 다른 군부 정권 사이에 끼여 대통령 권한을 사실상 행사하지 못했다. 결국 대한민국 대통령 가운데 직계가족과 친인척의 비리로부터 자유로웠던 대통령이 단 한 사람도 없었다는 말이 된다.

 

한국 대통령 가족의 운명은 초보적(初步的) 3단논법이 지배한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예외(例外) 없이 직계가족과 친인척 비리에 걸려 넘어졌다' '오는 12월에 선출할 대통령도 가족과 친인척이 있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그러므로 그 역시 이 후진국형(後進國型) 비극을 비켜가지 못할 것이다'.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은 자기만은 기어코 이 한국적 3단논법의 고리를 끊고 말겠다는 결의(決意)를 다지며 취임했다. 청와대에 들어가자마자 가족회의를 열고 과거의 사례를 들어가며 주위를 엄계(嚴戒)하기도 했다. 각 대통령 지지자와 추종자들은 자기들이 모시는 대통령만은 과거와 다를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러나 결과는 허무했다.

 

한국 대통령과 그 일가(一家)의 천장엔 끊어질듯 말듯한 가는 실로 매달린 채 그들 정수리를 겨냥한 날 선 비수(匕首)가 흔들흔들하고 있다. 본인 결의만으론 이 비수의 과녁이 될 운명을 벗어나기 어렵다. 이 나라 권력 생리와 이 사회 세태(世態)가 가만두지 않는다. 20년 전 대통령 당선자 사돈을 저녁 모임의 주빈 자리에 모셨던 그 외국 대사는 그런 한국적 권력 생태와 사회 속성을 꿰고 있었다.

 

그런데도 대통령이 되겠다는 어느 누구도 국민을 향해 구조(救助) 요청 신호를 보내오지 않고 있다. 자신과 자신의 가족이 이 비극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감시하고 또 감시해달라고 공개적으로 매달려야 한다. 국가 백년대계(百年大計)를 말하기에 앞서 대선 주자들은 지금 당장 언제 무슨 소리를 내며 무너질지 모를 자기 발밑부터 먼저 살펴야 한다.